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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오형규 한국경제 논설실장] 언제 '작은 정부'인 적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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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067회 작성일 2021-07-1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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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간섭·징벌에 민간 질식
팽창일로 文정부에 대한 반작용
'작은정부론' 대선 화두로 부상

세금 먹는 무능·고도비만 정부
클수록 규제 늘고 시장은 위축
'정부 효율화' 없인 선진국 헛꿈

오형규 논설실장
[오형규 칼럼] 언제 '작은 정부'인 적 있었나

최근 국민의힘이 여성가족부·통일부 폐지론을 뜬금없이 들고나온 건 아닌 듯하다. 지난 3월 한 토론회에서 김기현 의원(현 원내대표)이 이미 두 부처의 무용론을 언급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정부 기능에 진작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준석 대표는 대선 국면에 ‘작은 정부론’을 화두로 던질 태세다. 두 부처 존폐 논쟁을 계기 삼아, 고도비만에 걸린 ‘큰 정부’의 폐해를 부각시킨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보수정당이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세금 먹는 하마’, 무능한 ‘큰 정부’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는 게 당연하다. “작은 정부가 좋다는 맹목적 믿음을 버리라”(문 대통령)던 이 정부가 4년간 큰 정부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줬기에 더욱 그렇다. 해마다 50조원씩 늘린 눈덩이 예산, 1000조원의 나랏빚, 이전 4개 정권을 합친 것보다 더 늘린 113만 명의 공무원, 국민에게 고통을 안긴 부실 정책, 개발 독점이 빚은 LH 사태 등 증상은 차고 넘친다.

정부의 크고 작음에 관한 명시적 기준은 없다. 국제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규모, 공무원 비중, 정부 권한 범위, 자원배분 주체(정부냐 시장이냐) 등의 차이로 판단한다. 대개 효율성을 중시하는 우파는 작은 정부를, 형평성을 내건 좌파는 큰 정부를 지향한다. 1980년대 레이건·대처 정부가 ‘작은 정부’의 전형이라면, 북유럽 국가나 싱가포르는 ‘큰 정부’ 모습을 띤다. 당이 맨꼭대기에 있는 사회주의 국가는 당연히 ‘거대 정부’다.


돌이켜보면 민주화 이후에도 정부 역할은 부단히 확대돼 왔다. 이명박 정부 초 한때 작은 정부를 지향했지만 후반기엔 MB 물가 등 개입과 간섭을 대폭 늘렸다. 그 외엔 구호로나마 작은 정부를 내건 정권이 없었다. 외려 경제민주화로 ‘더 큰 정부’를 지향했고, 관료 조직의 무한확장 본능(파킨슨 법칙)만 새삼 확인시켜줬다.

정부 규모만 봐도 중증단계다. 행정부의 ‘18부 5처 18청’이 전부가 아니다. 정부 위원회가 574개, 지방자치단체 위원회는 2만6395개에 달한다. 공공기관 350개, 지방공기업 412개, 지방출자출연기관 798개 등도 해마다 증가일로다. 정부 입김이 미치는 각종 단체·협회도 선진국 기준에선 광의의 정부에 속한다. 게다가 툭하면 ‘부동산부(部), 인구청(廳), 노인복지청, 이민청’ 같은 조직신설론을 꺼낸다.

재정도 마찬가지다. 올해 예산(본예산+추경)이 600조원을 웃도는데, 공공기관 예산은 이보다 더 큰 724조원(2020년)에 달한다. 이를 합치면 GDP 대비 재정 규모가 60%대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게 다 국민 세금이나 나랏빚이다. 그래도 문제가 없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이다.


큰 정부란 조직·예산의 고비용·저효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부가 커질수록 정치인·관료 권력이 강화돼 국민의 기본권과 시장을 위축시킨다. 그 밑에서 국민은 세금 폭탄에 허덕이고, 교육 선택의 자유(특목고·자사고 폐지), 일할 자유(주 52시간 강제), 사업할 자유(타다금지법) 등을 제약받는다. 정부가 뒤에서 조종한 최저임금 과속 인상이 1000만 소상공인의 삶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지 않은가.

할 일, 안 할 일 구분 못하는 증상도 심각하다.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방·치안, 시장공급에 한계가 있는 환경·복지·의무교육 등에선 정부 역할이 있다. 그러나 정부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시장영역에까지 침투하고(배달 앱, 상품권 등), 기득권을 온존시키고(친노조 정책), 기업 손발을 묶어(기업규제 3법) 민간은 질식할 판이다. 미국 등 각국이 재정을 쏟아부으며 큰 정부 모습을 보여도 투자·고용의 원천인 기업을 우대하는 것과 딴판이다.


최악의 큰 정부로 치닫게 된 데는 정치인 관료 관변단체들의 암묵적 담합이 도사리고 있다. 지키기 어려운 법을 쏟아내고, 자의적 규제를 늘릴수록 국회와 정부청사 문턱이 닳고, 전관들의 일감이 많아진다. 정치 실패가 정부 실패를 넘어 국가 실패로 귀착되는 경로다.

이런 폭주에 제동을 걸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시콜콜 간섭하는 규제 만능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결코 자애로운 어버이가 아니다. 만능해결사도 구세주도 아니다. 시장 실패는 진입·퇴출로 교정되지만, 한번 커지면 스스로 줄지 않는 정부의 실패는 다음 선거까지 풀 방법도 없다. 작고 스마트한 정부가 아니고선 선진국 진입도 헛된 꿈일 뿐이다. 나라 미래가 달렸다.


원문보기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2107140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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