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호] ‘김영란 법’에 붙을지도 모를 형용사들 ( 김종구 경기일보 논설실장/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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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119회 작성일 2016-10-31 13:37본문
384호
‘김영란 법’에 붙을지도 모를 형용사들
김종구 경기일보 논설실장/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범케이스만 피하자.” 이러는 이도 있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시범 케이스는 이해된다. 경각심을 갖는 것이니 뭐랄 것도 없다. 그런데 못 알아들을 얘기는 후자다. 괜찮아진다는 뜻이 뭔가. 혹시 시간 지나면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뜻인가. 단속도 느슨해질 것이고, 처벌도 약해질 것이라는 뜻인가. 결국, 법의 운명은 사문화(死文化)라는 말인가. 많은 이들이 말하는걸 보니 보통 일은 아닌 듯싶다.
며칠 전이다. 그 자리도 온통 김영란 법 얘기였다. 치과원장이 물었다. “공무원인 친구 이빨도 치료해주면 처벌받게 되는 건가.” 검사장이 대답했다. “우리 사회가 너무 걱정을 하는 듯하다. 장담하는 데 그런 것까지 수사할 검사는 없을 거다.” 그러면서 과거의 몇몇 사건을 얘기했다. 만화가를 음란죄로 수사했던 일, 위작 그림 논란에 어설피 손댔던 일…. 제대로 된 수사라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원장의 이빨 치료도 ‘그런 수사’라고 단정해 말했다.
물론 검사장 말이 공식 의견은 아니다. 이빨 치료가 김영란 법의 전부도 아니다. 그런데도 경청할 가치는 충분하다. 김영란 법의 처벌은 이제 시작 단계다. 다들 지켜보고 있다. 검찰에서 만들어질 가벌성(可罰性)의 선례를 기다리고 있다. 들이댈 잣대는 이미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속을 쉽사리 보여주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궁금해 하던 차였다. 현직 검사장이 “그런 건 수사 안 할 것”이라고 했다. 반전이 담긴 단정적 촌평(寸評)이다.
법원 분위기를 엿볼 일도 생겼다. 수도권 법원의 과태료 담당 판사들이 의견을 모았다. ‘김영란 법 과태료 재판 절차를 위한 안내자료’를 냈다. 2011년 시행된 ‘질서위반행위규제법’을 근거로 재판하겠다고 했다. 이 법의 핵심은 책임주의 원칙이다. 고의 과실이 없으면 처벌하지 않는다. 법을 위반했다고 무조건 과태료를 부과하는 형식주의를 보완하는 논리다. 여기에 철저한 증거 입증주의는 기본으로 깔려 있다. 김영란 법에 적용할 대원칙이다.
여기도 반전의 흔적은 있다. 권익위는 법조문 위주의 추상같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스승의 날 카네이션도 법 위반이라고 해석했다. 학생이 선생에게 준 캔 커피도 불법이라고 해석했다. 예민하다 싶은 질문에 답을 내놓지 않는다. 홈페이지에는 2천500여개가 넘는 질문이 들어왔다. 답은 절반도 안 했다. 그러면서 떠미는 곳이 법원이다. ‘최종 확정은 법원이 판결로 내릴 것’이라며 유보한다. 그 법원이 원칙을 말했는데, 느낌이 권익위와 다르다.
권익위는 ‘카네이션도 처벌받는다’고 했다. 현직 검사장은 ‘그런 것까지 처벌할 검사는 없다’고 했다. 현직 판사들은 ‘고의 과실이 없으면 처벌 않겠다’고 했다. 어렵사리 귀동냥한 기관별 입장들이다. 이를 토대로 흐름을 엮어 보면 이렇다.
-스승의 날에 선물을 전달한 많은 학부모들이 신고된다. 권익위는 신고된 학부모들을 모두 검찰에 송치한다. 검사는 수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절반의 학부모를 무혐의 처리한다. 사안이 중하다고 판단한 나머지 절반만 법원에 넘긴다. 판사는 이 중 절반에 대해 고의 과실이 없다며 무죄 선고한다. 나머지 절반은 스승과 제자 관계라는 정상을 참작해 선고 유예
한다.-
괜한 예측일까. 아니다. 2014년 요란하게 등장했던 아동학대처벌법이란 걸 보자. 3년차인 올해(8월 현재) 기소율이 46.3%다. 김영란 법은 시작부터 삐걱 됐다. 많은 이견 속에 출발했다. 그런데 검사장이 ‘그런 걸 수사할 검사는 없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판사들은 ‘철저하게 고의과실을 따지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송치사건의 절반 무혐의, 나머지의 절반 무죄, 나머지의 절반 선고유예가 괜한 가정이 아니다. ‘시간이 가면 괜찮아질 것’에 맞는 상황이다.
김영란 법 충격이 크다. 일찍이 보지 못했던 법률 공포다. 그도 그럴 게, 규제 대상이 상상을 초월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법언(法諺)을 넘어섰다. 법의 경계가 도덕의 한 귀퉁이에서 한복판으로 왕창 옮겨졌다. 그래서 정착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다. 지키는 척하자고들 말한다. 결국엔 흐지부지될 것이라고들 말한다. 위험한 법률 불신(不信)이다. 안 좋은 현상이다. 그런데도 무시해 버리긴 찜찜하다. 법에 보이는 구멍이 그만큼 많다.
유명무실(有名無實), 용두사미(龍頭蛇尾), 사문화(死文化). 김영란 법에 붙게 될지도 모를 형용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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