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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백기철 한겨레 편집인] ‘아마추어 외교 대통령’으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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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25회 작성일 2021-07-1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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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와 민족 문제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면 고비 때마다 나라가 휘청거린다. 유력 대선주자들에게서 외교의 중심,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제대로 된 외교 대통령이 없는 건 민족적 불운이다. ‘아마추어식 외교 대통령’으론 험한 파고를 헤쳐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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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몇년 전 버스를 타고 ‘평화의 소녀상’ 곁에 앉아 시내를 도는 걸 보고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국제법정 검사까지 지낸 그로선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왠지 국제도시 서울의 시장 이미지와는 안 맞아 보였다. 시민단체 대표와 서울시장의 일은 목표가 같더라도 그 방식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루 갖춘 지도자였던 박 전 시장에게서 외교적 미숙함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일제히 팔을 걷어붙인 유력 대선주자들에게서도 이런 가벼움이 보인다. 나라 운명을 좌우할 외교 문제, 역사 문제를 두고 과거 프레임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식 논박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의 역사 논쟁, 일본 논쟁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으로 촉발됐지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롯한 보수 야권의 색깔론식 대응으로 본격 점화됐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라는 윤 전 총장의 반박은 미군을 점령군이라 하면 정상적인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는 식이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빨갱이 책으로 취급하던 1980~90년대 공안통치 시대의 인식에 가깝다.


윤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약탈’ ‘이권 카르텔’ ‘무도한 정권’ 운운할 때만 해도 국민의힘 지지자들, 즉 집토끼부터 잡자는 잘 짜인 전략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게 본바탕으로 드러나고 있다. 중도 확장성 없는 강경 보수, 구보수인 셈이다.


윤 전 총장에게선 외교 비전을 찾기 어렵다. 출마 선언에서 외교 관련 언급은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정체성을 보여주어” “국제사회와 가치를 공유하고 책임을 다하는 나라” 정도 말고는 없다.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과 가치를 의심하는 식인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받은 나라를 두고 이런 식의 접근은 난센스다.


한일관계 발언도 걱정스럽다. “죽창가를 부르다 한일관계가 망가졌다” “과거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등은 사실관계도 틀렸고, ‘반죽창가’ 즉 ‘반문재인 외교’면 한일관계가 풀릴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다. 한일관계는 국내외의 여러 요인을 균형있게 고려해야 한다.


야권 1위 대선주자의 외교 역량과 비전이 빈칸에 가깝다는 건 위험천만하다. 외교야말로 균형과 통합, 현실감각과 비전을 묶어세우는 고난도 통치행위다. 27년 검사를 한 윤 전 총장에게 이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이재명 지사 역시 우려할 대목이 있다. 미 점령군 발언이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고 해서 꼭 적절했던 건 아니다. 이육사문학관에 들러 친일 청산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 것이라지만 좀더 섬세하게 표현했을 수도 있었다.


이 지사 발언을 두고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정통성 부정으로 연결하는 건 오해고 무리수다. 미 점령군+이승만+친일파로 엮어진 초기 건국사가 대한민국의 뿌리라는 건 크게 낙담할 것도, 그렇다고 자랑할 것도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을 건 어느 정도 바로잡았고, 현실을 직시할 건 직시하는 쪽으로 변해왔다. 역사적 한계와 이후의 성취를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이 지사가 일본의 독도 표기를 문제삼아 올림픽 보이콧을 언급한 대목이 문제라면 더 문제다. 독도 문제는 감정적으로 접근할 일은 아니다. 페어플레이가 덕목인 스포츠에 민족 문제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보이콧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간 한일관계 악화는 일본의 극우 회귀가 근본 원인이지만 우리 지도자들이 우왕좌왕하면서 문제를 키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독도 방문으로 판을 깼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를 두고 냉탕 온탕을 오가며 일을 키웠다. 문재인 정부 초기의 대일 강경 외교 역시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좀더 유연하면서도 중심 잡힌 대응이 필요하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출마 선언문에서 5대 비전 중 하나로 ‘연성강국 신외교’를 제시하면서 일본·러시아와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한 건 나름 외교를 강점으로 내세워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외교와 민족 문제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면 고비 때마다 나라가 휘청거린다. 유력 대선주자들에게서 외교의 중심,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제대로 된 외교 대통령이 없는 건 민족적 불운이다. 나라와 역사 앞에 놓인 험한 파고를 헤쳐가려면 ‘아마추어식 외교 대통령’으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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