북핵 등 주요 한·미 이슈에 대한 미국의 속내 확인한 값진 연수(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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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749회 작성일 2017-10-31 17:35본문
390호
북핵 등 주요 한·미 이슈에 대한 미국의 속내 확인한 값진 연수
정혁훈 매일경제 경제부장
여름 더위가 채 가시지 않았던 지난 9월 9일 오전 인천공항 국제선 대합실. 10명의 중년이 미국 워싱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대부분이 오랜만의 홀가분한 해외 출장이라 그런지 표정에 설레임이 가득했다. 이들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와 아시아재단이 마련한 단기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중견 언론인들. 유일한 예외는 최성완 주한 미국 대사관 공보관이었다. 최 공보관은 미국 정부를 대표해 이번 프로그램을 평가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지만, 언론인 연수단의 가이드 역할까지 자처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참가자들의 기대감은 공항 미팅 때부터 달아올랐다. 최 공보관이 “미국 대사관이 아니라 아시아재단에서 프로그램을 준비한 덕분에 강사진들 면면이 더욱 화려해졌다”고 밑밥을 깔았기 때문이다.
최 공보관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확인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워싱턴의 화창한 날씨 속에서 시작된 첫날 세미나부터 현지 전문가들의 ‘화려한 말잔치’에 연수단은 매료됐다. 주로 언론사 논설위원들로 구성된 연수단은 가뜩이나 북핵 등 안보 문제가 핵심 이슈로 등장한 상황에서 미국 싱크탱크 전문가들로부터 다양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어 뿌듯했다.
연수단을 사로잡은 첫 인사는 스캇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었다. 그는 아시아재단 한국사무소에서 4년 간 근무 경력이 있어 한반도 사정을 꿰고 있는 데다 미국 행정부 내부 소식에도 밝기로 정평이 나있는 인사였다. 연수단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한국 보수진영에서 대두되고 있던 전술핵의 한국 배치 요구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기술적으로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할 수 있는 솔루션이 미국엔 없다”고 명쾌한 답을 제시했다. “한국에 배치할 만한 전술핵 자체가 거의 없는 데다 핵무기를 배치한다 해도 관리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다”는 설명이었다.
전술핵에 대해서는 다른 싱크탱크 전문가들 견해도 거의 다르지 않았다. 이튿날 만난 마크 만인 의회조사국 연구원은 전술핵의 한국 배치 불가 이유에 대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설명했다. 그는 “장거리 폭격기가 있는 상황에서 전술핵을 지상에 배치한다고 해서 군사적 역량이 추가되는 것은 없다”면서 “전술핵 배치가 정치적 메시지를 보여주는 기능을 할 수는 있어도 목적달성 효과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정리했다.
연수단에게 진짜 ‘사이다’역할을 한 인물은 셋째 날 등장했다. 바로 마크 램버트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이었다. 당초 예정된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대신해 나타난 그는 한·미 관계와 중국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여과없이 토로했다. 다른 외교관들과 달리 문재인 정부에 대한 섭섭함도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 “문 대통령이 중국 반응을 염려해 사드 배치를 지연시킨 것이 오히려 중국의 사드 보복을 더 강화하게 만든 중요한 원인이 됐다. 그건 실수였다.”중국에 대해서도 송곳 같은 입장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한국이 인내를 해주면 중국이 존중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단호한 입장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램버트 과장의 이런 태도는 듣기에 따라서는 불편할 수 있지만, 워싱턴 외교가에서 활약하는 한국 측 인사들 얘기는 달랐다. 포장하지 않는 그의 직설화법이 오히려 미국 내부 속뜻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큰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연수단 내에서도 외교적 수사를 즐기는 조셉 윤보다 램버트가 온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역시 기자들에겐 ‘빅 마우스’가 최고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현지전문가들 평가도 인상적이었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대표를 역임했던 타미 오버비 미국상공회의소 부회장은 “한·미 FTA협정은 손 댈 곳이 없는 최고의 협정”이라며 “미국이 한·미 FT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면 한·미 동맹의 와해를 뜻하는 것으로 중국을 기쁘게 할 일”이라고 일갈했다. 앞서 “한·미 FTA가 흔들리면 한·미 간 제도적 차원의 협력이 퇴보하는 최초의 지표가 될 것”이라는 스나이더 연구원 말과도 일맥상통했다.
워싱턴에서 주로 외교안보 이슈 중심으로 나흘 간 세미나를 마친 연수단은 워싱턴 유니온 스테이션에서 암트랙을 타고 3시간 반을 달려 뉴욕 펜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연수단은 곧바로 이동해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원들과 토론회를 가졌다. 회원들은 다양한 이슈에 대해 연수단에 질문 공세를 퍼부었고, 노련한 중견 언론인들의 답변을 경청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토론회는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
이어 다음 날 콜롬비아 저널리즘 스쿨과 월 스트리트 저널을 방문해 저널리즘의 새로운 트렌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대표 언론사의 경험을 직접 들으면서 향후 우리 언론에는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 지 생각해 보는 귀중한 시간도 가졌다.
열흘 가까운 시간을 함께 보낸 연수단은 인천공항으로 돌아와 헤어질 때쯤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친한 형동생 사이로 바뀌어 있었다. “이런 멤버를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는 데 모두가 의견일치를 봤다. 자연스레 아시아재단의 첫 단기연수 프로그램 참가자 모임을 정기적으로 해 나가자는 동의가 이뤄졌다. 흔한 건배사 중에 “이 멤버, 리멤버”가 있다. 즐거운 추억을 함께 나눈 선배들과 다시 뭉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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