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백기철 한겨레 편집인] ‘인싸’ 윤석열, ‘아싸’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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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59회 작성일 2021-04-21 09:47본문
현재 대선구도에서 ‘양강’인 윤 전 총장과 이 지사의 인생 이력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윤 전 총장에겐 그를 아낌없이 지원할 유소년 시절의 벗이나 대학 동문, 지인들이 넘쳐날 것 같다. 이른바 ‘인싸’인 셈이다. 반면 이 지사는 끊임없이 주류에 속한 이들을 벗으로, 우군으로, 참모로 끌어들여야 할 처지로 보인다. ‘아웃사이더’인 셈이다.
백기철 ㅣ 편집인
지난 주말 들른 대형서점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 책들이 줄줄이 눈에 띄었다. 윤 전 총장의 대학, 고교 동기들이 연결된 책들인데 ‘윤석열 띄우기’를 겸한 노골적인 장삿속이 대부분이었다. 윤 전 총장이 직접 관계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잠재적 대선주자에 편승한 속 보이는 ‘친구 마케팅’으로 보였다.
그중에는 익명의 대학 동기들, 즉 윤 전 총장의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들을 인터뷰해 정리했다는 책도 있는데, 웃픈 대목들이 더러 있었다. 윤 전 총장이 조선 중기 소론의 영수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던 이른바 ‘백의정승’ 윤증의 후예라는 것이다. 관상, 사주에다 이제는 조상까지 끌어들이나 싶었다. 경제학자인 부친 덕에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감각이 있을 거라는 대목엔 쓴웃음이 나왔다.
2021년은 각 정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되는 역동적인 정치의 해다. 왼쪽부터 이재명 경기도지사,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겨레> 자료사진
책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비교적 유복한 집안의 범생이였던 것 같다. 당시 동네에서 야구를 하는 건 제법 살던 집이었는데, 야구는 물론 축구, 농구 등 만능 스포츠맨이었고 스케이트도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보이스카우트 단원이기도 했다.
대학 시절 개강 파티에서 멋들어지게 팝송을 부르고 고고장 미팅을 주선하는 등 낭만도 있었던 것 같다. 이념 서클에 가입했지만 열혈 운동권은 아니었고 캠퍼스에서 사복경찰에게 검문당하는 여학생을 구하고, 모의형사재판에서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해 경찰 수배를 받은 일화는 의협심과 강직함을 엿보게 한다.
이 책에는 ‘윤석열의 첫돌’ ‘어린 시절 부친과 함께’ 등 가족사에 국한된 사진들도 담겼는데, 윤 전 총장이 주변의 책 출간을 적극 제지하지는 못한 것 같다. 보기에 따라선 정치 출정에 앞선 노련한 언론 플레이란 비판을 받음 직하다.
윤 전 총장 관련 책을 훑어보면서 4년 전 출간된 이재명 경기도지사 책이 떠올랐다. 이 지사의 구술 형식으로 된 책에는 ‘아웃사이더’로서 그의 삶이 잘 드러난다.
알려진 대로 이 지사는 경북 안동 산골에서 5남4녀의 일곱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마친 뒤 경기도 성남으로 이주하고선 정상 교육을 받지 못했다. 부친은 청소부와 고물상, 모친과 여동생은 공중 화장실 요금 받는 일을 했다. 중·고교를 다니지 못하고 6년 동안 공장을 전전했는데, 기계에 손목이 끼여 팔이 굽은 탓에 병역이 면제됐다. 검정고시를 거쳐 장학금과 생활비를 받는 조건으로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다.
이 지사가 책에 ‘나의 스승’이라고 이름을 적어놓은 이는 대학입시 단과학원 원장이었다. 돈이 없어 학원을 다닐 수 없다고 하자 서슴없이 무료로 다니라고 했던 이다.
현재의 대선 구도에서 ‘양강’으로 볼 수 있는 윤 전 총장과 이 지사의 인생 이력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윤 전 총장에겐 그를 아낌없이 지원할 유소년 시절의 벗이나 대학 동문, 지인들이 넘쳐날 것 같다. 이른바 ‘인싸’인 셈이다. 반면 이 지사는 끊임없이 주류에 속한 이들을 벗으로, 우군으로, 참모로 끌어들여야 할 처지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은 강단 있는 검사의 풍모지만 상대적으로 약자 편에서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반면, 이 지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강단 있게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지만 한쪽에 치우칠 것 같은 인상도 준다.
현재의 대선 구도를 ‘2강1중’으로 본다면 이낙연 전 총리는 ‘1중’에 해당한다. 그는 전남 영광의 빈농 집안 출신이다. 채소 장사를 하는 어머니의 뒷바라지로 어렵사리 광주로 유학해 광주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대학 시절 하숙비가 없어 여러 곳을 전전했다고 한다. 빈농 출신이면서 균형 잡힌 언론인·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두루 강점이 있지만 여당 대표 시절 돌파력을 보이진 못했다.
관심은 아무래도 윤 전 총장이다. 돕는다는 이들이 많지만 정치는 본인이 하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이 매일매일 사람과 정책으로 부대껴야 하는 정치 현장에서 어떤 실력을 보일지 궁금하다. 검사 출신인 그가 요즘 정치의 필수 덕목인 ‘에스엔에스 정치’를 제대로 해낼지도 미지수다. 윤 전 총장은 정치를 할 거면 이제 외곽 돌기는 그만하고 링에 올라야 한다.
이들 중 누가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질지, 아니면 또 다른 주자가 연결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대선 1년 전쯤의 구도가 계속 가기도 하지만 구도가 급변하는 경우도 많다. 정치인의 미래는 그가 살아온 과거와 밀접하게 닿아 있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이전까지 삶의 이력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1669.html#csidx45b9ff880ff71c4b7ae91de42967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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