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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4.21] 금융회사들은 '불량상품' 판매 면허 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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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579회 작성일 2012-04-2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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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만 가입 변액보험·퇴직연금, 수수료 떼고 수익률 형편없어

몇년 전엔 해외펀드 60조에서 챙길 것 다 챙기고도 \'면죄부\'

노후 생계 위협해도 리콜 없어… 금융 불신 깊으면 국가경제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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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img_caption.jpg\" 송희영 논설주간



변액보험이라는 상품부터 보자. 고객이 이 보험에 10만원을 넣으면 금융회사는 설계사 몫으로 5998원, 관리비 명목으로 5613원을 뚝 떼어간다. 이런 식으로 금융회사는 챙길 건 다 챙긴 후에 남는 8만7000원을 밑천 삼아 굴린다. 회사가 8만7000원을 잘 투자해주면 원금 이상을 챙기고 잘못 투자하면 원금을 못 건지는 상품이다.



금융회사로서는 고객이 보험료를 입금하는 순간 수수료부터 챙겼으니 손해 볼 건 없다. 그러나 돈 주인은 제발 원금이 불어나기를 기도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수익률을 살핀다. 가입자는 수익률이 0.1%라도 오르면 동료에게 커피 한잔 쏘겠다고 한다. 내렸을 때의 기분은 묻지 말라. 수익률도 변덕 부리고 기분도 변덕 부린다고 해서 \'변덕보험\'이라고 불린다.



퇴직연금도 금융회사가 0.8% 넘는 수수료부터 챙겨간다. 은행들은 고객의 퇴직연금 중 92.8%를 자기 은행 정기예금에 넣어둔다. 아무리 잘 굴린다 해도 정기예금보다 수익률이 더 나오기 힘든 상품이다.



이렇듯 퇴직연금과 변액보험 수익률이 형편없다고 아우성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다짜고짜 수수료부터 떼어가는 얌체 상술 때문이라고 시끄럽다. 낮은 수익률을 탓하는 불평이 나올라치면 금융회사들은 \"운용 결과 원금에 미달할 수도 있다\"는 식의 문구(文句)가 들어간 81쪽짜리 두툼한 \'상품요약서\'를 들고나온다. 창구 직원이 가입자에게 \"손해 볼 수도 있다\"는 주의를 줬다고 변명하기도 한다. 책임은 경고를 흘려들은 고객에게 미루고 자기들은 모래알 같은 글씨가 빼곡한 계약서 뒤로 피신한다.



고객은 노후(老後)·퇴직 후의 생활비를 걱정하지만, 은행·보험회사 직원들은 오늘의 수수료 수입 실적을 걱정한다. 그런 줄 모르고 변액보험에는 247만여명, 퇴직연금에는 330만명이 가입했다. 간판을 믿고 변액보험에 매년 10조원씩 쏟아넣고, 퇴직연금에는 50조원을 맡겼다. 고객들은 몇 년 전 해외펀드에 60조원을 맡겼다 중화상(重火傷)을 입었던 것을 벌써 잊었다. 해외펀드의 경우 원금이 몽땅 사라질 때까지 금융회사들은 매달 수수료를 챙겨갔다. 고객들이 \'속았다\'며 소송을 걸었지만 연기처럼 흩어진 원금을 몇원이라도 되찾았다는 사람은 없다. 금융회사는 챙길 건 다 챙기고 책임을 사면(赦免)받았다. 고객은 멍청한 투자자가 돼버린 반면 금융회사 임직원의 연봉은 올라갔다.



라면 봉지에서 작은 쇠붙이가 나올 때마다 소동이 벌어진다. 불량품을 생산한 식품회사는 사과 광고를 내고, 정부는 불량 라면을 전면 수거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본사 라면에서는 가끔 쇠붙이 같은 불순물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고문을 라면 봉지에 적지 않았어도, 판매 사원이 그런 경고를 미리 고객에게 말하지 않았어도 제조회사는 책임을 지고 정부는 징계를 가한다.



하지만 금융상품에는 왜 고객 보호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신형 자동차 모델에서 브레이크 결함이 발견되면 리콜(전면 회수와 수리)을 해야 하지만, 금융상품에는 그런 리콜이 없다. 생명과는 관계없는 극소량의 발암물질이 장난감에서 검출되면 그토록 호들갑을 떨다가도 서민들의 노후 생계를 위협하는 불량 금융상품은 대범하게 넘긴다.



금융회사는 신뢰라는 토양 위에서 먹고사는 조직이다. 신사임당 초상이 들어 있는 5만원 지폐도 모든 국민이 5만원권으로 인정하고 믿어주기 때문에 \"나는 5만원이다\"고 행세하는 특별한 신분의 종이가 됐다. 온 국민이 신사임당이 들어간 가로 154㎜, 세로 68㎜ 쪽지가 불온(不穩)문서라고 믿으면 불온문서가 되는 것처럼, 많은 국민이 금융회사를 고객에게 손해를 안기는 집단으로 보면 은행이든 보험회사든 불온한 무리가 되고 말 것이다.



금융회사가 불신받으면 그 회사가 고객을 잃고 도산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금융회사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위기가 닥쳤을 때 국가 경제를 뒤흔드는 핵폭탄이 터질 수 있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도 월 스트리트에 대한 미국 국민의 불신 때문에 폭발력이 커졌다. 대형 금융회사들은 평소 엉터리 금융상품을 팔아 신뢰를 잃더니 임직원들이 높은 연봉을 챙겨 또 한 번 인심을 잃었다. 부시 정권은 금융회사들에 대한 국민의 악감정을 의식해 구제금융을 지원하지 않은 채 리먼브러더스를 도산시켰고, 그 파장은 지금껏 회복되지 않고 있다.



불량품을 겁 없이 파는 우리 금융회사들에 대한 악감정도 비등점(沸騰點)까지 치솟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고객을 우습게 보다가는 가장 간절히 도움을 원할 때 역풍을 맞을 것이다. 금융불신 풍조가 이대로 굳어지면 한국 경제는 다음 위기에서 일어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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