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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6.30] 화이트칼라, 성장의 걸림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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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185회 작성일 2012-07-0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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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시간 게임, 사적 통화 예사…

점심 저녁 몰려가 술 퍼마시는 생산성 제자리 한국 화이트칼라

國富에 기여한 건 블루칼라지만 사무직이 생산직 지배하는 구조

넥타이 부대 꽁무니 불 댕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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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img_caption.jpg\" 송희영 논설주간



\"점심때 자리를 비우지 말라.\" 한국인 사원이 글로벌 회사의 미국 본부에 입사한 후 한 달 만에 들은 경고다. 점심 시간 내내 보이지 않으면 다른 회사로 옮기려고 면접을 보러 간 것으로 해석한다고 했다. 사원들은 집에서 가져온 샌드위치를 혼자 먹거나, 햄버거나 피자를 단체로 주문해 간단히 때웠다.



거래처를 접대해도 참석자 숫자와 식사 메뉴가 다 적힌 영수증을 회사에 제출해야 했다. 총액만 인쇄된 영수증은 무효다. 팀장의 사전 허락은 필수 절차이고, 접대 식사에서 와인 한 잔 값은 회사가 내주지만 두 번째 잔부터는 자기 지갑에서 지불해야 했다.



글로벌 회사들이 화이트칼라 사원을 다루는 방식은 우리와는 딴판이다. 출근하자마자 신문을 펴들거나 커피를 마시며 엊저녁 술자리의 뒷얘기를 주고받는 풍경은 볼 수 없다. 사무직 사원들은 15분, 30분, 또는 1시간 단위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일기장 쓰듯 매일 기록해야 한다. 거기에 \'3시, 주말 캠핑 협의에 아내와 8분간 통화\'라고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화이트칼라의 업무 긴장도를 높이려고 과학을 동원한다. 뉴욕의 어느 거대 은행은 한때 사무실 온도를 섭씨 17도로 유지했다. 온도가 높으면 사원이 나른해져 일 처리가 늦어진다는 보고서를 믿고 한겨울에도 싸늘한 온도에 맞췄다. 미국 증권회사 중에는 공조장치를 이용해 사무실에 산소를 공급하는 곳도 있다. 경영자 입장에선 산소량이 많은 사무실에서는 사원의 순간적인 판단력이 훨씬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외국인이 한국 회사에 들어와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사무직 사원들이 일하는 모습이다. 우리는 잡담과 사적(私的)인 통화는 기본권처럼 보장받는다. 업무 시간 중에도 사무실 컴퓨터로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다. 달성해야 할 성과(成果)나 목표가 팀 단위로 설정돼 있고 사원 개개인에게 할당되지 않아 책임 의식이 약하다. 회의 전에 회의 자료를 돌리는 일은 드물고, 자료를 미리 주어도 읽어 보지 않고 회의실에 들어오는 부원이 많다. 과장, 부장이 어떤 방향으로 결론을 낼지 윗분의 입놀림에 촉각을 곤두세울 뿐 자기 나름의 의견을 내지 않는다.



한 외국인이 요즘 세계적인 회사가 됐다고 뽐내는 한국 기업에서 3년간 일하다 떠났다. 그는 3년 내내 풀 수 없었던 의문을 던졌다. \"아침 미팅은 업무와 직접 관련없는 잡담이 절반쯤 섞인 대화로 1시간을 보냅니다. 미팅 후엔 점심·저녁 약속을 잡는다고 여기저기 통화를 합니다. 점심때는 우르르 몰려나가고 1시간 이상 식사하면서 술을 마십니다. 오후가 되면 출출하다며 라면집에 가고, 저녁에는 모든 부원이 모여 법인카드로 회식을 합니다. 이런 회사가 어떻게 세계 최고 제품을 만들어내는 겁니까?\"



그가 제기하는 의문이 바로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골칫거리다. 우리나라 블루칼라 층(層)의 생산성은 끊임없이 상승해왔던 반면, 화이트칼라층의 생산성은 그다지 나아진 게 없다.



블루칼라가 많은 제조업종의 생산성(부가가치 기준)은 2008년 이후 3년 새 16.6% 상승했다. 하지만 대다수가 화이트칼라이고 고임금을 받는 금융·보험업종의 생산성은 3년 동안 100에서 96.1로 하락했다. 교육서비스업종은 90으로, 과학·기술서비스업은 87.9까지 추락했다.



회사 이익을 늘리고 국부(國富)를 키우는 데 훨씬 기여한 쪽은 블루칼라들이고, 머리를 굴리며 컴퓨터 자판이나 두들기는 사무직은 큰 도움이 못 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무직이 기여한 몫을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 공헌도는 기술자와 생산직 사원들이 공정(工程)을 개선해 원가 절감에 기여한 것에 비해 한참 낮다고 봐야 한다.



독일 경제가 건강한 이유 중 하나는 블루칼라 계층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독일 회사들의 생산직 사원 숫자는 대개 사무직보다 5배 안팎 많고, 회사 상층부 경영진도 생산직 출신이 점유하고 있다. 우리 기업의 생산직 사원 숫자는 사무직보다 2배 많은 정도다. 하얀 와이셔츠 집단이 상위에서 파란 작업복 부대(部隊)를 지배하는 구조라는 뜻이다. 공장 라인에서 불량률을 0.1%포인트 낮추는 일을 맡는 쪽보다는 에어컨 잘 돌고 비서가 커피를 갖다주는 본사 빌딩에서 \'눈치 10단\'으로 사는 편이 출세의 지름길이다.



우리나라 취업자 숫자는 총 2424만명이고, 그중 화이트칼라는 1000만명으로 추정된다. 한국 경제는 지금까지 블루칼라가 애써준 덕분에 국민소득 2만달러 국가로 설 수 있었다. 우리 경제가 다시 성장 궤도에 올라서려면 1000만 화이트칼라들의 꽁무니에 불을 댕기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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