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4.4] 선거 공작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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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866회 작성일 2012-04-04 09:19본문
배인준 주필
사찰, 민주당 주역들은 떳떳한가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였다. 그리고 한겨레신문이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MBC, KBS가 따라붙었다. 이른바 ‘병풍(兵風)’으로 불린 이 사건 오보(誤報)와 관련해 오마이뉴스는 3000만 원, 일요시사는 2000만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역사의 버스는 지나간 뒤였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증폭된 ‘사찰풍(風)’은 민주통합당(민주당)이 공들인 흔적이 있지만 민주당 주역들에게도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김대중(DJ) 정부 국가정보원의 전방위적 도청(盜聽) 사찰, 노무현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까지 새삼 들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이해찬 상임고문과 한명숙 대표는 DJ 정부에서 교육부장관과 여성부장관이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바통 터치를 하며 도합 32개월간 국무총리로 있었다. 문제가 된 노 정부의 사찰은 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윤리지원관실의 전신)이 했다.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도 MB 정부의 사찰을 비난하며 노 정부는 순결했다고 할 처지가 못 된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야권의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오를 인물이지만, 노 정부에서 두 차례 27개월간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일했고 비서실장 11개월을 포함해 최장의 정권 지킴이였다.
한 대표는 그제 총선 유세 중에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당시 중앙정보부의 망령이 대한민국을 떠돈다”고 했다. 이 기회에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의 중정(中情) 망령이 살아있다면 DJ 시절의 국정원 망령도 살아있을 것 아닌가.
딴 사람은 몰라도 한 대표와 이 상임고문은 자신들이 국무위원으로 참여했던 DJ 정부가 언론인 경제인 정치인 등 1800명을 상대로 자행한 도청 사찰에 대해 죄스러움을 느껴야 한다. 문재인 이해찬 한명숙 3인은 노 정권의 상속자로서 실정(失政)뿐 아니라 권력남용까지 ‘마이너스 유산’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는 게 도리다.
선거 와중에 자극적 소재를 찾아내 의혹을 제기하고 여론을 흔들어 표심(票心)에 영향을 미치려는 ‘선거 공작’은 좌파가 능하다.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진영은 DJP(김대중·김종필)연대에 위협을 느끼자 DJ의 부동산 비리 및 비자금 의혹을 제기했지만 끝장을 못 내고 물러섰다.
폭로의 재미를 좌파가 보는 구도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는 병풍 의혹뿐 아니라 부인 한인옥 씨의 10억 원 수수설(이른바 기양건설 사건), 이 후보 측근이던 윤여준 의원이 로비스트 최규선 씨로부터 20만 달러를 받았다는 설훈 민주당 의원의 주장 등에 연타를 맞았다. 기양건설 의혹을 제기한 두 사람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설 전 의원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지만 선거가 끝나고도 한참 뒤였다. 설 씨는 이번 총선에서 다시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5년 전 2007년 대선은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 의혹으로 지새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의혹과 관련해 정봉주 민주당 전 의원이 허위사실 유포로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다. 하지만 BBK 저격수였던 박영선 의원과 정 씨는 야권의 스타로 각광받는 반면 새누리당은 투사를 우대하지 않는다.
좌파 야권은 이념적 공감대를 기초로 특유의 조직력을 가동해 보수진영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이들은 우군(友軍) 매체, 재야 사회세력까지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정치화한 기성 방송이나 신문은 물론이고 일부 포털과 트위터를 비롯한 SNS가 ‘선거 공작’의 선전선동 도구로 위력을 발휘한다. 지난날의 선거 공작에서 재미를 봐온 좌파 정치권이 새 메뉴도 개발만 잘하면 ‘남는 장사’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만하다. 야권은 ‘MB 심판’을 12월 대선의 한 축으로 삼기 위해 이미 4년 전에 특검까지 했던 BBK 사건에 다시 불을 지필 조짐도 보인다.
선거는 언제나 유권자의 분별력을 시험한다. ‘더 나쁜 놈’이 ‘나쁜 놈’을 가리키며 “저놈, 죽일 놈이다!”고 외칠 때, ‘그래, 그 놈도 좋은 놈은 아니지만 너는 더 나빠!’라고 냉철하게 심판할 수 있어야 ‘최악의 선택’만은 피할 수 있다. 충동적 선택은 정치와 민생을 다 후퇴시키는 자해(自害)가 될 우려가 많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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