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1.30] 민주당이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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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520회 작성일 2013-01-30 09:30본문
18대 대통령선거 결과를 놓고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가 지난주 개최한 토론회에 다녀왔다. 이 연구소는 지난해 12월 19일 대선이 치러진 직후 투표자 1200명을 면접 조사해 어떤 판단과 기준으로 표를 찍었는지 자세하게 물어봤다. 이날 토론회는 전문가들이 그 내용을 분석해 발표하는 자리였다. 학계에서 선거 직후에 투표자를 상대로 개별 면접 조사를 실시한 것은 드문 일이다. 토론회에서 어떤 얘기들이 오갈지 자못 궁금했다.
이번 대선은 보수와 진보 세력이 정면 대결을 벌여 51 대 48의 스코어로 승부가 갈렸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을 직접 인터뷰한 학자들의 분석은 달랐다. 먼저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이 ‘정당 일체감’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쉽게 말하면 정당에 대한 평소 충성심으로 표를 찍었다는 것이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선거 후반까지 돌풍을 이어간 것은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따라서 정당보다는 정책을 묻는 선거로 치러졌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으나 현실은 차이가 있었다.
이런 분석이 맞는다면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통합당에는 ‘지려고 해도 질 수 없는 선거’가 아니라 ‘질 수밖에 없는 선거’였다. 전국적으로 유권자 비율이 높은 영남과 충청 지역에서 박근혜 후보를 강하게 지지하는 상황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정당선거로 치러지게 되면 승리는 힘들었다.
진보 성향에 가까울 것으로 여겨지는 저소득층 유권자(월 소득 199만 원 이하)의 65.7%가 보수 쪽인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는 강원택 서울대 교수의 분석도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었다’는 상식에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수많은 요인이 뒤엉켜 있는 대선 결과를 놓고 어느 한 가지 틀에 고정시키려는 일 자체가 무리한 접근일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왜 패배했는지 알 수 있는 근거들은 이번 조사에서 분명히 드러나 있었다.
유권자들은 안보 이슈에서 보수적인 의견을 갖고 있었다. ‘한미동맹 강화’에는 조사 대상의 79.7%가 찬성했다. 소득 하위계층이나 상위계층이나 찬성 비율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서는 다수(60.7%)가 반대했다. ‘대북(對北) 지원 확대’에는 64.4%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반면에 비정규직 문제, 고소득자 세금 확대 등 경제 이슈에서는 진보적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지난해 4월 총선 때 확인된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민심의 흐름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안보 면에서 경쟁 후보에 비해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고 오히려 불안해 보였다. 지난해 2월 민주당 지도부가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 몰려가 사실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한 것을 유권자들은 잊지 않고 있다. 한국 측의 한미 FTA 폐기가 한미동맹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국민은 없다. 문 후보는 대선을 앞두고 한 매체와 서면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역시 국가안보와 관련된 제주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는 “당선되면 공사를 중단하고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업 백지화까지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민주당의 안보 노선은 대선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다. 많은 국민이 안보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도 민주당이 이런 방향으로 줄기차게 밀고 나간 것은 ‘오만’ 또는 ‘이념 편향’ 가운데 어느 하나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대선 패배를 자초하는 일이었고, 그나마 큰 차이 없이 진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민주당은 최근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겠다”며 참회와 반성의 뜻을 거듭 밝히고 있지만 실제 행동에는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국회가 2013년도 정부 예산을 사상 처음으로 해를 넘겨 처리하게 된 것은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제주 해군기지의 공사 중단을 요구하면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 6명은 21일 제주 해군기지 현장에 내려가 원정 시위를 벌였다. 23일에는 박기춘 원내대표를 포함한 의원 11명이 국방부를 방문해 공사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과거의 틀 속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민주당이 정권 교체를 원한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체성 면에서 당의 강령 정강정책에 나와 있는 ‘99% 국민을 위한 정당’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에 반하는 내용을 바로잡아야 한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시정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 지도부가 천명한 대로 ‘사즉생(死則生)’의 각오가 섰다면 일차적으로 안보 면에서 국민에게 믿음을 심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내일 국무총리실은 제주 해군기지에 15만 t급 크루즈선 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뮬레이션(모의실험) 결과를 발표한다. 제주 해군기지를 민군(民軍)이 함께 사용하는 항구로 쓰기 위해 관광용 크루즈선의 출입 가능 여부를 검증하는 작업이다. 여야가 새해 예산을 처리하면서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해 합의한 3개항 가운데 핵심 내용이었다. 만약 시뮬레이션 결과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면 민주당은 제주 해군기지 사업에 적극 협조하는 것으로 첫 단추를 풀어나가야 한다. ‘안보에도 강한 정당’은 민주당 재집권을 위한 키워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이번 대선은 보수와 진보 세력이 정면 대결을 벌여 51 대 48의 스코어로 승부가 갈렸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을 직접 인터뷰한 학자들의 분석은 달랐다. 먼저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이 ‘정당 일체감’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쉽게 말하면 정당에 대한 평소 충성심으로 표를 찍었다는 것이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선거 후반까지 돌풍을 이어간 것은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따라서 정당보다는 정책을 묻는 선거로 치러졌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으나 현실은 차이가 있었다.
이런 분석이 맞는다면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통합당에는 ‘지려고 해도 질 수 없는 선거’가 아니라 ‘질 수밖에 없는 선거’였다. 전국적으로 유권자 비율이 높은 영남과 충청 지역에서 박근혜 후보를 강하게 지지하는 상황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정당선거로 치러지게 되면 승리는 힘들었다.
진보 성향에 가까울 것으로 여겨지는 저소득층 유권자(월 소득 199만 원 이하)의 65.7%가 보수 쪽인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는 강원택 서울대 교수의 분석도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었다’는 상식에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수많은 요인이 뒤엉켜 있는 대선 결과를 놓고 어느 한 가지 틀에 고정시키려는 일 자체가 무리한 접근일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왜 패배했는지 알 수 있는 근거들은 이번 조사에서 분명히 드러나 있었다.
유권자들은 안보 이슈에서 보수적인 의견을 갖고 있었다. ‘한미동맹 강화’에는 조사 대상의 79.7%가 찬성했다. 소득 하위계층이나 상위계층이나 찬성 비율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서는 다수(60.7%)가 반대했다. ‘대북(對北) 지원 확대’에는 64.4%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반면에 비정규직 문제, 고소득자 세금 확대 등 경제 이슈에서는 진보적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지난해 4월 총선 때 확인된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민심의 흐름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안보 면에서 경쟁 후보에 비해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고 오히려 불안해 보였다. 지난해 2월 민주당 지도부가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 몰려가 사실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한 것을 유권자들은 잊지 않고 있다. 한국 측의 한미 FTA 폐기가 한미동맹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국민은 없다. 문 후보는 대선을 앞두고 한 매체와 서면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역시 국가안보와 관련된 제주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는 “당선되면 공사를 중단하고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업 백지화까지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민주당의 안보 노선은 대선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다. 많은 국민이 안보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도 민주당이 이런 방향으로 줄기차게 밀고 나간 것은 ‘오만’ 또는 ‘이념 편향’ 가운데 어느 하나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대선 패배를 자초하는 일이었고, 그나마 큰 차이 없이 진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민주당은 최근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겠다”며 참회와 반성의 뜻을 거듭 밝히고 있지만 실제 행동에는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국회가 2013년도 정부 예산을 사상 처음으로 해를 넘겨 처리하게 된 것은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제주 해군기지의 공사 중단을 요구하면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 6명은 21일 제주 해군기지 현장에 내려가 원정 시위를 벌였다. 23일에는 박기춘 원내대표를 포함한 의원 11명이 국방부를 방문해 공사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과거의 틀 속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민주당이 정권 교체를 원한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체성 면에서 당의 강령 정강정책에 나와 있는 ‘99% 국민을 위한 정당’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에 반하는 내용을 바로잡아야 한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시정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 지도부가 천명한 대로 ‘사즉생(死則生)’의 각오가 섰다면 일차적으로 안보 면에서 국민에게 믿음을 심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내일 국무총리실은 제주 해군기지에 15만 t급 크루즈선 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뮬레이션(모의실험) 결과를 발표한다. 제주 해군기지를 민군(民軍)이 함께 사용하는 항구로 쓰기 위해 관광용 크루즈선의 출입 가능 여부를 검증하는 작업이다. 여야가 새해 예산을 처리하면서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해 합의한 3개항 가운데 핵심 내용이었다. 만약 시뮬레이션 결과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면 민주당은 제주 해군기지 사업에 적극 협조하는 것으로 첫 단추를 풀어나가야 한다. ‘안보에도 강한 정당’은 민주당 재집권을 위한 키워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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