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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이중근 경향신문 논설주간] 윤석열 정부 ‘노동 개혁’,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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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32회 작성일 2022-12-2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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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선생은 생전에 몇 차례 필자에게 언론과 언론인의 시각에 대해 비판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2013년 2월, 박근혜씨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뒷날 전화로 전한 말이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겠다”는 경향신문 1면 기사 제목에 대해 왜 그렇게 보도했느냐고 물었다. 비록 인용 부호를 써 전달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그 구호에 동의한 게 아니냐는 꾸지람이었다. 두번째 기억은 백 선생과 대화 중 ‘노동자들의 투쟁 방식이 좀 더 세련되었으면 한다’는 필자의 말 뒤에 대답처럼 덧붙인 말이다. 백 선생은 사람은 먹고사는 게 어려워지면 짜증을 낼 수밖에 없다며, 그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전쟁터에서 겨우 살아나온 장병에게 복장이 왜 그 모양이냐고 따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었다. 2주기가 다가오는 백 선생을 떠올린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 개혁’을 들고나오면서였다.

이중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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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노동 개혁을 외치는 사정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먼저 화물연대의 파업을 업무개시명령으로 철회시킨 뒤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이자 고무됐다. 내친김에 노조를 3대 부패 세력으로 규정하며 척결을 외치더니, 노조의 씀씀이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며 관련 법까지 고치라고 지시했다. 여론조사를 보면, 노조 부패 척결 발언에 공감하는 응답자와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가 49%와 48%로 팽팽하다. 별다른 정치적 성과 없이 내후년 총선에 나서야 할 여권으로서는 솔깃한 전략이다.

윤 대통령은 노동 개혁의 이유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를 앞세웠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대기업 정규직의 40%를 겨우 넘는 임금을 받는 불평등 구조를 개선한다는 것이다. “노노 간 착취적인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것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하지만 두 노조 간 격차가 생기는 데는 회사 책임이 크다.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의 임금을 가로채고 있다고 하지만, 실은 회사가 그만큼의 이익을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사측의 책임에 대해서는 일절 말이 없다. ‘조직화되지 못한 약한 노조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4.2%로 매우 낮다. 공공부문(70%)에 비해 민간부문 노조 조직률(11.2%)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300명 이상 사업장 노조 조직률(46.3%)에 비해 30명 미만 사업장의 조직률(0.2%)이 매우 낮다. 그렇다면 정부는 소규모·민간부문 노조 가입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법을 내놓은 적이 없다. 외려 30인 미만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주 60시간 근무를 2년 더 허용하려고 하고 있다. 노동 개혁은 그저 허울 좋은 구호일 뿐이라는 증거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노동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주 52시간 근무를 비판하며 주 120시간 근무를 언급하기도 했다. 급조된 정책에 목표와 지향점, 실천 방안이 있을 수 없다. 3대 부패 세력이라고 무시무시한 딱지를 붙여놓고도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냥 자기편이 아니어서 미운 것이다. 노조 재정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것은 과거 1980년대 업무감사권을 이용해 노조를 옥죄던 수법과 닮았다. 결국 노조를 억압하던 시절로 돌아간다는 발상뿐이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 구호는 허구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문제는 시민들의 노동 인식이다. 여러 분야에서 한류가 빛을 발하고 있지만, 노동에 대한 시민 의식은 그만큼 고양되지 못했다. 그 자신과 그 가족이 모두 노동자이면서 근거 없이, 또 잘못된 근거를 바탕으로 노조를 비난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교육 탓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가 믿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4월 총선 때까지 줄기차게 노조를 때릴 것이다. 노조의 씀씀이에 대해 트집 잡으려는 수사도 강도 높게 진행할 것이다. 노조 간부들의 일탈이 보수 언론에 등장해도 이상할 게 없다.

백기완 선생이 계신다면 어떻게 했을까. 적어도 윤석열의 노동 정책에 ‘개혁’이라는 말 자체를 붙이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대신 그 허구성을 날카롭게 들춰내는 증거와 논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이 엄동설한에 투쟁 현장의 맨 앞자리에 자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호통칠 것이다. “어디 잡을 게 없어서 노동자들부터 때려잡느냐, 이 나쁜 XX아!” 

이 싸움의 향배를 결정할 것은 결국 시민이다. 역설적이게도, 현 정부가 노동 개혁의 실마리를 던졌다. 

원문보기 :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228030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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