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8.1] ‘서울대들의 나라’는 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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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780회 작성일 2012-08-01 09:08본문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국민 속이는 평준화 위장 전술
그는 지난주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 고등기초대학’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전국의 국공립대학과 일부 사립대학의 1학년 과정을 통합해 신입생을 공동 선발하고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에서 강의를 듣게 한다는 구상이다. 대학 1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대학 평준화’ 발상이다. 이 아이디어에서도 김 교육감의 ‘서울대들의 나라’가 결국 ‘서울대 폐지’를 의미하는 것임이 드러난다.
서울대 폐지는 김 교육감 개인의 상상력에 그치지 않고 야권의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굳어지고 있다. 7월 1일 민주통합당의 이용섭 정책위의장이 “서울대 등 국립대를 하나의 연합 체제로 묶어 강의와 학점, 교수의 교류를 자유롭게 허용하고 졸업장도 공동으로 주는 방안을 12월 대선 공약에 넣겠다”고 말한 뒤 ‘서울대 폐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언론이 앞서 갔다”며 책임을 언론에 떠넘겼다. 그러나 민주당은 7월 18일 ‘국립대 공동학위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공약화를 위한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 때 김 교육감이 선도했던 무상급식 공약으로 큰 재미를 봤던 야권이 다시 김 교육감의 제안을 선거 전략으로 삼은 것이다.
지방에 세계 수준의 대학을 키우는 일이 전국의 균형 발전을 위한 긍정과 상생의 방식이라면 그나마 세계 수준에 근접해 있는 서울대를 없애는 것은 부정과 파괴의 발상이다. 최근 서울대 폐지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반대 55.4%, 찬성 15.2%로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김 교육감과 민주당은 이런 사회 분위기를 의식해 ‘서울대 폐지’ 대신 ‘국립대 공동학위제’라는 다른 용어를 내세우고 있으나 어느 쪽이나 본질은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대학 개편과 관련한 대선 공약에 대해 “국립대들이 1단계로 연합 체제를 구축해 강의 개방과 학점 교류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식의 교류는 전부터 이뤄지고 있다. 서울대는 전남대 경북대 부산대 등 국공립대 16곳, 사립대 13곳에 강의 개방을 하고 있다. 지난해 706명의 다른 대학 학생들이 서울대에 와서 수강신청을 하고 학점을 땄다. 민주당이 도입하겠다는 국립대 공동학위제는 전국의 국립대를 통합해 학생을 공동으로 선발하고 원하는 곳에서 강의를 듣게 한 뒤 공동으로 학위를 수여하는 것이다. 국립대는 남지만 서울대는 사라진다. 이것을 서울대 폐지가 아니라고 자꾸 우기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꼼수’에 불과하다.
대학을 선거의 제물로 삼지 말라
김 교육감이 지방에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여러 개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평소 대학 서열화를 비판하고, 대학 경쟁력 향상을 위한 국립대 법인화에 반대해 온 그가 갑자기 교육시장주의자로 변신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무원 체질에 젖어 변화와 개혁에 둔감하던 지방 국립대에 거액의 예산을 지원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세계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대학 평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프랑스의 대학을 모델로 내세우고 있으나 프랑스가 평준화 대학과는 별도로 그랑제콜이라는 엘리트 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은 1998년 5월 베이징대 개교 100주년을 맞아 ‘985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9개 대학을 선정해 미국 하버드대와 같은 세계 일류 대학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였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은 자신들이 노벨상 수상자를 8명 배출했으며 러시아의 발전을 이끄는 인재를 키워낸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든 대학은 이념을 떠나 인재를 육성하고 최첨단 연구 활동을 통해 국가 발전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치권이 선거에서 이기려는 목적으로 일부 대학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반감을 부추기는 일은 삼가야 한다.
서울대 이상이거나 서울대 못지않은 훌륭한 대학들이 국내에 많이 등장하는 진정한 ‘서울대들의 나라’를 보고 싶다. ‘서울대들의 나라’는 ‘연합체제’나 ‘공동’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대학을 묶어 놔서는 실현할 수 없다. 저마다 독립적이고 자생력 있게 발전하도록 풀어 놓아야 한다. 대학 평준화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실패로 판명된 정책이다. 이들 나라에서 낮은 대학 경쟁력은 국가적인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세계적으로 실패한 길을 가자는 사람들은 국가의 미래를 말할 자격이 없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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