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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10.4] 유권자들도 너무 점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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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659회 작성일 2012-10-0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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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들이 쏟아 내는 그저 듣기 좋은 말의 성찬들

그들을 닦달하고 긴장시키는 건 유권자들의 책임


다 지났으니 말이지만 올해 태풍은 참 유난스러웠다. 5개가 연달아 한반도를 직격(直擊)하기는 50년 만이란다. 스무 명 넘게 희생됐고, 줄잡아 1조원 안팎의 재산피해가 났다. 지구온난화로 태풍 기세는 갈수록 더 그악스러워지리란 전망도 우울하다.



직접피해 본 분들껜 할말 아니지만, 그러나 태풍의 긍정적 효과는 의외로 크다. 바다를 뒤집어 용존산소량을 키우고 수중생물계를 살찌우는가 하면, 육지엔 막대한 담수를 공급하고 환경도 깨끗이 정화한다. 태풍의 경제효과가 매년 8,000억 원쯤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무엇보다 열대에 축적되는 엄청난 열에너지를 극지까지 골고루 분산시켜 지구적 균형을 맞추는 큰 기능을 한다. 지구생태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세상을 한바탕 뒤집어놓긴 해도 태풍의 순기능은 명백하다. \'정화(淨化)와 균형(均衡)\'이다. h20121003194733113100.htm^|^[이준희0\"



그러고 보면 태풍은 대통령선거와 많이 닮았다. 서로들 찢고 싸우는 통에 나라가 쑥대밭이 되는 것 같아도, 결산하면 사회의 정화와 균형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적폐 일소와 방향 전환이 기대되는 후보가 선택되고, 5년 간 폐해와 모순 편향이 쌓이면 또다시 오염과 불균형 해소를 요구하는 여론이 비등하고….



뻔한 이치를 상기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누적된 열에너지가 태풍을 만들어내듯, 쌓이고 쌓인 민중의 변화욕구가 대선정국의 추동력일진대 그게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대론 안 된다\"는 막연한 요구가 초유의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냈으나 그뿐이다. 3각 구도로 판이 짜인 순간 다들 구경꾼으로 물러 앉았다.



추석연휴 관심도 \"누가 될 것 같으냐?\" 하나에 모아졌다. 이건 경기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관전자이지 경기 주재자의 태도가 아니다. 매체들마다 연휴 뒤끝에 경쟁적으로 쏟아낸 혼란스런 여론조사결과가 이 방관자적 호기심에 대한 응답이다. 지금의 수치란 게 그저 흐름이나 보여줄 뿐 한참 뒤 결과예측에는 전혀 쓸모 없는 것인데도.



이러니 대선후보들이 하는 일이라야 시장통 돌며 악수하고 생선이나 만지작거리는 것밖에 없다. 경제민주화, 복지확대, 남북관계 개선 등 서로 다를 것도 없는 당위적 원론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않은 채 누굴 찾아갔네 안 갔네, 진정성이 있네 없네 따위의 한가한 공방이나 벌이는 게 고작이다. 후보들만 뭐랄 게 아니다. 요구가 없으니 콘텐츠도 없는 것이다.



후보들을 이렇게 편안하게 놓아두면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심상치 않은 외교안보 상황, 국제경제 여건 등 국가운명을 좌우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 당장의 조치를 요구하는 현안들이 도처에서 쓰나미처럼 덮쳐들 것이다. 그때서야 \"이토록 맹탕인줄 몰랐네\" 한탄해봐야 부질없다. 책임의 대부분은 구체적 답을 요구하며 후보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긴장시키지 않은 우리 모두가 져야 한다. 게으른 선택의 결과야 익히 경험해온 바다.



과거 선거감시나 초보적 정책비교수준의 유권자운동이라도 종종 있었으나 이번엔 이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기껏 유권자 움직임이라야 인터넷, SNS 공간에서 꾼들이 벌이는 \'닥치고 욕\' 수준의 저질 말싸움뿐이다. 지식인, 시민단체, 직능단체, 학생, 주부… 저마다 후보들을 현장으로 끌어내려 집요하게 묻고 따지고 주문해야 한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도록 놓아둘게 아니라, 괴롭히고 추궁하고 원하는 모습으로 바꿔가는 게 유권자들의 할 일이다. 그게 정치개혁의 시발점이다.



책임회피 같지만, 대중기호에 민감한 상품의 속성을 이해한다면 언론에도 크게 기대할 건 없다. 정책분석 열심히 해봐야 별로 관심 못 받으면 금세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선거를 통해 정치를 개혁하고 국가 미래를 바꾸는 주체는 누가 뭐래도 국민이다. 이번엔 후보가 아니라 거꾸로 유권자들에게 주문하는 이유다.



유권자들이 너무 점잖다. 이래서는 정화도, 균형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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