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칼럼/6.2] 부동산, 거꾸로 읽다 빠져 죽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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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237회 작성일 2012-06-04 09:19본문
부동산 값 하락 계속되는 건 低성장과 인구변화 때문… 이젠 폭락 사태 막아야 할 상황
그런데도 대형 개발사업 매달린 지자체장과 저축은행 대주주
\'이럴 줄 누가 알았겠냐\' 한탄
아파트 거래가 끊긴 지 오래다.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부양책을 10차례 내놨어도 시장 반응은 신통치 않다. 인터넷 사이트에 \'급매물\'이라고 다급한 엄살을 떨다 못해 \'올확장(베란다 확장 공사를 마쳤다는 뜻)\' \'올수리(보수 공사를 끝냈다는 뜻)\' 같은 보너스를 덧붙여도 좀체 팔리지 않는다. 중개업소가 \"우선 둘러보고 값은 나중에 상의하자\"며 가격 협상에 융통성을 보이건만 찾아오는 고객은 한산하다.
\"부동산이 이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부채 더미에 눌려 공무원들 수당을 깎은 한 지방자치단체의 시장은 동의(同意)를 기대하는 듯 사정을 설명하려 했다. 부동산값이 떨어져 거대 개발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바람에 빚이 쌓였다는 것이다. 재정을 파탄 나게 한 원흉은 부동산이지 공무원이 무슨 죄냐는 말투다.
부동산값 하락은 외환 위기 이후 줄기차게 몰려온 거대한 파도다. 그걸 부정하고 물결을 거꾸로 읽다가 익사하는 사람들이 쏟아지고 있다. 저축은행 대주주들이야말로 부동산을 믿었다가 무너졌다. 2008년 금융 위기를 탓하기도 하지만 거대 부동산 프로젝트는 그전부터 실속 없는 사업이 되고 있었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뉴타운사업도 연달아 취소되고 있다. 신도시나 공단을 조성해 한바탕 잔치를 벌이려던 시장과 군수는 빚더미를 남긴 채 속속 감방에 가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 구속된 지방자치단체의 장(長)들 중 다수가 건설업자가 준 뇌물에 걸렸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개발 이익에 흥청망청 취해 뇌물 거래를 덮을 수 있었지만, 분양 실적이 나쁘면 누군가 핑곗거리를 찾기 시작하면서 검은돈의 유통 과정이 노출된다. 어느 전직 시장(市長)은 구치소에서 \"부동산만 이러질 않았어도 내가 여기 있지 않을 것\"이라고 넋두리했다. \'부동산 종교\'를 추종하던 독실한 신도가 믿었던 성직자에게 사기를 당한 듯 불평을 늘어놓는다.
노무현 정권 시절 \'버블 세븐\'지역은 정치적으로 부유층 공격의 소재가 됐다. 노 정권은 부동산값이 오르는 지역을 때리며 그들의 호주머니를 털기로 작심했다. 그곳의 부동산 거래를 여러 가지 규제의 사슬로 묶고 세금 폭탄을 집중 투하했다. 그러나 버블 세븐이라는 단어가 말하듯 그것은 극히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 국지적(局地的)인 투기였다. 노무현 정부가 기업도시·혁신도시를 만들겠다며 지방에 풀어제낀 토지 매수자금이 몇 곳으로 집중 투자됐기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인 과열 증상이었다. 정부는 좁은 공간에서 터진 단기성 투기 증상을 전국적이고 장기적인 추세로 착각했다. 대응이 과격했던 것도 착시(錯視)와 오판(誤判)이 빚어낸 결과였다.
오랫동안 부동산시장의 불안이 지속되는 이유는 경제 성장 속도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돈벌이하는 생산인구도 별로 늘지 않고 있다. 부동산시장의 개미투자자 집단이랄 수 있는 30·40대 세대는 비정규직이 많아졌다. 이 계층이 부실화하면서 아파트를 사려는 신흥 고객층이 무너졌다. 시장을 떠받치던 아랫도리가 무너진 판에 뉴타운이든 신도시든 100% 분양 성공은 이룰 수 없는 환상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부동산이 폭삭 붕괴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는 저금리로 돈을 풀고 고환율로 인플레를 조장해온 덕분이다. 1990년대 일본처럼 원화 가치를 올리거나 금리를 더 올렸다면 전국에서 비명소리가 진동했을 것이다.
앞으로 부동산시장의 축제는 좁은 지역에서 나타나는 단막극에 머물 것이다. 부동산 투자로 한몫 잡기란 여름 밤 대도시에서 보는 별빛처럼 듬성듬성 깜박거리다 사라지는 수준일 것이다. 경제가 7% 이상 성장하고 인구가 급증하지 않는 한 부동산시장 전체에 조명등이 켜지는 기적일랑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이제는 폭락 사태를 막는 데 집중해야 한다. 부동산값이 폭락하면 지금 저축은행에 머물고 있는 불길은 증권·보험회사를 거쳐 곧장 은행으로 튈 것이다. 900조원이 넘는 가계 부채가 은행을 덮쳐 금융 위기로 번질 것이 뻔하다.
저축은행 사태, 뉴타운 좌절, 건설업체들의 몰락, 지방 재정 파산의 바탕에는 부동산시장의 해묵은 불안이 깔려 있다. 대형 프로젝트가 속절없이 패퇴하는 것을 보면서도 31조원짜리 용산국제타운을 마케팅하는 사업가와 신도시 설계도를 들고 다니는 정치인은 여전히 활개를 친다. 그들도 일이 풀리지 않으면 곧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고 탄식할 것이다. 시장·군수나 저축은행 회장이나 걸핏하면 부동산을 탓하지만 부동산이 무슨 죄인가. 정작 죄인(罪人)은 거기서 한몫을 잡자고 이 사람 저 사람 꼬드긴 당신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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