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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임성원 부산일보 논설실장] 트럼피즘과 진영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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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01회 작성일 2020-11-0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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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미 대선은 없었다. 11·3 미 대선이 예측 불허의 대혼돈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가위 ‘역대급’이라 할 만하다. 투표가 끝나고 개표에 들어간 그 날 자정 무렵부터 “승리로 가고 있다”(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우리가 이겼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라는 서로 다른 승리 선언이 잇따르면서 승부는 더 미궁에 빠졌다. 바이든이 대역전극을 펼쳤지만 우편투표 법정 공방이 예고되면서 승복과 불복의 드라마가 다시 막 오른 인상이다.


정책보다는 당락이라는 ‘경마 저널리즘’의 진수를 보여 준 이번 미 대선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빙의 개표 상황만큼이나 선거전도 드라마틱했다. 총을 든 텍사스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오스틴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민주당 유세버스를 차량으로 에워싸고 위협한 것은 압권이었다. 말을 타고 총질하는 서부영화에서나 봄 직한 활극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황야의 무법자’를 떠올리게 하는 서부 개척 시대 이전으로 돌아간 것일까.


혼미에 혼미 거듭한 미 대통령 선거

진영 갈등으로 내전 위기 치달아

‘팍스 아메리카나’ 영화도 저무는가

한국정치도 분열과 대립 극심

광장 분열하고, 차별·혐오만 키워

통합·상생의 승복 정치 필요한 때


1831년 미국의 감옥 제도를 연구하라는 프랑스 정부의 명을 받아 신대륙에 들어간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은 미국의 격정적인 민주주의에 매료돼 〈미국의 민주주의 1, 2〉를 펴냈다.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그는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보통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학교”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수의 폭정’ ‘부드러운 전제정치’로 타락할 수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모든 권력은 중앙집권적 속성을 지니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백주 대낮에 상대 후보 진영에다 총기를 휘두르고, 대통령 입에서 무력으로 개표 상황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위협이 공공연한 데다 자칫 선거전이 남북전쟁을 연상시키는 내전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를 안긴 이번 미 대선은 ‘다수의 폭정’ ‘부드러운 전제정치’라는 토크빌의 말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세계로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의 나라’로 추앙받던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트럼프 행정부의 지난 4년간을 복기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행태를 일컫는 트럼피즘(Trumpism)이 이번 대선을 극심한 진영 갈등으로 내몰았다. 미 국민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내전으로 치닫는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트럼프주의는 극단적인 주장에 열광하는 백인 보수층 ‘샤이 트럼프’의 지지를 바탕으로 성, 인종, 보수와 진보에 이르기까지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부채질했다. 국제적으로는 파리기후변화협약과 세계보건기구 탈퇴,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미군 철수 같은 동맹 갈등 조장을 통해 고립의 길을 길었다.


트럼피즘은 안으로는 성·인종·보혁 등 진영 갈등으로 미국의 민주주의 전통을 뒤흔들고, 밖으로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를 밀어냈다. 굳건한 민주주의의 전통 위에 세워진 제국의 영화는 평화는커녕 분쟁과 갈등으로 나날이 저물어 갔다. 뉴욕타임스는 대선 하루 전날 “어두울 때만 별이 보인다”라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투표를 하고 민주주의를 새롭게 하자”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국내 증시의 등락만 봐도 미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앞서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한국과 미국은 그야말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트럼프 재임 4년간의 한국정치도 미국정치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2016년 미 대선 바로 다음 날인 11월 10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인과 축하 전화를 한 이후 한국정치는 탄핵-대선-총선 등을 거치며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정국을 보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로 극심하게 갈리는 진영 민주주의에 다름 아니었다.


미국과 달리 ‘총기 소지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아 총만 안 들었을 뿐이지 특정 진영을 겨냥한 저격과 혐오의 정치가 한국정치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진영 싸움으로 광장이 갈라지고, 온라인에서도 분열과 다툼의 글이 도배질 되기 일쑤였다. 심지어 보수 쪽에서는 트럼피즘에 비견할 만한 ‘문주주의’(문재인+민주주의)라는 신조어로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식 민주주의를 공격하기도 한다.

미 대선을 지켜보다가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안녕하신가?’ 하는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민주주의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다는 사실을 ‘민주주의의 본산’이라는 미국이 잘 일깨워 줬다. 미국 민주주의는 불복이 아니라 승복의 정치에서 성장했다.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는 포용과 관용의 정치, 통합과 상생의 정치가 진정한 국력이라는 사실을 미 대선이 지금 웅변하고 있다.



원문보기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011051854029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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