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양권모 경향신문 편집인] '윤석열 현상'의 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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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54회 작성일 2021-03-17 10:08본문
‘정치인 윤석열’을 놓고 여론은 매우 분열적·대립적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정계 진출에 대해 ‘적절’ 48.0%, ‘부적절’ 46.3%로 팽팽히 갈렸다(5일 리얼미터 조사). 윤석열의 대선 출마를 두고는 ‘찬성’ 45%, ‘반대’ 42%로 나뉘었다(11일 케이스탯리서치·엠브레인퍼블릭·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공동조사). 윤석열이 대선에 출마하면 국민의힘으로 나오든 제3지대로 나오든 ‘찍겠다’(45.2%, 45.3%)와 ‘찍지 않겠다’(47.1%, 46.1%)로 첨예했다(11일 리얼미터 조사). 오차범위를 감안하면 뾰족하게 두 쪽 난 여론이다. 민감한 정치 현안 여론조사에서 응답이 반반(半半)으로 쪼개지는 건 드문 일이다. 기본적으로 무당파가 20% 안팎인 상황에서 ‘모름/무응답’이 상당 비율 존재하기 마련이다. 윤석열 변수는 중간과 회색이 설 땅을 없앤다.
선례가 하나 있다. 조국 사태 당시 ‘서초동 집회’과 ‘광화문 집회’로 대결할 때 여론지형이 반반으로 쫙 갈렸다. 그때도 윤석열이 주인공이었다.
윤석열에 대한 여권의 맹렬한 적의는 새삼 말할 것도 없다. 박근혜를 구속시킨 윤석열에 포한(抱恨)이 깊을 친박 김재원 전 의원은 “이길 수만 있다면 윤석열이 괴물이면 어떻고 악마면 어떤가”라고 했다. ‘칼잡이’ 윤석열의 대선판 등장은 필시 전쟁 같은 진영 대결의 완판을 예고한다. ‘윤석열 현상’이 배태한, 어두운 그림자다.
실제 오늘의 윤석열을 불러낸 것은 ‘반문 전사’라는 정체성을 빼고는 설명이 힘들다. 소위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면서 여권의 핍박에 맞서 저항했다는 표상이 ‘정치인 윤석열’의 유일한 자산이다.
새정치 열망에서 발아된 10년 전 ‘안철수 현상’과는 토대가 다르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불신과 중도무당파의 호명이었던 반면, 윤석열의 부상은 반문·반민주당 유권자의 지지·성원에 바탕하고 있다. 사실상 ‘반문 선언’을 하며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윤석열을 문재인 정권의 대항마로 찍고 보수층과 비문 중도층이 결집한 결과다. 야권에 변변한 대선주자가 없는 상황이어서 윤석열을 대안으로 삼으려는 기대 표출이다.
그렇다고 윤석열의 높은 지지율이 검찰총장의 정치 직행 부조리를 덮어주지 못한다. 정치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대선 도전을 변호해 주지도 못한다. 검찰총장이 곧장 정치로 뛰어드는 건 검찰의 중립·독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최악의 선례로 남을 터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정치 경험과 검증되지 않은 정치적 능력이다. 평생 검사로 수사한 일밖에 없는 윤석열이 대선주자에게 필수적인 민주적 리더십과 정치 역량을 갖췄을지 의문이다. 검사의 일과 정치의 일은 성격이 너무 다르다. 지도자에게는 정치의 핵심인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타협과 협상, 소통 능력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그러한 자질과 정치 역량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민주화 이후 국회의원이나 광역단체장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 경우는 없었다.
어둡고 어지러운 발자국을 남긴 윤석열의 정치 참여 명분이 ‘반문’뿐이라면 국가적 불행이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미덥게 보여주지 못한 가치인 공정과 정의를 앞세우는 것만으로 시대정신을 운위할 수는 없다.
윤석열이 기어코 대선에 나서려면 ‘무엇 때문에 대통령이 되려는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하려 하는지’부터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 윤석열의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한국 정치에서 대선 때마다 등장한 ‘○○○현상’이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그 현상의 주인공이 ‘정치 세력 교체’의 열망을 담지하고 나갈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풋내나는 걸음마도 걸은 바 없는 윤석열도 그 실패의 길을 답습할 수 있다.
여하튼 검찰주의자 윤석열을 반문의 구심으로 만들어준 팔할의 책임은 여권에 있다. 여전히 ‘윤나땡’(윤석열이 대선주자로 나오면 탱큐)이라고 낙락할 때가 아니다. 여권이 직시할 것은 윤석열을 매개로 분출되고 있는 분노한 민심이다.
여권이 끔찍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칼을 거꾸로 겨눈 윤석열의 도발이 아니라, ‘윤석열 현상’을 통해 확인된 민심의 이반이다. 윤석열 현상에 담긴 민의를 정확히 읽고 반성과 자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권이 1%도 가능성을 인정하기 싫은 ‘검사 대통령’이 진짜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317030004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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