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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6.5] 새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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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545회 작성일 2012-06-0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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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답답한 현실에서 우리에게 힘을 주는 소식들이 있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뉴욕대의 토머스 사전트 교수가 서울대에 부임한다. 그의 부임이 뉴스가 아니라 그가 한국을 택한 이유가 관심을 끌었다. 그는 “한국은 경제학자라면 꼭 한번 연구해 보고 싶은 나라”라며 “한국 역사와 경제는 기적 그 자체”라고 말했다. 중국의 인권 변호사로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미국으로 옮긴 천광청(陳光誠)이 첫 공식 회견을 했다. 그는 “중국 정부는 서방의 민주주의를 그대로 모방할 수 없다고 하나, 한국과 일본처럼 동양에도 모범적인 민주주의 나라가 있다”면서 중국은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말들을 뒷받침해 주는 통계도 발표됐다. 한국이 인구 5000만 명 이상에, 소득 2만 달러 이상의 나라인 20-50클럽에 가입한다는 얘기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다. 앞선 나라들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다. 모두 선진 강국들이다. 가슴이 뿌듯하지 않은가. 감사하지 않은가.



 밖에서 보는 우리와 안에서 생각하는 우리는 너무 다르다. 거울을 보지 않고는 자기 얼굴을 알 수 없듯이, 밖을 통하지 않고는 내 모습을 잘 모른다. 밖에서는 우리를 부러워하며 배우고 싶어 하는데, 정작 안에서는 세계 최악의 나라인 북한을 배워야 한다는 주사파들이 판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아니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를 얼마나 비하하면서 지내는가. 백조인 줄 모르고 미운 오리라며 괴로워하는 꼴이다.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어 놓고도 지지리도 못난 때를 잊지 못해 거기에 얽매여 있는 게 우리 모습은 아닌가.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고난과 부끄러운 시절이 있었던 것을 부인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 시절을 극복하고 이처럼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방점이 찍힌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그리고 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한국의 이 같은 성취는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한국의 발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갖는 공통된 질문이다. 하버드대의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문화적인 접근을 했다. 한국의 발전은 일본·중국·싱가포르 등과 같이 유교문화의 덕이라고 했다. 물론 그것도 한 요인이다. 어떤 사람은 새마을운동을 원동력으로 꼽는다. 그러나 그뿐일까? 세계 구석구석으로 보따리를 들고 다닌 무역 일꾼, 나라를 지킨 군인, 아이들 교육에 온몸을 바친 부모들…. 발전 요인을 찾자면 수천, 수만 가지가 넘을 것이다. 이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한 작업일지 모른다. 사회과학에서 가장 과학화되었다는 경제학조차 불과 몇 가지 요인만을 감안한 모델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것으로 경제현상을 설명·예측하려 한다. 그러니 어떤 경제학자도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하물며 한국의 발전 같은 총체적 현상을 몇 가지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기적’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이 세상 어디서도 다시는 한국 같은 나라가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샤머니즘으로 본다면 운과 운명이요, 종교적으로 말한다면 신의 섭리다. 신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기로 예정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모른다. 기나긴 세월 고난을 겪은 우리가 불쌍해서인지, 아니면 어떤 사명을 맡기기 위해서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뒤돌아 보면 역사의 고비마다 우리는 현명했다. 안보를 먼저 튼튼히 한 뒤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그리고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이 순서가 거꾸로 됐더라면 지금의 우리가 될 수 없었다. 우리로서는 이러한 결과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책임 있게 처신을 해야 한다. 지금의 결실을 어느 한 계층이나 세력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 오는 데 모두가 참여하고 애썼기 때문이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우리를 ‘동방의 등불’이라고 불렀다. 일제 탄압을 받던 고난의 시절이었는데도 이미 우리의 싹을 보았던 것 같다. “그 등불이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세계는 경이로운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경제발전과 성장이라는 면에서 우리는 일정 궤도에 올랐다. 이제는 가치 있는 공동의 삶에 신경을 써야 한다. 지금까지 보수적 가치가 우세했다면 앞으로는 진보적 가치와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단 조건이 있다. 진보에서 친북은 분리해 내야만 한다. 그래야 순수한 진보가 더 성장할 수 있다. 나라의 균형을 위해서다. 과거 우리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아시아·아프리카 나라들이 고난 속에서 성장한 우리를 지금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제국주의 역사를 가진 선진국들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 구미 선진국들은 금융위기, 포퓰리즘, 정신의 쇠락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그들의 깃발은 이미 색이 바랬다. 우리가 새 깃발을 만들어야 한다. 번영과 행복, 자유와 책임, 개인과 전체가 조화된 나라, 그 깃발 높이 들어 그들의 길잡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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