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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렬 칼럼/11.22] “나는 너희를 잊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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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637회 작성일 2011-11-2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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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선생은 “선비는 천자와 벗하여도 참람하지 않고, 왕이나 공경(公卿)으로 빈곤한 선비에게 몸을 굽히더라도 욕되지 않다”고 했다. 선비는 지조를 바탕으로 학덕을 통해 품격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선비가 지존의 천자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추운 겨울에도 값싸게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와 같은 고고한 품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왕이 선비에게 몸을 굽혀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생활이 궁핍하더라도 꺾이지 않고 늘 푸른 대나무와 같은 지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이처럼 고매한 인격과 품격이 있다면 국가도 그에 맞는 국격(國格)이 있다. 사전은 국격을 국가와 구성원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품위와 격조라고 정의하고 있다. 국격은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일 수도 있고, 경제력일 수도 있다. 국격은 결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국방 등 모든 분야의 수준을 종합해 평가받는 ‘국가의 수준’이다.



미국은 대국이면서도 강국이다. 그러나 품격을 이야기할 때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나라들보다 높다고 할 수 없다. 국격의 수준은 힘과 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미국과 거의 같은 수준의 대국이지만 근세 격변기를 거치면서 격이 많이 떨어진 나라가 됐다. 북유럽의 스웨덴이나 핀란드 노르웨이는 경제·군사 면에서 강국은 아니나 국가의 품격은 꽤 높은 나라로 평가받는다.



국민들의 여유로운 삶과 국민이 자기 나라에 갖는 무한한 자긍심은 국격의 주요 결정요소 가운데 하나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간에서 전사한 병사 유해가 미 공군기지에 도착하는 새벽시간에 맞춰 수천 ㎞를 날아가 거수경례로 정중하게 맞는 모습을 보면서 미 국민들은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지난 2004년 12월 8일 고 노무현 대통령은 유럽 순방 후 귀로에 이라크 북부 아르빌의 자이툰 부대를 전격 방문해 수고하는 장병들을 힘껏 껴안아 주었다. 그 사진을 보는 국민들은 흐뭇했다.



연평도 포격 1년, 북한군의 도발에 맞서 부상을 입으며 영토를 수호한 젊은이들이 심각한 후유증으로 고통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조국은 ‘나는 너희를 잊었노라’ 하며 외면하고 있다. 이들의 병상을 찾아 격려하며 ‘유공자 선정’을 약속했던 높은 분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국민으로 하여금 조국에 대한 자긍심과 애국심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드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다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강렬 논설위원 ry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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