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4.11]개구리들의 교육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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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564회 작성일 2012-04-12 09:07본문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학력 향상이 선거 좌우하는 선진국
블룸버그 시장 측은 2001년 자신이 처음 시장에 당선된 이후 강력하게 추진해온 공교육 개혁이 성과를 거뒀음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유권자들에게 강조했고, 그해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009년 3선(選)까지 달성한 블룸버그 시장의 업적 중에는 학력 향상이 빠지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일본 오사카 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하시모토 도루 후보는 75만여 표를 득표해 2위 후보를 23만 표 이상 따돌렸다. 예상했던 것 이상의 압승이었다. 교육 개혁은 그의 핵심 공약이었다. 올해 3월 그의 주도로 오사카 지방의회를 통과한 교육조례는 부적격 교사 파면, 교장 권한 강화 등 학력을 높이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사카 지역 학생들의 학력이 일본 전국학력평가에서 최하위권에 머무는 것도 하시모토 시장에 대한 지지를 높인 요인이었다.
일본의 전체적인 교육정책도 ‘학력 향상’과 ‘세계화’로 방향을 튼 지 오래다. 일본 정부는 학력보다 인성 교육을 앞세운 ‘유토리(여유) 교육’을 폐지했다. 내년부터는 고교 교과서 분량을 평균 10% 늘린다. 그만큼 학생들의 학습량이 많아진다. 도쿄대 등 12개 명문 대학들은 입학 시기를 현행 봄 학기에서 가을 학기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에서 봄 학기에 대학 신입생을 받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이외에는 거의 없다. 학기제가 다르다 보니 일본에서 외국으로 유학을 갈 때 한 학기를 쉬어야 하고, 외국에서 오는 유학생들도 일본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입학 시기를 외국과 맞춰 대학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선진국들이 미래세대 교육에서 한 걸음이라도 앞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반면 한국에선 무상급식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등 ‘공짜 시리즈’와 함께 ‘2013년 교육체제’라는 새로운 바람몰이까지 등장하고 있다. 좌파 진영의 이론가들이 올해 총선 대선에서 승리해 내년부터 새로운 사회체제를 만들자는 것이 이른바 ‘2013년 체제’다. ‘2013년 교육체제’는 이들의 교육 분야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 망칠 ‘2013년 교육체제’
오늘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전교조 민교협 민주노총 등 일부 좌파 단체는 ‘2012 총·대선 승리 교육운동 연석회의’라는 모임을 만들어 각 정당에 정책요구안을 제시하면서 ‘2013년 교육체제’를 강조했다. 핵심 내용은 ‘민주주의 생태 평화의 가치가 전면적으로 실현되는 교육’이다. 한 좌파 정당은 ‘초중등 교육과정을 인간 발달과 협동을 중심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현장에서 주로 민주주의교육 인성교육을 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학을 평준화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 먼저 국공립대학과 정부의 ‘반값등록금’ 지원을 받게 되는 사립대학을 합쳐 대학통합네트워크를 만든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학입학자격고사로 전환해 합격과 불합격만 구분하는 방식으로 치르고 신입생은 공동 선발한다.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으로 가서 강의를 듣고 학점을 딴다. 졸업할 때는 네트워크 대학들이 공동으로 수여하는 학위를 받는다는 내용이다. 서울대처럼 그나마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대학은 사라지게 된다. 유럽에서 대학 수준을 크게 추락시킴으로써 실패로 판명된 시스템을 한국에 도입하겠다는 얘기다.
선거철을 맞아 한번 해보는 잠꼬대 같은 소리로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진보신당이 내놓은 공약집에는 이들 단체의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 대학 평준화의 경우 민주당은 ‘국공립대학 연합체제’로 약간 변경해 포함시켰고 통진당은 그대로 수용했다. 초중등 교육의 기조를 바꾸는 방안도 똑같이 들어 있다. 좌파 정당들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교육공약을 만들 때 전교조 등과 상호 교감하면서 공조하고 있다.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도 그런 산물이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의 강세가 예상되는 만큼 ‘2013년 교육체제’가 현실화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저출산의 여파로 고교 졸업생 수는 2020년이 되면 연간 42만 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현재의 64만 명 정도에서 20만 명 이상 감소한 수치다. 한국의 미래는 줄어든 수만큼 젊은 세대를 얼마나 잘 교육해 적재적소에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오히려 더 철저하고 개별화된 교육을 궁리해야 할 시점에서 철 지난 이념에 사로잡혀 ‘우물 안 개구리’를 자초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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