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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4.7] '따라잡기 경제'로는 결국 몰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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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500회 작성일 2012-04-0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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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반도체 80% 휩쓸던 日, 25년 만에 10%로 곤두박질… 소니·샤프·파나소닉도 추락…

한 세기 동안 歐美 흉내냈지만 기술 혁신 담벼락에 부닥친 것, 우리도 그 벽 넘을 전략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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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img_caption.jpg\" 송희영 논설주간


일본 반도체 회사 엘피다가 무너졌다. 12년 전 히타치와 NEC·미쓰비시전기의 반도체 부문을 합병해 발족했던 회사다. 며칠 전 법정관리에 들어가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구조선을 애타게 찾고 있다.


엘피다를 10년간 이끌었던 사카모토 유키오 사장은 \'타도 삼성\'을 자주 입에 올렸다. 2009년 일본 정부로부터 공적 자금 300억엔을 지원받을 때 \'삼성 타도\' 논리가 제대로 먹혔다. 한때는 대만 반도체 업계와 연합함대를 편성하려고 했고,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와도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침울한 장송곡(葬送曲)은 삼성이 아니라 엘피다에서 먼저 울려 퍼졌다.


25년 전 일본은 세계 반도체 시장(D램 기준)의 70~80%를 장악했었다. 요즘의 시장 점유율은 10% 안팎이다. 1995년 세계 시장을 통째로 지배하던 액정디스플레이는 10년 만에 10% 선까지 떨어졌다. 일본산 내비게이션·TV·태양전지 셀은 더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잃고 있다.


샤프는 액정 화면에서 선두주자였다. 동영상 카메라나 PC에서 많은 \'세계 최초\'의 기술을 갖고 있다. 그런 샤프가 지난달 새로운 노사 합의에 성공했다. 임금을 5월부터 2% 삭감한다는 내용이다. 임원·간부는 이미 5% 이상 30%까지 잘라냈다.


10년 사이 일본 제조업의 많은 것이 변했다. \'소니은행\'이라고 불리며 이익을 주체하지 못하던 소니그룹이 연달아 적자 성적표를 내더니 최고 경영진을 경질했다. 파나소닉도 \'핵폭탄에나 무너질 것\'이라던 판매망을 으스대다 급속 후진 페달을 밟고 있다. \'경영의 신(神)\'으로 존경받던 파나소닉의 창업자는 지하에서 경영을 잘못 가르친 자신을 탓할까, 아니면 경영을 잘못 배운 후배 경영인들을 탓할까.


엘피다의 경영진은 정부를 탓하고 나섰다. 환율이 급소를 쳤다는 것이다. \"최근 4년 동안 엔화는 줄곧 오르고 원화는 떨어져 한국산과 일본산 반도체 간에 70% 가격 차이가 났다.\" 반도체 기술 개발 경쟁에서 70% 가격 차이는 100m 달리기를 20m 뒤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샤프는 높은 세금을 들먹인다. 일본의 법인세는 40% 선이지만 한국의 경우 각종 감면 혜택까지 감안하면 실질 법인세가 15% 안팎에 불과하다고 툴툴거린다. \"한국에선 세금으로 수천억원씩 들어가는 공장을 지어주는 셈이다. 한국 기업은 국민이 깔아준 라인에서 제품만 생산하면 된다.\"


일본 경영인들은 한국보다 훨씬 비싼 전기료를 불평하고, 총리가 해외 마케팅에 나서지 않는 것을 탓하기도 한다. 인허가 도장을 찍는 데 굼뜬 관료도 비판한다. 궁지에 몰리니 불만의 메뉴는 해마다 늘어간다. 화살이 무능한 정치권을 거쳐 관료 집단을 향해 쏟아지더니, 어느새 방향을 돌려 내부의 적(敵)을 찾기 시작한 듯하다. 쪼들리는 형편에 내분(內紛)을 겪는 회사가 늘고 있다.


일본 제조업은 한 세기 넘도록 미국과 유럽을 따라잡는 공정(工程)을 성공시켰다. 철강·조선업은 유럽에서, TV·반도체는 미국에서 발명된 것을 가져왔다. 자동차·전기·인터넷을 처음 선보인 나라도 일본이 아니다. 일본은 남이 개발해 놓은 것을 조금 싸고 조금 좋게 바꿔 남보다 조금 빠르게 팔았을 뿐이다. 한 가지 더 보태면 일본인이 남들보다 부지런히 일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남의 특허를 비틀어 베끼는 모방(模倣) 기술이나 남의 발명품을 몇m 연장하는 개량(改良) 기술의 한계는 여기까지다. 뒤따라가는 전략만으로 나라 경제를 100년 이상 끌고 가기란 힘에 부친다는 것을 일본이 보여주고 있다. 다른 여러 원인도 있지만, \'기술 혁신의 담벼락\'에 부닥쳐 성장의 엔진이 식어가는 증상이 뚜렷해진 것이다.


지구상에서 창조적 신기술이 가장 많이 등장했던 시기는 1873년 무렵이라고 한다. 자동차·전기가 발명되던 산업혁명의 한 중간지점이다. 인류의 기술 혁신은 400여년간 계속 늘다가 그때 꼭짓점을 찍은 후로는 줄어들었다. 지금은 르네상스시대인 15세기 수준까지 신기술 개발 속도가 추락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엔지니어들이 아무리 많은 특허를 출원한들 잔기술이 늘어날 뿐이다. 기차·비행기를 뛰어넘는 이동수단이나 종이처럼 가벼운 철강을 만들 큰 기술은 나오지 못하고 있다.


기술의 장벽 앞에서 세계 경제의 성장마저 시들해진 시대다. 몇 개 한국산 상품의 축배가 해마다 찾아오는 설 잔치처럼 이어질 것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따라잡기의 선구자 일본을 베끼며 따라잡으려고 골몰했던 나라가 지난 50년의 한국 아닌가. 일본 제조업 성장의 굴절을 보며 \'기술의 벽\'을 뛰어넘을 전략을 찾는 것이 우리 경제의 등대를 밝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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