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7.18]‘행복한 교육’ 말은 달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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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297회 작성일 2012-07-18 09:45본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예비후보가 어제 자신의 교육정책을 발표했다. 그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학생의 소질과 끼를 일깨우는 행복 교육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야권 주자들의 교육정책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예비후보는 ‘행복한 교육, 즐거운 학교’를 강조했다. 같은 당의 김두관 예비후보는 “사교육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고 말했다. 정세균 예비후보는 “개헌을 해서라도 사교육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행복한 교육’과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민의 미래 가를 대선 교육공약
이번 대선의 교육정책은 각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 이어지면서 교육현장에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앞으로 우리나라 학생 수는 1980년대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지난해 초등학생 수는 313만 명으로 1980년 564만 명의 55% 정도에 불과했다. 차기 대통령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나라를 이끌게 된다. 차기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뒤인 2020년에는 이마저도 259만 명까지 내려간다. 최고지도자가 어떤 교육적 비전을 갖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한국은 인적 자원을 잘 키우고 가르쳐 일으켜 세운 나라다. 6·25 전후(戰後) 세대들이 아이들을 많이 낳고 열심히 교육시킨 공로로 오늘날 선진국 문턱에 이를 수 있었다. 거의 유일한 자산인 아이들이 갑자기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면 국가적인 위기 상황이다. 교육정책의 틀도 그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대선 주자들의 시선은 미래를 내다보기는커녕 10년, 20년 전에 머물러 있다.
학생이 줄어들면 국가 전체가 더 정성 들여 교육에 나서야 할 필요성이 커진다. 중도 탈락하는 학생도 최소화해야 한다. 학생 하나하나가 포기할 수 없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세계 학력 최상위권에 올라 있는 핀란드는 인구 521만 명의 작은 나라다. 핀란드 교육경쟁력의 가장 큰 비결은 국가적인 교육열이다. 워낙 작은 인구이다 보니 모든 아이들을 실패 없이 잘 키워야 한다는 절박함이 핀란드를 교육 강국으로 만들었다.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있는 한국 역시 한정된 인적 자원을 어떻게 잘 교육시키느냐를 놓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행복한 교육’ ‘사교육비 절감’ 같은 정책 방향은 아무리 선거용 구호라고 해도 근본 처방이 아닌 대증요법에 불과한 수준이다. ‘입시 경쟁’과 ‘행복한 학교’를 대비시켰고, ‘사교육비 고통’에 맞서 ‘절감’을 내놓은 듯하다. 솔깃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찾아볼 수 없다.
‘쓴소리’ 하는 후보 어디 없소?
‘행복한 교육’은 실현 가능성부터 의심스럽다. 아이들이 장래 희망을 세우고 실현해가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최근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피겨스타 김연아 선수는 7세 때 운동을 시작해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까지 연간 300일을 훈련에 매달렸다. 점프 연습을 하면서 엉덩방아를 찧는 일이 연간 1800회 이상이었다. 동양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된 강수진 씨의 발에는 발톱이 빠져 있고 마디마디가 보기 흉하게 튀어나와 있다. 교육 과정에서 노력과 인내가 요구되는 분야는 스포츠와 예술만이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 평범한 직업과 직종에서도 손쉽게 되는 일이란 없다.
선진국에서 청소년들에게 ‘꿈’을 강조하는 이유도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으면 고통스러운 과정을 뛰어넘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가난한 학부모들에게 ‘쓴소리’도 주저하지 않는다. 흑인 부모들을 향해 “아이들에게 큰 뜻을 품게 하라. 집안에 게임기를 치우고 책을 읽히라. 학부모 모임에 적극 참가하라”고 충고했다.
사교육비 문제는 학생 수 격감에 따라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대학 입학정원은 4년제와 2, 3년제 대학을 합치면 72만 명 정도다. 하지만 2020년이 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 수가 42만 명으로 줄어들어 졸업생 전원이 대학에 진학하고도 자리가 남는다. 오히려 대학들이 학생 부족을 걱정할 판이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저출산 시대를 맞아 입시경쟁이 완화된 이후 국가인재를 어떻게 키워낼지 대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나라든 국력을 단기간에 높일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은 교육이다. 다른 자원들은 나라마다 한정돼 있는 반면 인재 육성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국가의 교육 방향이 선거 득표전략에 따라 흔들리는 일은 옳지 않다. 대통령이 되려면 교육 문제에 관한 한 지도자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청소년 여러분들이 다양한 꿈을 갖되 꿈을 위해서는 고통과 시련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후보를 보고 싶다. 인생을 겪어본 학부모들에게도 ‘행복한 교육’이라는 비현실적인 구호보다는 솔직한 충언이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국민의 미래 가를 대선 교육공약
이번 대선의 교육정책은 각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 이어지면서 교육현장에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앞으로 우리나라 학생 수는 1980년대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지난해 초등학생 수는 313만 명으로 1980년 564만 명의 55% 정도에 불과했다. 차기 대통령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나라를 이끌게 된다. 차기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뒤인 2020년에는 이마저도 259만 명까지 내려간다. 최고지도자가 어떤 교육적 비전을 갖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한국은 인적 자원을 잘 키우고 가르쳐 일으켜 세운 나라다. 6·25 전후(戰後) 세대들이 아이들을 많이 낳고 열심히 교육시킨 공로로 오늘날 선진국 문턱에 이를 수 있었다. 거의 유일한 자산인 아이들이 갑자기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면 국가적인 위기 상황이다. 교육정책의 틀도 그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대선 주자들의 시선은 미래를 내다보기는커녕 10년, 20년 전에 머물러 있다.
학생이 줄어들면 국가 전체가 더 정성 들여 교육에 나서야 할 필요성이 커진다. 중도 탈락하는 학생도 최소화해야 한다. 학생 하나하나가 포기할 수 없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세계 학력 최상위권에 올라 있는 핀란드는 인구 521만 명의 작은 나라다. 핀란드 교육경쟁력의 가장 큰 비결은 국가적인 교육열이다. 워낙 작은 인구이다 보니 모든 아이들을 실패 없이 잘 키워야 한다는 절박함이 핀란드를 교육 강국으로 만들었다.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있는 한국 역시 한정된 인적 자원을 어떻게 잘 교육시키느냐를 놓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행복한 교육’ ‘사교육비 절감’ 같은 정책 방향은 아무리 선거용 구호라고 해도 근본 처방이 아닌 대증요법에 불과한 수준이다. ‘입시 경쟁’과 ‘행복한 학교’를 대비시켰고, ‘사교육비 고통’에 맞서 ‘절감’을 내놓은 듯하다. 솔깃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찾아볼 수 없다.
‘쓴소리’ 하는 후보 어디 없소?
‘행복한 교육’은 실현 가능성부터 의심스럽다. 아이들이 장래 희망을 세우고 실현해가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최근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피겨스타 김연아 선수는 7세 때 운동을 시작해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까지 연간 300일을 훈련에 매달렸다. 점프 연습을 하면서 엉덩방아를 찧는 일이 연간 1800회 이상이었다. 동양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된 강수진 씨의 발에는 발톱이 빠져 있고 마디마디가 보기 흉하게 튀어나와 있다. 교육 과정에서 노력과 인내가 요구되는 분야는 스포츠와 예술만이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 평범한 직업과 직종에서도 손쉽게 되는 일이란 없다.
선진국에서 청소년들에게 ‘꿈’을 강조하는 이유도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으면 고통스러운 과정을 뛰어넘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가난한 학부모들에게 ‘쓴소리’도 주저하지 않는다. 흑인 부모들을 향해 “아이들에게 큰 뜻을 품게 하라. 집안에 게임기를 치우고 책을 읽히라. 학부모 모임에 적극 참가하라”고 충고했다.
사교육비 문제는 학생 수 격감에 따라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대학 입학정원은 4년제와 2, 3년제 대학을 합치면 72만 명 정도다. 하지만 2020년이 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 수가 42만 명으로 줄어들어 졸업생 전원이 대학에 진학하고도 자리가 남는다. 오히려 대학들이 학생 부족을 걱정할 판이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저출산 시대를 맞아 입시경쟁이 완화된 이후 국가인재를 어떻게 키워낼지 대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나라든 국력을 단기간에 높일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은 교육이다. 다른 자원들은 나라마다 한정돼 있는 반면 인재 육성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국가의 교육 방향이 선거 득표전략에 따라 흔들리는 일은 옳지 않다. 대통령이 되려면 교육 문제에 관한 한 지도자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청소년 여러분들이 다양한 꿈을 갖되 꿈을 위해서는 고통과 시련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후보를 보고 싶다. 인생을 겪어본 학부모들에게도 ‘행복한 교육’이라는 비현실적인 구호보다는 솔직한 충언이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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