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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2.15] 권위가 붕괴된 뒤엔 무엇이 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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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217회 작성일 2012-02-1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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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우리 사회는 기존 권위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시대를 맞고 있다. 국가권력을 행사해온 대통령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난주 “대통령 욕을 자기 집 강아지 욕보다 더 심하게 한다.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는가”라고 개탄한 것은 이 나라 최고 권력자의 현 위치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판사를 향해서는 “재판 똑바로 하라”는 목소리가 거침없이 터져 나온다. 어느 나라든 법정에서 재판관을 부를 때 따라다니는 ‘존경하는 재판관님’은 이 땅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팽배한 국회의원에 대한 반감과 불신은 ‘상식’을 앞세운 ‘비(非)정치인’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묵직한 존재감을 낳으며 증폭되고 있다. 요즘 야권의 높은 지지율은 상대편의 실패에서 비롯된 일시적 거품에 불과하다. 다음 선거가 치러질 4년 후, 5년 후에는 정치 집단들의 처지가 또 뒤바뀔 것이다.



“믿음이 이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절대적 신뢰를 요구하는 종교계 역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조계종 조사에서 종교계의 신뢰도는 시민사회 의료계 학계는 물론이고 대기업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직자들은 그나마 정부 국회 법조계보다는 신뢰도가 높은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2010년 개신교 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실시한 조사에서도 ‘한국 교회를 신뢰하느냐’는 설문에 17.6%만이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정조 死後 조선 몰락의 교훈



교육계도 권위 추락이 두드러진 분야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폭행 또는 협박을 당하는 사례는 2006년 7건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146건으로 20배 이상 늘었다. 초등학생까지 “선생님, 학생인권조례 생겼으니 저한테 간섭 마세요”라며 맞서는 세상이다. ‘반값 등록금’ 논란 이후 대학들은 졸지에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려 관계자들은 어디에 가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광복 이후 건국, 6·25전쟁, 산업화, 민주화의 숨 가쁜 과정을 이어가며 어느 나라보다도 급격한 사회변동을 겪어 왔지만 요즘처럼 단기간에 사회 시스템 전체가 뒤흔들리고 기존 권력에 대한 경멸과 조롱의 목소리가 커진 때는 없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분노를 부채질하는 세력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가 운영과 각 분야에서 권력을 누려온 사람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기존 권위의 해체는 거대한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현상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역사적으로 국가 권위의 부재와 공백은 사회를 극도의 혼란으로 내몰고 민생과 약자들을 더 궁지에 빠뜨렸던 사례가 허다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조선 역사에서 대표적인 수수께끼는 18세기 후반 정조라는 걸출한 군주를 만난 조선이 정조가 죽고 난 뒤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가 급기야 국권까지 내주는 과정이다. 정조 시대는 조선 역사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윤택했던 시기로 꼽힌다. 정조는 문화적으로도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군주로 평가받는다. 그가 사망한 해는 1800년이다. 이후 조선은 역사에 나와 있는 대로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는다. 아무리 유능한 왕을 잃었다고 해도 잘나가던 조선이 갑자기 무너져 버리는 상황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 책임을 세도정치에 돌린다. 왕비를 들여보낸 외척 세도가들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관직을 팔아먹는 등 부패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설득력 있는 붕괴의 원인으로 국가 권위의 공백 상태를 들고 싶다.



즉위 때 권력 기반이 매우 취약했던 정조는 왕조의 권위를 세우는 데 누구보다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재임 중 66차례에 걸쳐 능행(陵行·선왕의 능에 거둥함)을 하면서 도중에 백성의 민원을 직접 청취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역시 왕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신하들도 탁월한 학문적 역량을 지닌 정조의 카리스마에 압도됐다. 조선의 황금기는 정조의 강력한 왕권에서 나온 것이다. 정조의 뒤를 이은 순조는 10세 때 왕위에 오른다. 어린 순조를 대신한 세도정치는 필연적으로 자신이 속한 가문의 이익을 앞세울 수밖에 없었다. 구심점이 사라진 조선에선 저마다 잇속 챙기기에 바빴다.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고 국가 기강은 땅에 떨어졌다. 때마침 밀어닥친 제국주의의 거센 파도 앞에 조선은 속절없이 붕괴됐다.



민생과 弱者 고통받는 일 없어야




현재 우리 사회의 권위 해체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가 권위의 공백은 혼란과 왜곡을 야기한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새로운 권위를 차지하기 위한 내부 투쟁이 격화되면 사회 구성원들은 외부 상황에는 무관심해지고 내부 문제에 매달리기 십상이다.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난다. 세계 경제의 침체, 중국의 부상에 따른 안보 문제 등 심각한 외부 현안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국내에선 위기의식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조선 말기도 비슷했다.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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