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권혁순 강원일보 논설주간] 대통령 출마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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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61회 작성일 2021-05-28 10:12본문
“지역, 계층, 세대를 뛰어넘는 국민 화합을 이뤄
세계 일류국가 만들 비전과 대안 가지고 있어야”
이도저도 아니면 자신을 돌아보고 내려놓기를
권력은 좋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손잡이 없는 양날의 칼이다. 쥐는 순간 손을 베이고, 높이 드는 순간 팔목을 다친다. 잘난 일이든 못난 일이든 이리저리 휘두르다 보면 어느새 그 칼은 부메랑이 돼 자신의 몸속을 파고든다. 그래서 영국 역사의 황금기를 열었던 영국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년) 여왕은 일갈했다. '황금의 연설' 중 한 부분이다. “왕관은 영광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막상 그 왕관을 쓴 사람의 마음은 그리 즐겁지 않다.”고. 왕관의 무게만큼 국민의 시선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대통령의 자리, 특히 우리나라 대통령의 자리가 그렇다. 내년 3월 대선이 치러진다. 대선은 '미인대회'가 아니다. 스펙만 좋은 '신인왕'을 뽑는 대회는 더더욱 아니다. 대선 잠룡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들이 판도의 중심에 서기 위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함정과 도전이 잇따를 것이다.
명성·평판에만 의존해선 곤란
누가 대선 판의 상수(常數)로 자리 잡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쌓은 명성과 평판에만 기댔다가는 지지가 금세 거품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국가 개조의 비전과 실천 의지를 가진 자만이 다음 대선에 나설 자격이 있다. 민심을 바탕으로 비전과 전략도 없는 사람이 정치 공학으로 대통령이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2016년을 말해주는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였다.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뜻이다. 국민의 선택을 받아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촛불민심에 좌초하게 된 상황과 잘 들어맞는다. “백성을 거스르는 임금은 있을 수 없다”는 이 말은 통치자의 자세를 논한 순자(苟子)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얘기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우리나라 헌법 제1조 2항과도 상통한다. 지도자는 시대를 통찰하며 국민을 상전으로 모실 때 나라의 품격이 올라가며 선진국이 된다.
대권 도전에 뜻을 두고 있는 잠룡들은 이 나라가 처한 엄중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미국·중국·일본·북한이 한국을 먹잇감처럼 여기고 달려드는 고립무원, 내우외환의 시기다. 70여년 전 6·25전쟁으로 유례가 드문 사상자를 내고도 아직도 휴전 상태에 있는 나라, 휴전선 남북으로 수백만 규모의 병력이 실전(實戰) 대치하고 있는 나라, 그들 뒤에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 초강국(G2)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북핵의 위협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무핵(無核)의 한국, 선군(先軍) 정치로 무장한 세습국가가 수시로 국지도발을 일삼고 있는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미 무감각이 돼 버린 현실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엄중한 현실 제대로 인식해야
잠룡들이 이러한 주변 환경을 차가운 이성과 혜안으로 판단하지 않고 앞뒤 안 가리는 '집권병(病)'의 중병에 걸리면 이 나라를 구출할 수 없다. 잠룡들은 국가적 위기를 풀어갈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임제록(당나라의 선승(禪僧) 임제의현(臨濟義玄·?~867년)의 가르침을 그가 죽은 후 제자인 삼성혜연(三聖慧然)이 편집한 것)'에 전해지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화두가 있다. '부처(佛)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득도하려면 익숙한 관념의 상(相)을 뛰어넘으란 얘기다. 정치와 득도가 같은 과정일 리는 없지만, 경계를 초월해 새로움을 얻으라는 건 지금 이 나라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모든 잠룡에게 유효하다. 잠룡들은 다짐해야 한다. 힘이 아닌 설득과 소통으로 지역과 계층, 세대를 뛰어넘는 진정한 국민 화합을 이뤄 나가겠다고, 이중삼중 규제의 족쇄를 과감하게 풀어 사회의 전 분야에 자율과 책임이 따르게 하고, 더 늦기 전에 대한민국 미래를 이끌 청년이 당당하게 도전하고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일자리와 산업 정책을 바로잡겠다고. 이도저도 아니면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보고 내려놓기 바란다. 이는 국민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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