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임성원 부산일보 논설실장] 살기 좋은 도시 부산, '보행'에 길이 있다
페이지 정보
댓글 0건 조회 865회 작성일 2021-05-28 10:23본문
지방자치제가 올해로 부활 30주년을 맞았다. 개인적으로는 언론에 몸담은 지 꼬박 30년을 넘겼으니 기자 생활도 지방자치와 궤를 같이한 셈이다. 강산이 세 번 변한다는 세월인데 시간을 토막 쳐서 보면 변화의 속도가 몹시 더딘 듯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마치 복리 이자가 붙듯 세상은 크게 바뀌었다. 비록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시절이지만 ‘부산 살이’는 한층 쾌적해졌다는 점에서 시간은 역시 낙관하는 자의 몫인 것 같다.
지방자치제도는 도(道)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마을과 마을 사이를 잇는 길이요, 소통의 철학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30년 부산의 흐름이 크게 달라졌다. 지역민과 지역에 관한 재발견은 지역 안의 관계망을 더욱더 촘촘하게 엮었다. 사람과 자연, 그리고 마을을 찾아가는 인간적인 길의 진화와 발전은 실로 눈이 부실 정도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가 아니라 ‘지역 속으로’ 직진한 시간이었다.
지방자치 부활 30년 최대 성과
‘걷기 좋은 도시’ 향한 부산의 도전
도심 속의 보행로 불편은 여전
부산시 ‘15분 도시’ 정책안 눈길
‘자치분권 2.0시대’ 기폭제 기대
“보행 중심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
부산이 ‘걷고 싶은 도시’로 바뀌고 있는 게 길의 진화와 발전을 웅변한다. 먼저 삭막한 도로에 나무를 심어 30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도시의 면모를 일신했다. 도심 속 쉼터인 공원도 곳곳에 속속 생겨났다. 보행로의 등장은 가위 획기적인 변화라 할 만하다. 오로지 걸을 요량으로 바다를 따라, 강을 따라 길이 잇따라 들어섰다. 게다가 철 따라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 눈을 즐겁게 한다. 보행로는 그동안 저 스스로 길눈이 있다는 듯 단절과 고립의 공간을 용하게 뚫고 나갔다. 누가 지방자치의 성과를 묻는다면 갈맷길을 걸어 보라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부산의 길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기장 임랑해수욕장에서 출발해 바다와 강과 산을 지나 기장으로 되돌아오는 700리 갈맷길은 제주 올레길과 맞먹는 명품 탐방로로 떠올랐지만 아쉬움은 여전하다. 오는 6월 7일이면 갈맷길 탄생 12돌을 맞지만 운영과 관리에 허점이 많다는 게 부산걷는길연합의 현장 모니터링 결과다. 이정표와 안내판의 혼선에다 달라진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대대적인 정비와 개편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부산은 ‘바다의 도시’이지만 해안의 군사보호구역과 항만의 보세구역 등이 산재해 그동안 친수공간 확보가 여의치 않았다. 지자제 실시 이후 지역의 끈질긴 요구로 시민의 바다 접근성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바닷길 곳곳에 여전히 암초가 널려 있다. 사유지라는 이유로 기장 학리~죽성 바닷길이 시민의 접근을 완강하게 막고 있는 것은 개탄할 일이다. 바다 건너 제주에서는 제대로 된 올레길을 확보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한다. 바다를 온전히 시민에게 돌려주는 일, 지방자치단체의 분발을 촉구한다.
바다를 따라 갈매기와 함께 걷는다는 갈맷길은 거꾸로 부산 내륙의 길은 안녕하신지 안부를 묻는다. 외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데 한몫하고 있는 갈맷길과 비교할 때 정작 부산 시민이 일상에서 걷는 길의 사정과 형편은 어떠냐는 것이다. 도심의 길은 아직 안전하지도 쾌적하지도 않다. 자동차에 밀려 사람의 길은 곳곳에서 끊어지고 보행로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매연과 소음에다 보도도 울퉁불퉁 불편하기 짝이 없다.
26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15분 도시 부산비전 선포식’에 눈길이 간 것은 ‘보행자 중심 15분 도시’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박형준 시장의 공약인 ‘15분 도시’는 부산을 60개 생활권으로 나눠 15분 이내에 체육, 문화, 편의시설 등 생활 SOC(사회간접자본)에 접근이 가능하도록 해 지역 공동체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공약 실천으로 최근에 나온 게 ‘갈맷길 시즌 2’다. 기존 700리(275㎞)에다 도심 속 300리(120㎞)를 더해 ‘1000리 갈맷길’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지방과 수도권의 불균형을 바로 잡으려는 열정으로 지역 안의 불균형을 최소화하고, 지역민의 ‘지금, 여기’라는 로컬(local)의 삶에 곧장 육박해 들어간다는 점에서 ‘15분 도시’는 ‘자치분권 2.0시대’로 가는 전위라 할 만하다. 물론 15분이라는 ‘속도’보다는 달리는 자동차에서 내려 지역 속으로 천천히 밀착해 들어가는 ‘보행’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시민의 일상이 행복한 도시’ ‘그린 스마트 도시’ ‘탄소중립 전환 도시’라 이름할 수 있을 터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에다 이제는 ‘걷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추가할 때다. 아이를 키우고, 연로한 부모를 돌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걷기의 위대함을 익히 안다. 직립보행이라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인간에게 최근의 ‘걷기 열풍’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보행자 중심의 도시는 가장 인간적이며, 그래서 누구나 살기 좋은 꿈의 도시라 할 만하다. ‘15분 도시’가 부산의 자치분권 시대를 앞당기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문보기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10527185617290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