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길 칼럼/12.5] 이명박, 어떤 대통령으로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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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1,127회 작성일 2012-12-05 09:18본문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될까.”
돌아온 답은 ‘일’이었다. ‘일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리라는 것이었다. 이어서 그가 내놓은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수긍할 만했다. 김영삼-사명, 김대중-비전, 노무현-꿈, 이명박-일.
지금 누가 될까 하는 참에 무슨 평가냐 할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를 뽑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대통령을 뽑고 나서 어찌 대하고 평가하고 떠나보내느냐다. 반쪽 대통령, 아니 반쪽도 안 되는 대통령을 뽑아놓고 내내 흔들면 남아날 대통령이 없고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온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고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다.
대선 막바지에 박·문 두 후보 측이 노무현·이명박 두 정권의 실정을 강조하며 반사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은 눈꼴사납다. 두 후보는 그렇게도 미래 비전이 궁한가? 유권자를 끌어들이는 게 고작 노무현·이명박인가?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들이 전직 대통령을 제물로 삼으면 자신도 곧 제물로 전락함을 모르는가? 통합을 이야기하며 분열로 대통령이 되려 하는가?
‘노무현-꿈, 이명박-일’이라고 평가한다 해서 꼭 좋은 소리만은 아니다. 노무현의 ‘꿈’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자의 그것이라고 폄하할 수 있고, 이명박의 ‘일’은 본인만 열심히 밀어붙였지 주변을 돌아보았느냐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노무현의 꿈을 당대에 좌절시킨 사람들은 누구일까. 노무현을 대통령이 아닌 ‘도구’로 간주했던 이념파들이 노무현의 실용주의를 흔든 것은 그의 무덤 앞에서 떳떳한가? 이명박의 일에 대해 후세의 평가가 어찌 나올지 길게 보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당장 금강·영산강가에 서서도 ‘토건 대통령’을 외칠 것인가?
한국 정치는 전 정권에 대한 극단적 부정을 통해 정당성을 구축하는 후진 정치라는 지적이 이미 여럿 있었다. 정당성 부정을 통한 정당성 구축이라는 것인데, 이는 이미 잘 먹히지도 않는다는 것이 올해 총선·대선을 치르며 잘 나타났다. 시민이, 유권자가 더 영특한 것이다. 새로운 비전과 리더십을 보이면 확 쏠릴 터인데, 그 빈자리를 안철수라는 인물이 채우기에는 아직은 여러모로 역부족임을 다들 보았다.
사명·비전·꿈·일이라는 평가에 대해 나는 토를 달 생각이 별로 없다. 물·불·흙·바람처럼 다 절실하면서도 또 모두 다가 아니다. 대통령은 만병통치하는 완전한 인격체가 아니고 그러나 다 한몫을 했다. 사실은 정권에 의한 역사의 단절이란 없었다. DJ가 외환위기를 물려받았듯 새 대통령 당선자도 저성장 추세 속에 일자리·복지 욕구를 물려받는다.
어느 대통령이 성장을 내팽개쳤을까. 노무현도 이명박도 다 애를 썼다. 다만 그 성적표를 보면 ‘한국경제성장률 > 세계경제성장률’이란 면에서 이명박 정권이 조금 낫다.
어느 대통령이 복지를 중시하지 않았을까. 노무현도 이명박도 다 애를 썼다. 나라가 복지에 쓴 돈은 매년 늘어났고 그 비중도 매년 높아졌으며, 당연히 이명박 정권의 복지예산 규모나 비중은 역대 최고다.
어느 대통령이 정부 곳간을 지키려 하지 않았을까. 그 누적된 결과로 이명박 정권 때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유독 한국만은 국가신용등급이 올라갔다. 대단한 일이다.
어느 대통령이 소득 분배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일자리는 어려워졌지만 꾸준히 복지가 늘어난 결과 이명박 정권 때 소득 분배는 조금 나아졌다.
성장·복지·재정·분배가 세계적 추세 속에서 우리 역대 정권이 노력한 결과였다면, 녹색성장 패러다임을 전 세계에 처음 제시하고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녹색기술센터(GTC)에 이어 녹색기후기금(GCF)을 한국에 유치해 전략·기술·재원의 ‘녹색 트라이앵글’을 구축한 것은 온전히 이명박 정권의 공이다.
정권 초기 쇠고기 촛불 시위가 벌어졌을 때, 동방신기 팬클럽 사이트에서 우연히 붙은 불이 요리·육아 사이트에서 번져 유모차 부대를 불러낸 것을 알았다면. 젊은 주부들이 왜 절망하고 무엇에 분노하는지 알았다면. 그 배후로 괜스레 시민단체를 지목하고 자금줄을 끊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민간인 사찰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면.
4대강 사업을 운하로 시작하지 않았다면. 환경으로 바꾼 뒤에도 수질 개선이 급한 곳부터 하나하나 했더라면.
4대강 대신 보육에 처음부터 집중했더라면.
5년 내내 사람 쓰는 데서 더 좋은 소리를 들었더라면.
여러 아쉬움이 있지만, 이제 5년 임기를 열심히 마치고 물러나는 대통령이다.
헐뜯고 내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 예의는 유권자인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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