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신종수 국민일보 편집인] 청년들이 죽고서야 > 임원진 칼럼

본문 바로가기
회원가입    로그인    회원사 가입      

임원진 칼럼

[회원칼럼-신종수 국민일보 편집인] 청년들이 죽고서야

페이지 정보

댓글 0건 조회 217회 작성일 2023-05-10 14:14

본문


 


전세사기는 개인적 불운 아닌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적 재난

정부 감독 소홀, 부실한 제도,
정치권의 직무유기 등이 원인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몬
우리 사회의 탐욕 되돌아봐야


미추홀. 백제시대부터 인천 지역을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개성 있고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인천 미추홀구에서 최근 전세사기를 당한 청년 3명이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박모(31·여)씨도 그중 한 명이다. 강원도 정선의 한 중학교에서 원반던지기 선수를 하다 고모가 있는 부산으로 전학했다. 체육고에 입학해 해머던지기로 종목을 바꾼 그는 고교 3년 동안 전국체전에서 3번 연속 우승했다. 여고생 기록을 경신해 가며 16개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2녀 중 장녀인 그는 당시 지역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 실업팀에도 들어가 돈을 벌어 동생을 대학에 꼭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이 종목 최연소 국가대표로 마침내 선발돼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서 5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부산시청과 울산시청 등 실업팀을 거쳐 인천으로 옮겨 선수 생활을 했다.

꿈을 이뤄가던 이 청년이 ‘인천 건축왕’으로 불리는 남모(61·현재 사기혐의로 구속 중)씨 일당을 만난 것은 27살 때다. 꼬박꼬박 모은 돈 7200만원을 주고 아파트 전세 계약을 했다. 소규모 아파트와 빌라가 몰려 있는 구도심 지역인 이곳은 인천의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집값과 전셋값이 싸다. 남씨 일당은 2년 뒤 전세금을 9000만원으로 올렸다. 남씨는 종합건설업체를 운영하면서 소규모 아파트와 빌라 2700채를 보유하고 있고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으로부터 전세금을 받았다.

박씨는 지난해 3월 이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갔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매에 넘겨진 집은 전세금이 8000만원 이하여야 최우선변제금 2700만원이라도 보장받을 수 있다. 박씨는 보증금을 한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9000만원은 그에게 너무 큰돈이었다.

미추홀구에서 경매로 넘어간 가구는 1500가구가 넘는다. 피해자는 청년과 신혼부부, 서민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들을 상대로 수천 채 집을 보유한 사람이 편법과 불법을 일삼는데도 임차인 보호 제도와 정부의 관리 감독은 부실했다. 지난해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여러 대책들은 실효성이 없었다. 전세사기 방지 관련 법안들도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쌓여 있다. 그래서 개인의 불운이나 부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재난이라는 말이 나온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도 전세사기가 만연해 있다.

운동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어느 종목 선수든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박씨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해머를 던지고 또 던졌을 것이다. 매일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며 목표를 향해 자신을 채찍질했을 것이다. 인기 종목이든 비인기 종목이든 성실성과 책임감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결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 운동해서 국가대표 되는 것이 공부해서 서울대 가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생각한다. 공부로 치면 아마 서울대 단과대 수석 정도의 확률이지 않을까 싶다.

자립심이 강한 그는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지난해 말 선수 생활을 그만둔 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애견 미용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지방에 있는 아버지에게 안부 전화를 하면서도 전세사기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 앞에 나타난 벽을 깨뜨리기 위해 해머를 던지듯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이 벽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절망했던 것일까. 단수 경고장이 붙을 정도로 수도 요금조차 내지 못하는 처지를 자책했던 것일까. 부동산 투기를 한 것도 아닌데 전 재산을 날리고 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그는 해머를 내려놓고 이 절망의 벽을 향해 자신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미추홀구에서는 앞서 두 명의 청년들이 같은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난 14일 숨진 다른 청년은 어머니에게 2만원만 보내 달라고 할 정도로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지난 2월 숨진 또 다른 청년은 “저의 이런 결정으로 이 문제를 꼭 해결했으면 한다”는 유서를 남겼다.

이 청년들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이 사회의 탐욕이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기성세대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청년들이 죽고서야 경매 중단과 특별법 제정이 추진되는 등 정부와 정치권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피해자들이 요구해온 대책들이다. 그러나 너무 늦게 나왔다. 젊은 영혼들의 안식을 빈다.

원문보기 :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98482&code=11171414&cp=nv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822건 10 페이지
임원진 칼럼 목록
제목
687
686
685
684
683
682
681
680
679
678
677
676
675
674
673
게시물 검색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4 한국프레스센터 1311호   전화: 02-723-7443   팩스: 02-739-1985
Copyright ©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All rights reserved.
회원사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