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 대학가의 꼰대 감별법 “너 민주당 지지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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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96회 작성일 2021-05-20 12:23본문
민주당 지지자는 놀림받아
코로나 덕에 촛불 피한 것
성난 20대 달래기는커녕
경험치 부족 상대 탓 돌려
민심 내려다보며 훈계질
떠났던 지지 되돌리겠나
2년 전 기업 임원과 저녁을 먹다가 이런 대화가 오갔다.
- 젊은 사원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뭐라고 하나.
“욕 많이 한다. 소득 주도 성장, 탈원전 같은 정책 모두 황당하다고 한다.”
- 총선 앞둔 문 정부 비상 걸리겠다.
“젊은 사람들 그래도 민주당 찍을 거다. 한국당은 아예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투표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 아닌가.”
그 무렵 한국당 소장파 의원은 문 정부를 성토하는 젊은이를 만나 반색했다가 무안당한 경험을 털어 놓기도 했다. “한국당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거기서 왜 한국당이 나오느냐”고 핀잔을 들었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비판할 가치도 없다는 투였다.
선거 때 정당이나 후보를 정말 지지해서 투표하는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국민 열 받게 만든 정당을 혼내 주려고, 또는 저 후보에게 나라 맡겼다가 큰일 날까봐 반대편에 표를 던지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5060 세대들은 작년 총선 결과에 충격받았다. 민주당이 180석 압승을 거둘 정도로 지지 받은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도 민주당이 마음에 들어 표를 준 것은 아니었다. 탄핵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고도 정신을 못 차린 한국당에 화를 낸 거였다. 한국당이 선거에서 이기면 아스팔트 보수가 기세등등해질 것이 싫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야당 덕을 톡톡히 본 선거 압승을 자신들에 대한 신임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조국 사태 뭉개기, 윤석열 목 조르기, 야당 짓밟기를 서슴지 않았다. 1년에 한두 차례씩 지원금, 위로금만 뿌리면 선거 승리는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민주당 20년 집권론, 심지어 50년 집권론까지 나왔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채 1년도 가지 않았다.
젊은 층, 특히 20대의 민주당 이탈이 확연하다는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다. 그 수치를 뒷받침하는 목소리를 민주당 청년 간담회에서 들을 수 있었다. 21학번 대학생 신입생은 “요즘 ‘너 민주당 지지하니’라고 묻는 것은 조롱하는 말”이라고 했다. 젊었을 때 진보, 나이 들면 보수가 되는 것은 동서고금의 공통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년이 꼰대처럼 말하면 야당 지지자로 손가락질 받거나 “태극기냐” “일베냐” 같은 비아냥 듣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 대학가에서 민주당 지지자가 그런 처지가 됐다는 거다.
“조국, 윤미향 사태를 보며 민주당에 실망했다”면서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벌써 촛불을 들었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라고 자랑해온 문재인 정부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젊은 세대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을까. 야당은 총선 참패 후 탄핵의 강을 건넜고, 극단적인 태극기 세력과 선을 그었으며, 5·18과 세월호에 대한 막말에 대해 사과했다. 그래서 2030 눈높이에서 인간 지위를 회복했다. 보궐 선거 승리는 그래서 가능했다. 민주당도 하기 나름일 것이다. 청년 간담회에서 그 열쇠에 해당하는 주문이 나왔다. “민주당은 민심을 받아들여야지,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20대가 지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역사의 경험치가 낮아서”라고 했다. 야당 청년 유세단에서 즉흥 연설을 했던 20대들은 박 후보의 역사치 발언에 가장 분노했다. “보수 정부 때 반공 교육을 잘못 받아서”라고 했던 민주당 의원의 진단과 비슷한 맥락이다. 전교조 교육을 잘못 받은 젊은이들이 걱정이라고 했던 과거 보수와 판박이다. 한마디로 지지를 못 받는 민주당 잘못이 아니라, 지지하지 않는 20대 탓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주축을 이루는 586들은 대학 시절 6월 항쟁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냈던 경험을 자랑스러워 한다. 20대 때 몽매한 기성세대를 깨우쳤다는 사람들이 이제 기성세대가 되자 20대를 내려다보며 훈계질 하려 든다. 전형적인 꼰대 스타일이다.
민주당의 회생 여부는 민심의 회초리를 아프게 받아들이고 변화를 모색하느냐에 달렸다. 보궐선거 직후 조국 사태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던 초선의원들은 “감히 조국을 건드려”라는 열성 지지층의 양념질에 혼쭐만 나고 주저 앉았다. 지금의 민주당은 높은 곳에 계신 문재인 아버지, 독생자 조국 그리스도, 성령 김어준의 삼위일체를 믿는 신도 집단이 돼 버렸다. 세 명의 신적 존재가 이끄는 정당이 어찌 인간 세계의 하찮은 미물들의 투정 소리에 흔들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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