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2.1] 이젠 ‘진보’ 대신 ‘좌파’라고 불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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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363회 작성일 2012-02-01 11:35본문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박원순과 오세훈의 차이
공교롭게도 2년 전인 2010년 1월 4일 새해 첫 출근 날에도 서울에 눈이 내렸다. 적설량 20cm가 넘는 큰 눈이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새벽부터 출근해 제설작업을 지휘했고 남산1호터널 등에 나가 직접 눈을 치웠다. 하지만 일부 언론과 시민으로부터는 격려 대신에 ‘늑장 대응’이라는 질타가 뒤따랐다.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에서 눈을 조속히 치우는 일은 지자체장의 최우선 업무다. 역대 서울시장들도 눈이 내리면 만사를 제쳐놓고 방재센터로 달려갔을 것이다. 박 시장에 대한 각별한 시선에서 그가 속한 진보 진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진보 진영의 원로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2013년 체제 만들기’라는 책을 펴냈다. 그에 따르면 ‘2013년 체제’는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87년 체제’의 후속 편에 해당한다. ‘87년 체제’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상징한다면 ‘2013년 체제’는 그때를 뛰어넘어 다시 한번 획기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백 교수는 ‘2013년 체제’의 구체적인 목표로 평화 체제, 복지국가, 공정 공평사회를 설정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과 손을 잡는 남북 연합, 헌법을 뛰어넘는 민중 자치 등 ‘위험한 제안’도 포함돼 있다. 물론 ‘2013년 체제’는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 세력이 승리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올해 양대 선거에 대한 진보 진영의 자신감이다. 백 교수는 “야권 하기에 따라 총선에서 압승도 내다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대선에 대해서는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 교수가 참여하거나 도와준다면 진보 진영이 총선 승리에 이어 집권도 가능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진보 진영 전체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중립적 명칭으로 당당한 대결을
한국 사회의 이념 지형에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의 임기 마지막 해이자 대선을 앞두고 있었던 2007년 초,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는 “노 대통령의 과격한 좌파 이미지가 정권의 실패를 불렀다”는 성토가 잇따랐다. 그러나 다시 대선을 앞둔 지금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정강정책에서 ‘보수’라는 말을 빼는 방안이 논의됐다. 결국 없던 일이 됐지만 한나라당의 전체적인 노선은 좌(左)로 크게 이동했다. 지난 6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의 자유와 발전은 보수 세력이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한국 사회에서 보수 정당이 실종되는 일이 벌어졌다. 불과 5년 만의 대(大)반전이다.
상황이 이 정도로 급변했다면 우선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의 틀을 바꾸는 일이 필수적이다. 그동안 ‘진보 교육감’에서처럼 좌파를 좌파라고 부르지 못하고 진보라고 불러온 것은 한국 사회에서 좌파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부정적 의미 때문이었다. 좌파라고 하면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
사실 우리에게 진보라는 용어가 정착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이전까지 좌파 세력은 스스로를 ‘민주화 세력’이라고 불렀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두 정부가 ‘진보 정권’을 자처했고 좌파 진영에선 자신들을 진보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보수는 자연스럽게 진보와 짝이 되는 용어로 자리 잡게 됐다.
하지만 ‘보수’ ‘진보’는 객관적인 구분이 아니다. ‘사물이 점차 발전하는 일’을 의미하는 진보는 그 자체로 좋은 이미지를 지니는 반면 보수는 ‘낡은 것을 지키는 일’이라는 나쁜 의미로 국민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보수’는 ‘수구’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보수’ ‘진보’의 틀은 보수 세력에는 핸디캡을 안겨주고 진보 세력에는 프리미엄을 부여하는 불평등한 구도다.
국내 좌파 진영은 여전히 경직성 폐쇄성 폭력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진화를 위해 생산적 대안을 제시하는 새로운 좌파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우리 사회가 성장과 분배, 경쟁과 약자 배려, 탈규제와 규제의 조화라는 당면 과제를 놓고 깊이 고민하기 위해서라도 양대 세력을 ‘좌파’와 ‘우파’라는 중립적인 용어로 바꿔 불러야 한다. 무엇보다 좌파에 대한 시각이 전과 달라졌다. 이제는 좌파라고 말해도 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상황이 이 정도로 급변했다면 우선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의 틀을 바꾸는 일이 필수적이다. 그동안 ‘진보 교육감’에서처럼 좌파를 좌파라고 부르지 못하고 진보라고 불러온 것은 한국 사회에서 좌파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부정적 의미 때문이었다. 좌파라고 하면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
사실 우리에게 진보라는 용어가 정착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이전까지 좌파 세력은 스스로를 ‘민주화 세력’이라고 불렀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두 정부가 ‘진보 정권’을 자처했고 좌파 진영에선 자신들을 진보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보수는 자연스럽게 진보와 짝이 되는 용어로 자리 잡게 됐다.
하지만 ‘보수’ ‘진보’는 객관적인 구분이 아니다. ‘사물이 점차 발전하는 일’을 의미하는 진보는 그 자체로 좋은 이미지를 지니는 반면 보수는 ‘낡은 것을 지키는 일’이라는 나쁜 의미로 국민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보수’는 ‘수구’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보수’ ‘진보’의 틀은 보수 세력에는 핸디캡을 안겨주고 진보 세력에는 프리미엄을 부여하는 불평등한 구도다.
국내 좌파 진영은 여전히 경직성 폐쇄성 폭력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진화를 위해 생산적 대안을 제시하는 새로운 좌파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우리 사회가 성장과 분배, 경쟁과 약자 배려, 탈규제와 규제의 조화라는 당면 과제를 놓고 깊이 고민하기 위해서라도 양대 세력을 ‘좌파’와 ‘우파’라는 중립적인 용어로 바꿔 불러야 한다. 무엇보다 좌파에 대한 시각이 전과 달라졌다. 이제는 좌파라고 말해도 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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