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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10.26] 대한민국의 ‘고립된 섬’ 국사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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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737회 작성일 2011-10-2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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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시작된 역사교과서 논쟁이 갈수록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논쟁은 2008년 11월 교육과학기술부가 ‘고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6종에 대해 수정 지시를 내리면서 본격화됐다. 이들 교과서는 이전부터 좌(左)편향적 시각에서 기술해 청소년에게 왜곡된 국가관을 심어주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국사학 교수와 교사들로 구성된 저자들은 정부를 상대로 수정 지시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역사 연구단체들도 정부를 성토했다. 이때부터 정부와 국사학계는 극한 대립관계로 치달아 왔다.



역사교과서 토론회에 거는 기대



2009년에도 국사학계는 고교 1학년 ‘역사’ 과목을 ‘한국사’로 변경하는 문제를 놓고 정부에 맞섰다. 올해 8월 교과부가 역사 교육과정(교과서 서술지침)에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면서부터는 감정 대결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달 초 한국사 연구단체들이 ‘자유민주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개최한 토론회 자리에는 ‘반북 멸공주의’ ‘수구냉전세력’ ‘냉전적 보수세력’ 등 다분히 감정적인 어휘들이 등장했다. 현 정부 혹은 자신들과는 역사관이 다른 학자들을 지칭하는 듯하다. 어느 국사학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것을 ‘날치기 개악’이라고 주장한 글을 올렸다. 그는 또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색깔론적 정치구호’라고 못 박았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역사교과서에서 민주주의의 뜻을 좀 더 분명히 하자는 의도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사학계의 인식이 이렇다면 이성적 토론이 어려운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최근 자유민주주의 논쟁은 국사학계 내부에 팽배한 역사인식을 외부에 확연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반대론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이유로 반공주의 색채가 강하고 다른 민주주의를 배제하는 개념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과거 대한민국을 ‘자유대한’으로, 대만을 ‘자유중국’으로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억압적 공산 체제인 북한이나 중공과 대비시켜 대한민국과 대만 국민이 훨씬 자유로운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강조하는 뜻이었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위협 속에서 힘들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왔던 것 또한 역사적 진실이다. 학생들은 이런 현대사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국사학계가 반공 용어라는 이유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극구 반대하는 것은 이런 역사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지 않았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일이기도 하다.



새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집필 기준을 만들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병용하는 한편 ‘대한민국은 유엔 승인을 받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내용에서 ‘한반도의 유일한’을 삭제한 최종안을 교과부에 제출했다. 이대로 교과서를 만들면 청소년들의 국가적 정체성에 혼란을 자초하게 된다.



정치권 앞서 내부에서 풀어야



앞으로 수정 보완할 수 있는 절차들이 남아 있으므로 정부 차원에서 행정력으로 밀어붙이면 바로잡기가 가능하겠지만 이럴 경우 후유증 또한 적지 않을 듯하다. 내년 말 대통령선거에서 만약 역사관이 다른 정권으로 교체된다면 교과서 내용이 또 달라질 가능성이 있고 앞으로 권력에 따라 역사교과서가 흔들리는 사태가 이어질 수 있다. 상당수 현장 교사들은 지금도 학생들에게 근·현대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곤혹스럽다고 털어놓는다.
우리 역사교과서 논쟁과 흡사한 논쟁이 1994년 미국에서도 벌어졌다. 국가예산으로 초중고교에 사용될 역사표준서(역사교육의 방향을 제시한 표준화된 커리큘럼)를 제작했으나 그 안에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 건국의 원훈이나 헌법에 관한 내용은 들어 있지 않고 인디언, 흑인, 여성에 대한 탄압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질타를 받았다. 결국 미국 상원은 1995년 1월 ‘역사표준서가 국가의 기억을 파괴하려는 반지성적인 것이며 미국 역사교육에 위협적’이라고 비난하는 결의안을 99 대 1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역사 폄하와 왜곡에 대해 정치권이 나서 시정한 사례였다.



역사교과서의 ‘자유민주주의’를 주제로 각각 찬성과 반대 의견을 갖고 있는 학자들이 28일 한자리에 모여 토론회를 갖는다. 서로 등을 돌려온 우파 좌파 학자들이 만나는 흔치 않은 행사다. 국내 학자들은 정치권 등이 소통을 못 한다며 야단을 치지만 정작 내부 소통에는 무관심한 게 우리 학계의 씁쓸한 현실이다. 이번 역사교과서 논쟁에서 드러났듯이 특히 국사학계는 대한민국과는 별개의 ‘고립된 섬’처럼 존재해 왔다는 인상을 준다. 관련 학계가 허심탄회한 만남을 통해 서로 견해차를 좁히고 적극적으로 해법을 찾아 나서는 것이 순서다. 이번 행사가 생산적 결말을 맺는다면 대결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의 진로에 대한 논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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