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칼럼/5.22] 애국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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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440회 작성일 2012-05-22 09:24본문
믿을 데가 없다. 이자 한 푼이라도 더 받아보려고 시중은행보다 이자를 1% 더 준다기에 저축은행을 찾아갔다. 노후를 위해 얼마나 애써 모은 돈인가. 그 돈을 저축은행 주인들이 몽땅 털어갔다. 은행이라고 하니 당연히 믿었다. 나라에서 잘 감독하고 있는 줄로 알았는데 감독자들도 한통속이었다. 이런 썩은 정권을 바꾸자며 민중 편이라는 사람들에게 표를 던졌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북한 간첩을 하던 인물들이 그런 표를 모아 국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굶어죽는 북한을 이상 사회라고 생각하는 인물들 말이다. 이 세상은 믿지 못하겠으니 부처님에게 의탁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떤 스님들이 술 마시고 도박하고 여자까지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문제의 스님들이 그런 나쁜 짓을 한다는 것을 동료들은 몰랐을까. 그들과 연대를 하고 통합했던 정치인들은 상대가 간첩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몰랐을까. 저축은행장은 젊은 시절부터 사기 행각을 하던 인물이라는데 은행 감독관들은 몰랐을까? 아니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막지 못했을까? 사기꾼 은행가를 봐주면 뇌물이 생기니 감독자들은 눈을 감았다. 권력을 잡으려고 간첩과도 손을 잡았다. 주지 자리를 보장해 주니 종단이 불심보다 더 소중했다. 아! 누굴 믿고 살아야 하는가.
종단이 타락해도 불교는 없어지지 않는다. 저축은행이 부실하다고 경제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들을 대신할 사람들은 언제든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라가 무너지면 문제가 다르다. 나라가 망하면 끝장이다. 간첩 경력자들이 왜 국회를 노렸는가? 왜 부정선거를 저지르고도 끝까지 사퇴를 거부하는가. 이 나라를 뒤집어엎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간첩을 잡고 그들을 감시해야 할 국정원이나 검찰은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이 높다. 대답은 한결같이 김대중 시절, 대공요원들을 다 내쫓아버려 잡을 능력이 없다는 대답이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때는 그렇다 치고 이 정권 들어서 4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정권에 반대하는 민간인들만 쫓아다니며 사찰을 했는가.
나라를 지키고 체제를 보호하는 일이 국가의 절대적인 임무다. 독일은 나치체제 아래서 끔찍한 체험을 했다. 그 경험으로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을 헌법에 명시했다. 아무리 자유민주국가라 해도 반체제 정당은 법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나치의 문양도, ‘하일 히틀러’라는 인사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라는 저서도 위법이다. 해외에서는 『나의 투쟁』을 인터넷으로 다 볼 수 있는데도 독일 내에서만은 안 된다. 그러나 독일인 누구도 이를 자유의 제한이라고, 반민주적이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나라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히틀러 체제보다 나은가? 그들이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해악이 히틀러 체제보다 덜한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왜 북한을 비판하면 냉전파니, 색깔론자니 하며 입을 막으려 하는가. 독일이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금지하듯 우리는 왜 김일성 ‘주체사상’을 막지 못하는가. 그러니 그 신봉자들이 국회까지 진출하려는데도 속수무책이다. 누가 이 나라를 이렇게 흐물흐물하게 만들었는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통일을 앞세우며 대한민국을 격하시킨 것이다. 우리 체제를 지켜내는 것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통일이 되면 마치 딴 나라가 오는 듯이 국민을 오도했다. 대한민국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도 물론 애국을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애국은 어떤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일까. 애국은 막연히 공상 속의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의 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겪었던 아픔, 기쁨, 부끄러움, 자부심 이 모든 것을 인정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를 하든 보수를 하든 대한민국 테두리 안에서 경쟁해야 한다. 그것이 애국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대한민국은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북한은 너그럽게 이해하려 했다. 간첩도 특사로 내주고, 애국가도 부르지 않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아도 못 본 척 넘어갔다. 한때 주사파였던 친구들이 북한을 다녀온 후 환멸을 느껴 전향했다. 북한의 현실을 보고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야당들은 그들의 정체를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며 간첩 경력자들과 협력했다.
악은 스스로 드러난다. 스님들의 타락도, 종북파들의 실체도 그들 간의 권력싸움으로 드러났다. 종북파가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차제에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은 아예 정당활동을 못하도록 국회가 확실하게 입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 오히려 그들을 변화시키자. 설령 주사파 한두 명이 국회에 들어간들 이 나라를 흔들 수 없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수많은 ‘우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종단이 타락해도 불교는 없어지지 않는다. 저축은행이 부실하다고 경제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들을 대신할 사람들은 언제든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라가 무너지면 문제가 다르다. 나라가 망하면 끝장이다. 간첩 경력자들이 왜 국회를 노렸는가? 왜 부정선거를 저지르고도 끝까지 사퇴를 거부하는가. 이 나라를 뒤집어엎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간첩을 잡고 그들을 감시해야 할 국정원이나 검찰은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이 높다. 대답은 한결같이 김대중 시절, 대공요원들을 다 내쫓아버려 잡을 능력이 없다는 대답이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때는 그렇다 치고 이 정권 들어서 4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정권에 반대하는 민간인들만 쫓아다니며 사찰을 했는가.
나라를 지키고 체제를 보호하는 일이 국가의 절대적인 임무다. 독일은 나치체제 아래서 끔찍한 체험을 했다. 그 경험으로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을 헌법에 명시했다. 아무리 자유민주국가라 해도 반체제 정당은 법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나치의 문양도, ‘하일 히틀러’라는 인사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라는 저서도 위법이다. 해외에서는 『나의 투쟁』을 인터넷으로 다 볼 수 있는데도 독일 내에서만은 안 된다. 그러나 독일인 누구도 이를 자유의 제한이라고, 반민주적이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나라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히틀러 체제보다 나은가? 그들이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해악이 히틀러 체제보다 덜한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왜 북한을 비판하면 냉전파니, 색깔론자니 하며 입을 막으려 하는가. 독일이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금지하듯 우리는 왜 김일성 ‘주체사상’을 막지 못하는가. 그러니 그 신봉자들이 국회까지 진출하려는데도 속수무책이다. 누가 이 나라를 이렇게 흐물흐물하게 만들었는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통일을 앞세우며 대한민국을 격하시킨 것이다. 우리 체제를 지켜내는 것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통일이 되면 마치 딴 나라가 오는 듯이 국민을 오도했다. 대한민국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도 물론 애국을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애국은 어떤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일까. 애국은 막연히 공상 속의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의 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겪었던 아픔, 기쁨, 부끄러움, 자부심 이 모든 것을 인정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를 하든 보수를 하든 대한민국 테두리 안에서 경쟁해야 한다. 그것이 애국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대한민국은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북한은 너그럽게 이해하려 했다. 간첩도 특사로 내주고, 애국가도 부르지 않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아도 못 본 척 넘어갔다. 한때 주사파였던 친구들이 북한을 다녀온 후 환멸을 느껴 전향했다. 북한의 현실을 보고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야당들은 그들의 정체를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며 간첩 경력자들과 협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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