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11.20] 박근혜 출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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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868회 작성일 2012-11-20 09:15본문
1980년 11월 서울 인사동에서 미술그룹 ‘현실과 발언’ 창립전시회가 열렸다. 젊은 화가들이 ‘사회와 소통하는 미술’을 내세우며 작품을 선보였다. 1980년대 한국 미술의 큰 흐름을 형성했던 민중미술의 출발점이었다. 민중미술 화가들은 미술의 사회적 참여를 주장했다. 이들은 판화 걸개그림 등 대중에게 파고들 수 있는 장르를 찾아내는 데 적극적이었다. 화가 홍성담(57)은 민중미술 쪽에서 판화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홍성담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문화선전대로 활동했다. 이후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판화를 집중 제작했다. 그는 “광주항쟁을 외부에 알릴 수 있는 시각매체가 거의 없어 판화 작업에 나섰다”며 “그때는 작품이 아니라 ‘운동의 도구’로 생각했다”고 훗날 밝혔다. 민주화 시위에 자주 등장했던 걸개그림은 화가 여러 명의 집단 창작인 경우가 많았다. 홍성담은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의 사진을 보낸 일로 구속됐다. 대법원에서 이적표현물 제작죄가 확정돼 3년간 복역했다. 그는 화가 70여 명과 함께 이 그림을 만들었다.
▷민중미술이 퇴조하던 1994년 2월 국립현대미술관은 ‘민중미술 15년전’을 열었다. 민중미술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행사였다. 당시 임영방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공산주의 색채가 강하거나 예술성이 떨어지는 작품은 배제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시작 중에는 예술적 가치와는 거리가 먼 조잡한 것들이 적지 않았다. 문화계는 이 전시회를 끝으로 민중미술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며 ‘민중미술의 장례식’이라고 평가했다.
▷홍성담은 1999년 개인전 때 과거의 거친 이미지를 벗고 예술적으로 성숙된 작품을 발표했다. ‘운동의 도구’로서의 미술에서 탈피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은 아이를 출산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내놓아 논란을 낳고 있다. 홍성담은 “박근혜 출산설에 착안한 그림”이라며 정치적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그림 자체가 역겨운 느낌을 줄 뿐 아니라 예술성을 인정하기도 어렵다. 출산설은 사실로 확인된 적도 없으니 선동에 가깝다. 그를 두둔하는 이들은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말하지만 그 자신과 민중미술이 걸어온 궤적을 살펴보면 대선을 앞두고 스스로 예술가의 영혼을 훼손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홍성담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문화선전대로 활동했다. 이후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판화를 집중 제작했다. 그는 “광주항쟁을 외부에 알릴 수 있는 시각매체가 거의 없어 판화 작업에 나섰다”며 “그때는 작품이 아니라 ‘운동의 도구’로 생각했다”고 훗날 밝혔다. 민주화 시위에 자주 등장했던 걸개그림은 화가 여러 명의 집단 창작인 경우가 많았다. 홍성담은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의 사진을 보낸 일로 구속됐다. 대법원에서 이적표현물 제작죄가 확정돼 3년간 복역했다. 그는 화가 70여 명과 함께 이 그림을 만들었다.
▷민중미술이 퇴조하던 1994년 2월 국립현대미술관은 ‘민중미술 15년전’을 열었다. 민중미술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행사였다. 당시 임영방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공산주의 색채가 강하거나 예술성이 떨어지는 작품은 배제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시작 중에는 예술적 가치와는 거리가 먼 조잡한 것들이 적지 않았다. 문화계는 이 전시회를 끝으로 민중미술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며 ‘민중미술의 장례식’이라고 평가했다.
▷홍성담은 1999년 개인전 때 과거의 거친 이미지를 벗고 예술적으로 성숙된 작품을 발표했다. ‘운동의 도구’로서의 미술에서 탈피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은 아이를 출산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내놓아 논란을 낳고 있다. 홍성담은 “박근혜 출산설에 착안한 그림”이라며 정치적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그림 자체가 역겨운 느낌을 줄 뿐 아니라 예술성을 인정하기도 어렵다. 출산설은 사실로 확인된 적도 없으니 선동에 가깝다. 그를 두둔하는 이들은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말하지만 그 자신과 민중미술이 걸어온 궤적을 살펴보면 대선을 앞두고 스스로 예술가의 영혼을 훼손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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