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칼럼/5.8] 파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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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973회 작성일 2012-05-09 09:05본문
얼마 전부터 주요 언론사들을 경찰이 지키기 시작했다. 북한을 비난한 언론사들에 대해 보복을 하겠다는 위협이 있고 난 후부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이 서 있는 출입문을 무심히 드나드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경찰이 왜 지키고 있으며, 이런 상황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어야 하는데 ‘그저 그러려니’ 하며 지나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비슷하게 보였다. 모두 무관심하다 못해 무심하다. 북한은 지난 4월부터 도를 넘는 협박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을 타격하겠다’, ‘청와대를 타격하겠다’, ‘정부기관, 언론을 초토화하는 특별행동을 하겠다’, ‘연평도 포격 같은 수준에 그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는 등 연거푸 협박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협박이 우리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 같다. 우리 모두가 그만큼 담대해진 것일까. 우리의 관심과 뉴스는 광우병이고, 정당들의 자리싸움이고, 대선후보들의 움직임 같은 것들이다. 현실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 광우병인가, 아니면 북한의 도발인가?
안보 걱정을 하면 진부하다는 듯 아예 고개를 돌리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다. 남북의 대치 상황이 60년을 넘었고, 과거에 정권 유지의 도구로 안보를 이용한 면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DNA에는 ‘내 나라는 내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희미하게밖에는 남아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조선은 건국 후 중국을 대국으로 모시며 국방에서 손을 놓았다. 상무정신을 지녔던 삼국시대, 북방 회복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고려와는 전혀 다른 문약한 나라였다. 그 대가로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었다. 전쟁 중에서조차 당파 싸움에 빠져 이순신 같은 인물을 감옥에 넣었다. 그런 조선은 결국 일본에 먹히고 말았다. 해방 후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 그럴 능력이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우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미국에 국방을 의존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속에는 나라 지키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해 주겠거니 하는 의식이 뿌리 깊은지도 모른다. 나라 지키는 일에는 모두 방관자가 되고, 우물 안에서 자기 이익만 찾아 싸우는 체질로 아예 바뀌어 버린 것은 아닐까?
상식만 있어도 북한의 도발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나이 어린 김정은은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미사일 실험을 했으나 실패했다. 취임 후 모든 것이 불안한 그가 여기서 그냥 물러난다면 그의 권위는 끝장난다. 주변의 강경파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중국조차 미사일 발사를 막지 못했다. 당연히 다음 도발 순서가 있다. 미국은 북한 핵실험을 걱정한다. 우리는 핵뿐이 아니라 무력 도발과 후방 테러를 동시에 걱정해야 한다. 며칠 전 민간 항공기들에 대한 GPS교란이 있었다. 그들의 목표가 단지 민간 항공기에만 있지 않고 군사행동을 위해 우리의 무기체계를 흔들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맥을 놓고 있다가 당하면 당황한다. 준비가 없으면 우왕좌왕한다. 당하고 난 뒤에야 왜 미리 대비를 하지 못했느냐고 힐책하고, 책임 회피용 대책만 급조해 내놓는다. 연평도가 그렇고 천안함이 그렇다. 북한이 민간시설에 대한 테러로 나오면 막기가 더욱 어렵다. 우리는 자유사회이므로 그러한 공격에 취약하다. 그러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최소한 무관심에서 깨어나야 한다. 정부도 달라져야 한다. 국민이 불안해한다며 무조건 쉬쉬할 것이 아니라 취약한 곳을 밝혀 경계태세를 갖추고, 당했을 때를 대비해 미리미리 훈련도 해야 한다. 각자가 눈을 뜨고 깨어 있으면 피해를 막거나, 줄일 수 있다. 우리가 그런 단단한 모습을 보이면 상대는 기가 꺾여 스스로 물러난다.
지금부터 꼭 30년 전인 1982년 4월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국내 정치의 인기를 위해 영국령 포클랜드를 침공했다. 수만 리 떨어진 영국이 그들의 점령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착각했다. 영국의 대처 총리는 최악의 경우 패전을 각오하고 주권 수호와 국가 명예보전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응전했다. 그 결과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 인해 고양된 국민의 사기 덕분에 영국은 그 후 20년 이상의 번영기를 맞았다. 반면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1년이 못 돼 망했다. 정부는 북한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새로 출범한 김정은 정권이 불장난을 한다면 종국에는 아르헨티나처럼 정권이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요나의 딜레마’라는 말이 있다. 구약성경에 요나라는 예언자는 적대국의 수도를 찾아가 신의 경고를 듣지 않으면 파멸할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그의 예언을 듣고 반성하면 적국이 망하지 않으니 그로서는 딜레마인 것이다. 그 성읍 사람들은 돌이켰고 도시는 살아남았다. 북한 정권 역시 파멸을 면하려면 현재의 길에서 돌아서야 한다. 우리 스스로도 사전에 대비해 그들이 그 길을 걷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안보 걱정을 하면 진부하다는 듯 아예 고개를 돌리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다. 남북의 대치 상황이 60년을 넘었고, 과거에 정권 유지의 도구로 안보를 이용한 면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DNA에는 ‘내 나라는 내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희미하게밖에는 남아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조선은 건국 후 중국을 대국으로 모시며 국방에서 손을 놓았다. 상무정신을 지녔던 삼국시대, 북방 회복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고려와는 전혀 다른 문약한 나라였다. 그 대가로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었다. 전쟁 중에서조차 당파 싸움에 빠져 이순신 같은 인물을 감옥에 넣었다. 그런 조선은 결국 일본에 먹히고 말았다. 해방 후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 그럴 능력이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우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미국에 국방을 의존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속에는 나라 지키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해 주겠거니 하는 의식이 뿌리 깊은지도 모른다. 나라 지키는 일에는 모두 방관자가 되고, 우물 안에서 자기 이익만 찾아 싸우는 체질로 아예 바뀌어 버린 것은 아닐까?
상식만 있어도 북한의 도발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나이 어린 김정은은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미사일 실험을 했으나 실패했다. 취임 후 모든 것이 불안한 그가 여기서 그냥 물러난다면 그의 권위는 끝장난다. 주변의 강경파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중국조차 미사일 발사를 막지 못했다. 당연히 다음 도발 순서가 있다. 미국은 북한 핵실험을 걱정한다. 우리는 핵뿐이 아니라 무력 도발과 후방 테러를 동시에 걱정해야 한다. 며칠 전 민간 항공기들에 대한 GPS교란이 있었다. 그들의 목표가 단지 민간 항공기에만 있지 않고 군사행동을 위해 우리의 무기체계를 흔들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맥을 놓고 있다가 당하면 당황한다. 준비가 없으면 우왕좌왕한다. 당하고 난 뒤에야 왜 미리 대비를 하지 못했느냐고 힐책하고, 책임 회피용 대책만 급조해 내놓는다. 연평도가 그렇고 천안함이 그렇다. 북한이 민간시설에 대한 테러로 나오면 막기가 더욱 어렵다. 우리는 자유사회이므로 그러한 공격에 취약하다. 그러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최소한 무관심에서 깨어나야 한다. 정부도 달라져야 한다. 국민이 불안해한다며 무조건 쉬쉬할 것이 아니라 취약한 곳을 밝혀 경계태세를 갖추고, 당했을 때를 대비해 미리미리 훈련도 해야 한다. 각자가 눈을 뜨고 깨어 있으면 피해를 막거나, 줄일 수 있다. 우리가 그런 단단한 모습을 보이면 상대는 기가 꺾여 스스로 물러난다.
지금부터 꼭 30년 전인 1982년 4월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국내 정치의 인기를 위해 영국령 포클랜드를 침공했다. 수만 리 떨어진 영국이 그들의 점령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착각했다. 영국의 대처 총리는 최악의 경우 패전을 각오하고 주권 수호와 국가 명예보전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응전했다. 그 결과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 인해 고양된 국민의 사기 덕분에 영국은 그 후 20년 이상의 번영기를 맞았다. 반면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1년이 못 돼 망했다. 정부는 북한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새로 출범한 김정은 정권이 불장난을 한다면 종국에는 아르헨티나처럼 정권이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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