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황정미 세계일보 편집인] ‘선한 권력’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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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36회 작성일 2020-12-02 09:46본문
권력형 성범죄에 침묵하고 책임 피해
2030 여성들의 삶 나아지지 않아
집권 4년차가 되도록 무너지지 않는 40%대 지지율을 유지한 대통령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일하다. 한국갤럽조사를 감안하면 조국 사태와 부동산 대란 때 잠시 39%를 찍었지만 곧 40%대를 회복했다. 이런 흐름을 굳건히 받치는 집단으로 2030 여성이 꼽힌다. 이들은 50%대 이상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늘 평균 지지율을 웃돈다. 제각기 다른 사유가 있겠지만 거칠게 집단화하자면 문 대통령의 여성 친화적 이미지에 호감이 큰 것 같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까지 했으니 말이다.
실제 문재인정부가 약속한 성평등 정책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선공약체크 사이트인 ‘문재인미터’에 따르면 전체 공약 35개 가운데 집권 3년 평가 기준 완료 공약은 2개에 불과했고 지체되거나 변경된 공약이 절반을 넘었다. 성평등위원회 설치나 성별임금 격차 해소와 같은 ‘지체’된 공약이 임기 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에 육박하는 경력단절 기혼여성 비율도 그대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해마다 내놓는 ‘젠더 격차지수 보고서’(2020)에서 한국 순위는 평가대상 153개국 중 108위에 그쳤다. ‘페미니스트 정부’란 말이 무색한 지표들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성인지 감수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등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이 줄줄이 성추문에 휩싸여 공직을 떠났는데도 대통령은 말이 없었다. “여성폭력은 심각한 범죄다. 단호히 대응하고 피해자를 빈틈없이 보호하겠다.” 지난달 25일 ‘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대통령이 SNS에 올린 글이다. 포괄적이고 원칙적인 언급에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기 진영의 위력형 성범죄에 대통령이 침묵한 사이 집권 여당은 당헌을 뒤집고 내년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정부에서 ‘훈장’처럼 내세우는 게 있긴 하다. 국무위원 가운데 여성 장관 비율 30%를 충족한 수치다. 면면을 따지자면 난감하다. 요즘 뉴스의 한복판에 있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거부해온 인물이다. 여성 의원이 많지 않던 시절 그들에 관한 책에서 유일하게 추 장관 인터뷰는 빠졌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을 주제로 인터뷰하지 않겠다는 그의 뜻이 워낙 강했다고 한다. 그가 여성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적이 있었는지 기억에 없다. 김현미 국토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각각 부동산 정책과 한국 외교 실패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지 오래다. 이들이 장수하는 배경으로 능력이 아니라 ‘대통령 총애’가 거론되는 건 민망하다. 심지어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단체장들 성범죄에는 입을 다물고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을 학습할 기회”라고 해 여당에서조차 경질을 건의했다.
정세균 총리 후임으로 여성 후보들이 호명된다. 대통령이 ‘여성 총리’를 임명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또 임기 말 여성 총리인가’라는 생각부터 떠오른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말 여성 총리 후보를 내세웠다. 미국의 첫 여성 부통령 당선자 카멀라 해리스처럼 인구 절반인 여성에 가능성, 영감을 주려면 한창 권력이 집중된 임기 초에 지명해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단임 대통령의 임기 말 여성 총리는 방패막이처럼 느껴진다. 대통령과 정권에 쏟아지는 민심의 화살을 맞으며 늘 벼랑 끝에 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도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여성 총리를 만들고, 여성 국무위원 30% 비중을 넘긴 성평등 정부다”라고 자찬할지 모른다.
최근 젊은 여성 자살률이 높아졌다는 뉴스를 접했다. 지난해와 올해 20대 여성 자살률 증가 추세는 다른 세대를 압도한다. 한국자살예방협회장 기선완 교수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세미나에서 “경제적, 심리적으로 취약한 세대인 데다 젠더 이슈도 관여한 것 같은데 심층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약속한 정부에서 핵심 지지층인 2030 여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선한 권력’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는지 몰라도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 차가운 현실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원문보기 http://www.segye.com/newsView/20201201520561?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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