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 칼럼/9.6] 고대 성추행 사건과 ‘사법 성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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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651회 작성일 2011-09-08 10:46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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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많은 성폭력 사건과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사법적 정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사법 성폭행’이라 부를 정도의 2차 피해를 당하는 현실을 오롯이 보여주었습니다. 재판이 진행중이지만, 더 이상의 2차 피해와 유사사례를 막기 위해서도 그동안의 과정을 되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2차 피해는 애초 피의사실을 인정했던 가해자 가운데 한 명이 혐의를 부인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 가해자 쪽은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너도 끝’이라며 피해자를 협박하고, 동료 학생들에게 ‘피해자가 이기적인가, 사생활이 문란했는가, 사이코패스인가’ 따위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피해자가 특정된 것이지요. 피해자가 왕따당하는 느낌을 받은 것은 이런 연유에서였습니다.
2차 피해는 법정 안에서도 일어났습니다. 가해자의 변호인은 피해 사실과 하등 관련없는 피해자의 이성관계에 관한 일방적인 주장을 펴 마치 성추행을 유발한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는 양 부각시키려 했습니다. 피해자의 문제행실이 성폭력 사건을 부른다는 통념에 기대려는 이런 접근은 가해자 변호사들이 흔히 취하는 방식이지만, 일선 수사관이나 심지어 판사까지도 이런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성폭력사건 재판에서 판사가 사건과 무관한 노래방도우미 경력을 집중 추궁해 피해자를 자살로 몰아간 사건이 단적인 예입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영상증언 과정에 변호사의 참여를 거부해 피해자로 하여금 가해자의 변호사 앞에 무방비로 서게 만들었습니다. ‘성폭력범죄처벌법’은 신뢰관계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게 했지만, 대법원 규칙에 변호사는 신뢰관계인으로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피해자가 오히려 낙인찍히는 상황이 초래됐지만, 고려대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아무런 조처도 없이 가해자 처리를 미적거렸고, 그 와중에 가해자들이 재입학이 가능한 제적으로 처리될 것이란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견디다 못한 피해자가 방송을 통해 자신의 육성으로 2차 피해 현실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명문 의대생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등장해 세인의 주목을 끈 사건의 피해자가 이럴진대 가해자에 비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여성들이 피해자가 되는 통상의 경우, 그 피해자들이 겪는 2차 피해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피해자가 사법 정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사법 성폭행’이란 2차 피해를 입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겠습니다. 그러려면 ‘사법 성폭행’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당장 문제가 된 대법원 규칙을 개정해 신뢰관계인에 변호사를 포함시켜 영상증언 때 법률적 조력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또 소송 과정에서 피해 사실과 관련없는 이성관계 등을 노출하지 않을 수 있도록 소송절차법에 피해자 보호 규정을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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