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칼럼/12.2] '내 집 마련' 정책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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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814회 작성일 2011-12-05 10:36본문
고성장 시대 중산층 육성하며 \'내 집 마련\' 정책 추진했지만 이젠 비정규직·하우스푸어 늘고 독신생활자·2인가구 급증
남의 집에서 싼 값에 살 수 있는 임대주택으로 정책 방향 옮겨야
지난주 서울시 재개발·재건축 아파트를 둘러싼 논쟁이 잠시 떠올랐다가 잠복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재건축에 비판적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취임 후 개포동 재건축 계획 승인이 보류되자 현지 아파트 값은 수천만원 이상 폭락했다. 주민들은 술렁거렸다.
서울시는 \"인위적인 속도조절은 없다\"며 무마했으나, 이번엔 권도엽 국토해양부장관이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서울시 주택정책은 친(親)서민이 아니다. 서울시민을 서울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다.\" 박 시장은 이에 \"염치가 먼저\"라고 반박하면서도 더 이상 논쟁을 피했다.
박 시장도 두려웠으리라. 투기를 부추기는 재개발·재건축을 규제하는 게 맞지만 가격 폭락을 원망하는 주민들의 집단 아우성을 감당하기는 힘들다. 권 장관도 재개발·재건축으로 아파트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는 했지만, 그것만이 해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툼이 멈춘 배경에는 해답을 찾지 못한 주택정책 당국자들의 고민이 깔려 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주택을 둘러싼 갈등과 고통의 출발점은 \'내 집 마련\' 정책이다. 아파트값 하락, 전·월세 파동, 재개발·재건축 소동 등 주택문제들은 지난 40여년 동안 내 집 마련의 꿈을 너무 키워놓은 데서 시작됐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주택 1채를 선물하겠다는 투의 약속을 빠뜨리지 않았고, 정부는 아파트 대량공급 정책을 밀어붙였다. 경기부양책으로 아파트 값을 부추기고 이곳저곳에 신도시를 지었다.
국민은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은 꿈에 빠져들었다. 열심히 일하면 내 손으로 장만한 내 집, 우리 가족만의 오붓한 내 집을 챙길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정사원으로 취직해 결혼하면 마이홈을 장만하고, 가장(家長)은 돈을 벌고 부인은 육아와 자녀교육을 맡았다. 우리 중산층은 그렇게 부피를 더해갔다.
내 집 마련 정책은 고성장 시대에 이런 가족주의를 기반으로 실행됐다. 부부와 자녀 한두 명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표준가족\'을 전제로 삼았다. 가장은 회사에 들어가 승진을 거듭하며 장기근무하는 것을 상식으로 생각했다. 주택자금을 대출받아도 원리금을 갚을 만한 소득은 확보되었고, 가다 보면 아파트 값이 올라 대출금 부담을 몽땅 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변하고 말았다. 비정규직은 정사원만큼 많아졌고, 그들은 은행 대출금 이자를 제때 내지 못해 고통스러워한다. 대출금을 얹어 마이홈의 꿈을 실현했다가 원리금 갚느라 생활에 허덕이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가 108만 가구에 달한다는 통계도 나왔다. 1가구 1주택 정책의 전제 조건인 \'표준가족\'의 틀도 무너졌다. 현재 1인가구는 414만, 2인가구는 421만호다. 전체 가구 중 거의 절반(48.2%)이 2인 이하 미니가정이다. 판잣집, 비닐하우스, 찜질방, 고시원, 움막에서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사는 가구도 전국에 25만이다.
\'내 집 마련\' 정책을 지탱해오던 기둥들이 무너진 시대에 정부는 옛날 정책을 그대로 밀고 있다. 뉴타운, 휴먼타운, 미니 신도시 등이 줄줄이 부실화해버린 것도 조각조각 갈라진 암반(巖盤) 위에 고층 탑을 올리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무턱대고 주택 공급을 늘린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30~40대 젊은 세대 중 상당수가 오히려 내 집 마련의 꿈을 성취한 순간 대출금 부담에 찌드는 쓴맛을 보고 있다. 반값 아파트로 홍보하던 보금자리주택이 바로 옆 아파트 단지의 값을 하락시킨다는 민원도 적지 않다.
우리 주택 보급률은 2002년 처음 100%를 넘어섰다. 주택이 태부족했던 시절은 가고 바야흐로 주택 잉여 국면이다. 자기 집 소유율은 61% 수준이라지만 전·월세라도 들어가 살 집은 어딘가에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이제 와서 \'내 집 마련\' 정책을 포기하겠다고 공표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내 집 마련\'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임대주택 쪽으로 주택 정책의 중심축을 옮기고, 남의 집에서 싼값에 살 수 있는 임대 우대 정책을 펴야 한다. 나홀로 가구, 독신생활자, 한부모 가구가 다수가 돼버린 현실에서 \'비(非)표준가구\'에 대출금 지원과 임대아파트 입주권 분양에서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기업이 사원들에게 값싼 임대주택을 지어주면 세금 감면 혜택을 줘야 한다.
\'편안한 주거\'는 인간이 갈망하는 가장 본능적인 복지(福祉) 중 하나다. 손에 잡히지 않는 내 집의 꿈을 무작정 키워주기보다는 남의 집에서라도 발 뻗고 잘 수 있는 집을 싸게 공급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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