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 칼럼/12.28] ‘北왕조’의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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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023회 작성일 2011-12-29 10:15본문
이용식/논설위원
김정일이 북한을 직접 지배한 17년 동안 북한 주민의 소득은 세계 최빈국 수준에서 게걸음을 했다. 김일성 사망 다음해인 1995년 1인당 소득(GNI)은 1034달러였으나 2008년엔 1065달러였고, 2009년과 2010년엔 각각 0.9%, 0.5%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한국은행 추정통계). 1~3%대이지만 플러스 성장을 한 기간은 1999~2005년으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 지원이 \'생명줄\' 역할을 했다. 원화 기준으로 2010년 한국의 1인당 GNI는 2400만원, 북한은 124만원으로 19배 차이가 났다. 특권층 200만명 정도가 상당한 특혜를 누리고 있음을 고려하면 일반 주민의 소득은 훨씬 적다.
김정일이 \'당중앙\'이라는 호칭으로 김일성의 후계자로 등장했던 1974년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보다 앞섰거나 최소한 대등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북한 경제는 가라앉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 18년 동안 세계 최빈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것과, 김정일의 17년(후계자 기간까지 포함하면 37년)을 비교하면 박 대통령의 위대성과 김정일의 죄악상이 뚜렷이 대비된다. \'북한의 종말(The End of North Korea)\'을 저술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니컬러스 에버슈타트는 김정일이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첫 사회주의권 지배자 ▲문맹국(文盲國)이 아님에도 평시에 수많은 아사자(餓死者)를 낸 첫 지배자 ▲산업화된 경제를 물려받고도 식량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한 첫 지배자라는 최악의 세계기록을 남겼고, 그의 유산(legacy)은 폐허가 된 경제, 노예처럼 열악한 삶을 사는 주민, 부패하고 기생(寄生)하는 엘리트, 파탄난 이데올로기와 핵 프로그램이라고 정리해 발표했다.
이처럼 김정일이 지도자로서 제대로 한 일은 전혀 없다. 주민의 10%가 굶어죽었을 정도로 경제 정책에 실패했다. 선군(先軍)정치를 내걸고 핵개발에 나섰지만 고립을 자초했을 뿐이다. 모든 문제가 한국·미국 탓이라고 핑계를 대면서도 두 나라와 중국 등 외부지원에 의존하는 \'기생경제\'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김일성 시대의 경제개발 계획이나 주민 회유책, 최소한의 실용주의조차 사라졌다. 주체사상을 내세워 개혁·개방과 관련된 움직임을 적(敵)으로 규정했다.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은 고사하고 배급제 등 국가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다. 외부 안보에도, 내부 안보에도 실패했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가 될 당시, 권력 세습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북한 안팎에서 있었지만 김정일이 그 만한 역량을 갖췄다는 전제에서 내부 절차가 진행될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등 일부 인사들도 김정일을 만난 뒤 그의 \'식견(識見)\'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실적은 \'무능하고 사악한 최악의 독재자\'임을 객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죽었다고 해서 생전의 잘못이 잊어지거나 미화(美化)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이제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김정은의 통치력은 김정일에도 훨씬 못미칠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정은이 후계자 내정 상태에서 주도한 2009년 말 화폐개혁, 2010년의 천안함·연평도 도발은 모두 실패하고, 역풍을 맞았다. 결국 실무책임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자신은 빠져나갔다. 김일성 사후에 김정일은 \'효심\'\'3년상(喪)\'을 강조하며 김일성이 맡았던 자리를 삼가고, 연장자들을 대우하는 시늉이라도 했다. 이에 비해 김정은은 김정일 장례 절차도 끝나기 전에 당 총비서와 중앙군사위원장, 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하기 위한 추대 쇼를 시작했다. 내부 사정이 급하긴 하겠지만 경험과 능력의 부족은 말할 것도 없고, 호전성이나 패륜성의 측면에서 김정일보다 덜하지 않다.
북한의 내·외부 상황이 더 심각해졌는데, 부·자·손(父子孫)으로 내려가면서 \'지도자\'로서의 자질도 명백히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3대 세습이 단기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결코 지속될 수는 없다. 북한의 변혁은 그 시기와 유형, 수순의 문제일 뿐이다. 28일의 김정일 장례식과 함께 66년을 끌어온 북한 김씨 왕조의 장례식도 막이 올랐다.
김정일이 북한을 직접 지배한 17년 동안 북한 주민의 소득은 세계 최빈국 수준에서 게걸음을 했다. 김일성 사망 다음해인 1995년 1인당 소득(GNI)은 1034달러였으나 2008년엔 1065달러였고, 2009년과 2010년엔 각각 0.9%, 0.5%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한국은행 추정통계). 1~3%대이지만 플러스 성장을 한 기간은 1999~2005년으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 지원이 \'생명줄\' 역할을 했다. 원화 기준으로 2010년 한국의 1인당 GNI는 2400만원, 북한은 124만원으로 19배 차이가 났다. 특권층 200만명 정도가 상당한 특혜를 누리고 있음을 고려하면 일반 주민의 소득은 훨씬 적다.
김정일이 \'당중앙\'이라는 호칭으로 김일성의 후계자로 등장했던 1974년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보다 앞섰거나 최소한 대등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북한 경제는 가라앉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 18년 동안 세계 최빈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것과, 김정일의 17년(후계자 기간까지 포함하면 37년)을 비교하면 박 대통령의 위대성과 김정일의 죄악상이 뚜렷이 대비된다. \'북한의 종말(The End of North Korea)\'을 저술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니컬러스 에버슈타트는 김정일이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첫 사회주의권 지배자 ▲문맹국(文盲國)이 아님에도 평시에 수많은 아사자(餓死者)를 낸 첫 지배자 ▲산업화된 경제를 물려받고도 식량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한 첫 지배자라는 최악의 세계기록을 남겼고, 그의 유산(legacy)은 폐허가 된 경제, 노예처럼 열악한 삶을 사는 주민, 부패하고 기생(寄生)하는 엘리트, 파탄난 이데올로기와 핵 프로그램이라고 정리해 발표했다.
이처럼 김정일이 지도자로서 제대로 한 일은 전혀 없다. 주민의 10%가 굶어죽었을 정도로 경제 정책에 실패했다. 선군(先軍)정치를 내걸고 핵개발에 나섰지만 고립을 자초했을 뿐이다. 모든 문제가 한국·미국 탓이라고 핑계를 대면서도 두 나라와 중국 등 외부지원에 의존하는 \'기생경제\'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김일성 시대의 경제개발 계획이나 주민 회유책, 최소한의 실용주의조차 사라졌다. 주체사상을 내세워 개혁·개방과 관련된 움직임을 적(敵)으로 규정했다.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은 고사하고 배급제 등 국가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다. 외부 안보에도, 내부 안보에도 실패했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가 될 당시, 권력 세습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북한 안팎에서 있었지만 김정일이 그 만한 역량을 갖췄다는 전제에서 내부 절차가 진행될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등 일부 인사들도 김정일을 만난 뒤 그의 \'식견(識見)\'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실적은 \'무능하고 사악한 최악의 독재자\'임을 객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죽었다고 해서 생전의 잘못이 잊어지거나 미화(美化)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이제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김정은의 통치력은 김정일에도 훨씬 못미칠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정은이 후계자 내정 상태에서 주도한 2009년 말 화폐개혁, 2010년의 천안함·연평도 도발은 모두 실패하고, 역풍을 맞았다. 결국 실무책임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자신은 빠져나갔다. 김일성 사후에 김정일은 \'효심\'\'3년상(喪)\'을 강조하며 김일성이 맡았던 자리를 삼가고, 연장자들을 대우하는 시늉이라도 했다. 이에 비해 김정은은 김정일 장례 절차도 끝나기 전에 당 총비서와 중앙군사위원장, 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하기 위한 추대 쇼를 시작했다. 내부 사정이 급하긴 하겠지만 경험과 능력의 부족은 말할 것도 없고, 호전성이나 패륜성의 측면에서 김정일보다 덜하지 않다.
북한의 내·외부 상황이 더 심각해졌는데, 부·자·손(父子孫)으로 내려가면서 \'지도자\'로서의 자질도 명백히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3대 세습이 단기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결코 지속될 수는 없다. 북한의 변혁은 그 시기와 유형, 수순의 문제일 뿐이다. 28일의 김정일 장례식과 함께 66년을 끌어온 북한 김씨 왕조의 장례식도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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