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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11.15] 나쁜 대통령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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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577회 작성일 2012-11-1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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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한 저명 인사가 \"나는 이제 애플 `아이폰`을 안 사겠다\"고 선언한 걸 보고 무슨 느낌을 가졌는가. 나는 스티브 잡스의 존재를 다시 떠올렸다. 그의 자서전을 두루 살펴보면 잡스는 유능하지만 못된 인간이다. 인간성에 관한 한 그는 선(善)보다는 악(惡)에 가깝다. 그러나 인류가 기뻐할 멋진 제품을 선사했으며 경영인으로서 자신의 직원들에게 번영을 남겼다. 그는 한마디로 유능했다. 잡스가 떠난 지 1년 만에 애플 왕국은 쓰레기 앱(app)으로 넘쳐나고 경쟁자의 팔을 비틀어 돈이나 뜯어내려는 (특허)괴물로 추락해 가는 것 같다. 지도자는 비록 나쁜 놈 소리를 들어도 제 식구들의 호주머니와 배를 채워줄 유능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논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미국 대통령 가운데 1위에 필적하는 루스벨트나 링컨도 전통적 지지계층으로부터는 배신자 또는 음험하고 영악한 인간이라는 나쁜 평을 들었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루스벨트가 쓰는 말이나 정책은 히틀러와 거의 같았지만 미국은 건강한 의회 때문에 영웅이 악당으로 전락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퍼거슨 著 `증오의 세기`). 루스벨트는 부자에게 94%의 소득세를 매기고 법인세도 70%까지 뜯어냈다. 공산주의보다 더 공산주의적이었다. 그렇지만 이들 대통령은 당시 시대 상황에서 가장 유능했다.



우리의 3명의 대통령 후보는 이제 내놓을 만한 공약은 거의 다 내놓은 듯싶다. 지난 일요일에도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서로 경쟁하듯 두툼한 공약집을 냈다. 이들 공약집은 하늘에서 내려온 듯 `천사표` 그 자체다. 무상보육-무상교육-무상급식-무상진료. 영국의 베버러지 보고서에 필적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뭐든지 공짜로 주겠다는 거다. 착한 공약으로 따지면 박근혜 후보도 못지않지만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김종인 안(案)을 팽(烹)시켰다는 점을 평가해줄 만하다.



한국의 착한 대통령 후보들은 \"선량한 의도로 착수한 일이 사악한 결과를 빚기도 한다\"는 하이에크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가령 반값 등록금으로 대학 졸업을 시켜놓고 나중에 취업이 안 된다 치자. 이미 눈만 높아진 청년은 결코 실업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 그는 사회를 저주하는 불만세력으로 남을 것이다. 그에게 반값 등록금을 댄 납세자들도 그 잘못된 결정을 원망할 것이다. 반값 등록금을 대기 이전에 우리 사회의 대학 졸업자가 얼마나 필요한지 먼저 보고 줄여놓는 게 우선순위다. 지금 대학정원을 25%쯤 줄여놓겠다는 공약을 하면 그 후보는 나쁜 사람으로 몰릴지 모른다. 그러나 그걸 먼저 해야 한다. 문재인 후보는 164조원어치의 공약을 했다. 받은 사람은 흔적도 안 남겠지만 나중에 갚아야 할 후손들은 `저주의 장치`로 원망할 것이다. 착한 후보들은 온갖 선심을 베풀다가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말하면 갑자기 투사로 돌변한다. 안철수 후보는 MBC를 방문해서 \"사장은 물러나라\"고 했다. 이것이 새정치를 하자고 나온 신념인가, 표에 굶주린 계급투쟁인가.



한반도 주변 주요국의 권력지도가 다시 그려졌다. 시진핑은 2020년까지 1인당 소득을 100% 올리겠다고 했고, 재선된 오바마는 \"미국의 정상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국민들의 머릿속에 좌표를 새로 그려넣었다. 경제난을 이기려 자국 이기적 비상조치들도 강구된다. 호주는 500만달러를 들고 오면 영어 한마디 못해도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새 이민제도를 채택한 후 1년 만에 중국 부자 2만9547명을 끌어들였다.



후보들의 공약은 그 어떤 미래의 비전을 말한 적이 없다. 한 줄기 빛은 없다.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할 때 우리는 고도(Godot)를 기다리는 것 같은 설렘과 흥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세 후보는 그런 설렘조차 주지 못한다. 위기의 시대, 좀 나빠도 좋으니 유능한 대통령을 기다린다. 오바마ㆍ시진핑ㆍ푸틴과 함께 서 있어도 절대 꿀리지 않을 것 같은.



[김세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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