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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6.20] 아리랑과 애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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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840회 작성일 2012-06-2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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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수석논설위원



광복 직후인 1945년 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요인들과 함께 환국한 장준하는 귀국 비행기 안에서 멀리 조국 땅을 목격했던 때의 감격을 자서전 ‘돌베개’에서 소개했다. ‘누군가가 외마디를 외쳤다. “아, 보인다. 한국이” 모두들 옹색한 비행기 창문으로 쏠렸다. 기체 안에서는 애국가가 합창됐고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애국가는 우리들의 심정에 경련을 일으켰다. 애국가는 곧 울음소리로 변질됐다. 그것은 노래가 아닌 하나의 절규였다.’



얻을 것 없는 이석기의 논쟁



요즘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는 작곡가 안익태가 일제강점기인 1935년 미국 유학 중에 작곡했다. 그는 미국 내 한인 교회에서 애국가를 스코틀랜드 노래인 ‘올드 랭 사인’ 곡조에 맞춰 부르는 것을 보고 작곡을 결심했다. 장준하는 1944년 가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만든 항일군대인 광복군에 합류했을 때 다른 광복군들이 이미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임시정부를 지원하던 미국 교포사회가 안익태의 애국가를 임시정부에 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애국가 가사는 윤치호가 1908년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전에도 비슷한 가사들이 여러 기록에 등장한다. 독립신문 1899년 6월 29일자에는 ‘배재학당의 방학식 때 학생들이 국가를 불렀다’는 기사가 나오고 노랫말 안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조선 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구절이 들어 있었다. 오늘날의 애국가 가사는 윤치호가 펴낸 ‘찬미가’라는 책에 처음 등장한다. 애국가 가사는 조선조 말 나라가 멸망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한과 염원이 축적된 결과물이었다.



애국가는 1919년 3·1운동 때에도 불렸다. 3·1운동의 전말을 기록한 미국 언론인 칼튼 켄달은 ‘한국독립운동의 진상’이라는 책에서 ‘군중들은 올드 랭 사인의 곡에 맞춘 한국의 국가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면서 거리를 가득 메웠다’고 전했다. 애국가는 국권 침탈 과정, 3·1운동 현장, 임시정부, 광복군,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식, 민주화시위 현장,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로 100년 이상 한국인과 고락을 함께해 왔다.



종북 주사파 출신인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국가 논란을 일으켰다. 그의 발언 가운데 “아리랑이 우리나라 국가 같은 것”이라는 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애국가와 아리랑을 대비시키는 인식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주사파 출신, 이 수준인가



우리에게 아리랑은 대표적인 민요이지만 북한에서는 혁명가요로 인식되고 있다. 1937년 6월 김일성이 이끄는 부대는 일본군을 상대로 함경도 갑산의 보천보와 간삼봉에서 전투를 치르면서 아리랑을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아리랑 연구가인 김연갑 씨는 ‘간삼봉에 울린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담은 북한 음반을 최근 입수했다. 이 음반에는 ‘빨치산 여장군이 선창 떼신 아리랑/능선마다 뇌성 타고 울렸네/아리랑 스리랑 간삼봉에 불비 와서 아라리가 났네’라는 가사가 나온다. ‘빨치산 여장군’은 김일성의 처 김정숙을 의미한다. 간삼봉 전투 이후 북한에서 아리랑은 저항과 투쟁을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 잡았다. 김일성의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에는 김일성이 간삼봉 전투에서 아리랑을 불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1989년 3월 방북한 문익환 목사가 김일성과 면담했을 때도 아리랑을 통일 이후에 국가로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대화가 오갔다. 당시 문 목사가 “아리랑 가사 중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으냐”고 말하자 김일성은 “우리는 벌써 바꿔 부르고 있다”면서 “앞으로 같이 연구를 해보자”고 답변했다.



이석기 의원이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며 아리랑이 국가”라고 말한 것은 그가 갖고 있는 정체성의 다른 측면을 드러낸 것이다. 이번 발언을 두고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서 이뤄졌다거나 지지층 결집을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그가 애국가 논쟁의 불을 지핀다고 해서 국민이 통진당의 부도덕성을 잊을 리 없고, 대한민국과 함께해 온 애국가의 자리도 흔들리지 않는다. 종북 세력 역시 이런 논쟁이 벌어진다고 해서 더 뭉치고 말고 할 사람들이 아니다. 이 의원이 애국가 논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의 발언이 시사하는 것은 오히려 주사파 출신들의 수준이다. 통진당 김선동 의원이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발견된 뭉텅이 표를 두고 “풀이 다시 살아나서 붙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을 때 좀 황당했다. 이석기 의원의 “종북보다 종미(從美)가 문제”라는 발언, 역시 주사파 출신인 김재연 의원의 “북한이 공격해도 대응해선 안 된다”는 발언 등은 이들이 딴 세상에서 엉뚱한 판단력으로 살아왔다는 증거였다. 애국가 논쟁은 이들에게서 종북의 그늘을 다시 엿보게 되는 블랙코미디로 끝날 공산이 크지만 이들의 터무니없는 자질을 확인하게 된 것은 그나마 소득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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