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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 이재명의 치밀한 두뇌, 담대하지 못한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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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34회 작성일 2023-03-0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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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홍근 원내대표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홍근 원내대표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스1 


2021년 10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은 대장동 의혹으로 막판 표심이 출렁였다. 초·중반엔 이재명 후보 독주였는데 마지막 날 투표에선 이낙연 후보가 62% 대 28%로 두 배 이상 앞섰다. 합산 결과 이재명 후보 득표율이 과반 경계선이었다. 중도 사퇴한 후보들의 표를 무효 처리하면 50.29%로 이재명 후보 확정, 포함시키면 49.3%로 이낙연 후보와 결선투표였다.

그 무렵 정치부장 출신 언론인들끼리 모임이 있었다. 결선투표가 성사될 경우 누가 이길지가 화제였다. “그래도 대세는 이재명”과 “이낙연의 역전 흐름” 주장이 팽팽했다. 필자는 당 선관위가 결선투표를 결정하면 이낙연 우세, 이재명 후보가 결선투표를 수용하면 이재명 우세를 점쳤다. 그런 승부수를 던졌다면 경선 후 당심(黨心)을 하나로 묶는 데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결선투표를 거부하면서 후보로 확정됐다. 그러자 지지율이 오히려 떨어지는 역(逆)컨벤션 효과가 나타났다.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특검을 받느냐 마느냐를 놓고도 선택의 기로에 섰다. 불리한 증거가 튀어나올 수 있는 특검을 받을 리 없다는 쪽이 대세였지만, 특검 수용이 대선 승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어차피 여야가 특검 법안을 협상해서 통과시키고, 특검을 선정하고, 출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대선까지 반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진상 규명은 어려웠다. 반면 특검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켕기는 게 없고 당당하다”는 인상을 주면서 득표엔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경선 결선투표, 대장동 특검 두 차례 갈림길에서 모두 모험을 회피했다. 만약 그때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면 0.73%p 초박빙으로 갈렸던 대선 승부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가끔은 궁금해진다.

정치인들이 위험을 무릅쓴 정면 승부로 정국의 흐름을 뒤바꾸는 장면을 몇 차례 목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로 2002년 대선 승부를 결정지었다. 단일화를 받아들일 무렵 노 전 대통령은 박빙 열세 속에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단일화에서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다. 졌다면 집권당이 후보를 못 내고 들러리를 섰을 것이다. 위험한 도박이었다. 여론조사 발표 날 노 캠프 관계자들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주자들은 민주당 강금실 후보에게 밀리고 있었다. 정치판을 떠나 있던 오세훈 전 의원이 유일하게 강 후보와 접전이었다. 그러나 오 전 의원이 3주 남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오 전 의원을 전략 공천하자는 일부 주장은 무산됐다. 오 전 의원은 경선 참여라는 승부수를 띄웠고 대역전극에 성공했다. 그 흐름을 타고 본선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민주당 박지현 전 대표가 이재명 대표에게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고 체포동의안을 가결하라”고 촉구했다. 노무현 정권서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표결 절차도 거치지 말고 “검찰에 자진 출두해 구속 심사를 받으라”고 권했다. 두 사람 모두 민주당이 다수 의석으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을 때의 결과를 걱정했다. 박 전 대표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만신창이가 될 것”이라고 했고, 조 교수는 “이재명 대표가 자신을 위해 당을 희생시켰다는 비난 여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이 대표가 정면 승부에 나서면 영장이 기각될 수도 있고, 설사 구속되더라도 당이 총선에 승리하면서 이 대표 역시 재기를 모색할 수 있다고 했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게 20년 넘는 징역형을 선고한 사법 체계라면 이재명 대표는 중형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러나 곽상도 전 의원, 윤미향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이라면 어떤 불규칙 바운드가 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대표에 대한 영장 심사는 검찰 입장에서도 위험부담이다. “검찰도 체포동의안 부결을 바란다”는 박 전 대표의 주장은 그런 면에서 일리가 있다.

이 대표는 치밀한 두뇌로 거미줄처럼 감겨 오는 사법 리스크를 헤쳐 왔다. 반면 자신의 정치 생명을 판돈 삼아 큰 승부를 모색하는 담대한 심장을 보여준 적은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정면 승부를 피해갈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을 치르고 나서 이 대표는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되돌아보며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며 한숨짓는 프로스트의 시 구절을 떠올리게 될지 모른다.

김창균 논설주간

김창균 논설주간 

원문보기 :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3/02/23/G2KNOAKDC5GS5OQ7ATV3BX3QJI/?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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