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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9.8] 공무원과 정치인이 야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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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542회 작성일 2012-09-1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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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 기회를 잡으려는 공무원, 지역 민원 해결하려는 정치인…

이들이 손잡고 만든 기형물은 호화 청사, 텅빈 도로·공항에서

깡통 대학과 부실 저축銀까지… 다음 정권, 이 커넥션 끊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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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열리니 공무원들이 바빠졌다. 국장도 불려가고 과장도 불려간다. 어제는 야당 보좌관이 호출하더니 오늘은 여당 보좌관들이 브리핑을 요구한다. 복지정책의 큰 틀을 묻고 경제를 걱정하는 말은 진짜 용건이 아니다.



국정감사 때 한 건 터뜨리려고 기초 자료를 수집하는 줄은 공무원들도 안다. 보좌관이 꼬치꼬치 캐물으면 \'의원님 관심 사안\'이고, 지도가 들어간 자료를 건네주면 \'지역구 민원 사업\'이라고 눈치 빠르게 읽어낸다. 자료 준비부터 보좌관 접대까지 짜증 나지만 그래도 공무원들은 국회로 달려간다. 국회의원 입에서 \'엉뚱한 질문\'이 나오면 윗분으로부터 \"그것도 못 막았어?\"라고 질책을 받을까 걱정이니까.



대한민국 공무원이라면 \"우리가 하는 일은 모든 게 국민을 위한 것이고 국가 발전을 위한 일\"이라고 말할 줄 안다. \'삼오 십오\'라고 구구단을 외우는 것처럼 그들 입에서 술술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장차관이 국회에서 혼쭐난 후 \"그동안 뭐하고 다녔나?\"고 화를 내면 국민과 국가는 안중에서 사라진다. 윗분의 심기(心氣) 관리가 우선이다.



공무원이 국회를 들락거리고 정치인을 접촉하는 목적이 돌출 질문 방어나 정책 조율에 있다고만 믿으면 오산(誤算)이다. 같은 고향 출신인 의원을 만나면 \"다음 달에 승진 인사가 있습니다. 장관님께 전화 한 통만…\"이라고 청탁할 기회를 잡는다. 장관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할 수 없다. 이번엔 안 되더라도 \"다음번엔 꼭 배려하겠다\"는 빈말 약속이라도 해야 한다. 어느 부처에든 장차관이 국회 상임위원장의 몫을 따로 챙겨주어 누가 승진했다는 일화는 흔해빠졌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손을 잡으면 안 되는 일은 별로 없다. 호남 정권이 들어서 전남 무안에 국제공항이 필요하다고 주문하자, 공무원들은 승객이 매년 519만명이나 북적거릴 것이라는 \'고객 주문형 계획서\'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두 집단은 3000억원을 투입하고 항공사들에 국제 항공노선을 개설하라고 압력을 넣는 데 박자를 척척 맞추었다. 그런데 작년 1년간 무안공항을 이용한 사람은 9만여명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510만명은 어디로 증발했을까 궁금해하지 않는다.



2192억원을 들여서 지은 경기도 화성스포츠타운도 현지 공무원과 현지 정치인들이 야합한 결과 탄생한 창조물이다. \"차라리 폭파해버렸으면 좋겠다.\" 화성시 공무원이 시민은 오지 않고 예산만 삼키는 괴물이 돼가는 스포츠센터를 보며 토해낸 독백(獨白)이다.



정치인이 취미인지 정책 방향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디자인\'을 강조하면 공무원은 돈이 얼마 들어가든 디자인을 앞세운 청사를 지어올린다. 정치인은 기념비적 건축물을 올렸다고 자랑하고 공무원은 깔끔한 새 건물에 입주하는 행복을 누린다. 정작 건축비를 댄 시민들은 번쩍거리는 광채에 놀라 함부로 들락거릴 수 없는 부담감을 안고 구경만 한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결혼으로 태어난 기형물(畸形物)은 호화 청사, 자동차 뜸한 도로, 손님 없는 공항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 군(郡)에도 4년제 대학이 있어야 한다\"는 정치인과 지방 토호(土豪)들의 로비에 넘어간 공무원들이 합작한 결과는 수 십개의 깡통대학으로 나타났다. 저축은행 붕괴 사태도 국회의원들과 금융 공무원들이 고객 몰래 손잡았던 것이 10년 이상 썩고 발효하는 세월을 거쳐 터진 것이다.



공무원은 법으로 신분보장을 받는 특수 계층이다. 정년까지 해고는 없다. 호봉은 자동 인상되고 때가 되면 승진한다. 건국 초기에 행정을 맡아줄 인재를 붙잡아두려고 만든 신분보장제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800만명이 넘는 세상을 비웃듯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공무원을 잘 다루면 40년 동안 안 된다던 도로가 뚫리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정치인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부처마다 잉여 인력이 넘쳐 해외 연수로, 산하기관 파견으로 대기실 면적을 넓혀가지만 어느 대선 후보도 \'공무원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지 않는다. 여성단체, 종교기관처럼 공무원 집단도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성역(聖域)으로 대접받는다.



올해 세계경제포럼(WEF) 조사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세계 19위 수준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정부정책 결정의 투명성은 133위, 정치권에 대한 신뢰는 117위였다. 공무원과 정치인 집단의 점수는 세계 꼴찌이자 후진국 수준이다.



후진 집단끼리의 야합(野合)으로 생산된 불량품을 국민들이 언제까지 뒷감당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헌법상 삼권분립(三權分立)의 원칙을 적용해 영국처럼 담당자 이외에는 공무원과 정치인의 접촉을 엄격히 금지하는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다음 정권은 관료 집단의 정치화를 막고 국민을 위한 조직으로 재탄생시킬 혁신책을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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