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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임성원 부산일보 논설실장] 누가 지방방송 끄라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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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61회 작성일 2021-02-0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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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방송 꺼!” 일상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부지불식간에 사용하곤 하는 이 말에는 무서운 저주가 숨어 있다. 지방의 모든 것은 하찮을 뿐이며, 주목할 만한 것도 없다는 말이다. 지방방송이 지방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악역을 떠안았을 뿐이다. 중앙은 언제나 옳고 지방은 언제나 무시해도 되는, 왕조시대부터 시작된 오랜 중앙집권의 폐해가 마치 한국인의 DNA에 각인되어 있다는 듯 오늘에도 펄펄 살아 있다.


5인 이상 집합 금지령이 떨어진 이 엄혹한 시절에 “지방방송 꺼!”는 새 버전으로 출현했다. 모임에서 시끄러운 좌중을 정리해 이목을 집중시킬 용도가 아니라 공중파를 버젓이 타고 지역의 환경을 감시할 책무가 있는 지방방송을 한껏 조롱했다. 김윤 국민의힘 서울시당 위원장이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월성원전 삼중수소 대거 유출을 보도한 포항MBC와 관련해 “어디 지방방송이 얘기한 것을 갖고 이낙연 대표가 그러느냐”고 했다.


지방 향한 저주 서린 “지방방송 꺼!”

중앙집권 오랜 폐해 오롯이 담아

지방·지역언론 폄하하는 중앙 행태

서울 정치인·언론에서 여전히 기승

원전 안전·지역발전 추구하려면

‘지방방송’ 켜고 볼륨 한껏 높여야


‘지방방송 보도는 보도도 아니다’라는 게 서울시당 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이른바 중앙의 시각이다. 물의(?)를 일으킨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도 지방방송 폄하 발언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우리 부산에 계신 분들은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 TV조선, 채널A를 너무 많이 보셔서, 어떻게 나라 걱정만 하고 계시는지 한심스럽다.” 이쯤 되면 지방언론은 중앙에 치이고, 지역에서도 홀대받는 사면초가 신세가 아닐 수 없다.


수도권 한강 수계에 있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삼중수소가 대거 유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면 나라가 뒤집혀도 몇 번 뒤집혔을 것이다. 중앙지 등 서울의 중앙언론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상황에서 한강 수계에 원전이라니 애초부터 가당치도 않은 일이겠지만 방사성 물질의 위험이란 게 어디 중앙과 지방을 가리겠는가. 하지만 한반도 동남단에 있는 경주의 원전에서 삼중수소가 나오든 말든 중앙에서는 ‘강 건너 불’이요 ‘남의 나라 일’이다.


월성원전의 삼중수소 검출은 주변 지역을 살아가는 지역민에게는 생명과 안전이 걸린 절박한 문제다. 부산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개인적으로는 동해안 해파랑길 가운데 부산을 제외하고는 가장 즐겨 찾는 제10코스(울산 정자항~강동화암주상절리~경주 관성해변~하서해안공원~읍천주상절리~나아해변, 14.5㎞)가 월성원전 입구로 이어진다. ‘코로나19’ 발발 이전에는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이곳을 찾았고, 도중에 바다 풍경을 보며 지하에서 퍼 올린 온천과 해수탕을 번갈아 즐기는 것은 10코스에서만 느끼는 기쁨이었기에 결코 남의 일일 수 없다.


월성원전 지하수 배수로 맨홀에 고인 물에서 리터당 71만 3천㏃(베크렐)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이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배출관리기준인 4만㏃/L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지역민들은 삼중수소 피폭을 우려하지만 일부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바나나 6개’ ‘멸치 1g’과 맞먹는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식이다. 기준치는 왜 있으며, 나아가 피폭량을 무조건 낮춰야 한다는 ‘알라라’(ALARA·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원칙은 왜 있는지 알다 가도 모를 일이다.


연전에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에 갔을 때 맨해튼 앞 허드슨강을 거슬러 올라가 뉴욕에서 북쪽으로 48㎞ 떨어진 곳에 있는 인디언 포인트 원자력발전소를 들른 적 있다. 우리로 치면 한강 변이랄 수 있는 허드슨강 변에 뉴욕이 사용하는 전기의 4분의 1을 공급하는 원전이 들어서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미국 원전의 3분의 2에서 삼중수소가 유출되었다는 〈AP통신〉의 탐사보도 이후 이곳에서도 삼중수소가 환경 문제화되었고 결국 2021년 원전을 폐쇄하기로 뉴욕주와 발전소 측이 합의했다.


원전의 폐쇄 여부는 그곳을 살아가는 지역민들의 몫이지 전기를 공급받는 수혜를 누릴 뿐인 서울 등 중앙에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뉴욕에 있는 원전을 뉴욕 스스로 폐쇄했듯 월성원전 등 지역에 쏠려 있는 원전은 지역민들이 주도적으로 그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받는다’는 말이 원자력계를 떠도는 속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서울 등 중앙이 필요하다면 뉴욕처럼 한강 변에 원전을 지으면 된다.


지방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원전의 위험성은 한사코 외면하면서 가덕신공항 건설 같은 지역 발전 방안에는 온갖 저주를 퍼붓는 중앙과 중앙언론의 행태를 지역민들은 직시해야 한다. 지방소멸 소리를 들어가며 공룡처럼 비대한 수도권에 노동력을 대고, 피폭 위험을 무릅쓰고 전기를 제공하는 지방은 서울이 언제든 동원 가능한 식민지인가. 지금은 지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신문이든 방송이든 지방의 목소리를 담은 ‘지방방송’을 곳곳에서 켜고, 볼륨을 한껏 높일 때다.


원문보기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10204184312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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