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文정권 "세계 최초 코로나 청정국가" 환상의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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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18회 작성일 2021-09-06 10:11본문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기인 K방역의 최대 피해자는 650만 자영업자들이다. 뒷골목의 텅 빈 식당과 카페, 치킨집과 노래방에서 한숨과 눈물로 힘든 시절을 견디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밀려오는 임대료, 인건비, 카드 수수료, 전기·수도료, 프랜차이즈 가맹비, 배달 대행료를 감당할 재간이 없다.
빚을 내서 빚을 갚고 있다. 이들의 금융권 대출은 850조원으로 부풀었다. 발동 걸린 금리 인상은 시한폭탄이다. 폐업 결정도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권리금을 회수할 수 없고, 대출금도 한꺼번에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퇴로마저 막힌 셈이다. “살려 달라”며 차량 시위에 나섰다. 지옥이 따로 없다.
정권 수뇌부 치료제로 역주행
백신 접종 늦어져 거리두기 의존
650만 자영업자 퇴로조차 없어
붕괴 땐 금융·부동산 줄줄이 위기
정부는 오늘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한다. 수도권을 포함한 거리두기 4단계 지역 식당·카페에서 사적 모임을 할 때는 두 번의 백신 접종을 끝낸 사람을 포함해 최대 6명까지 모일 수 있도록 했다. 영업시간도 오후 9시에서 10시로 한 시간 늘렸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식당에 주로 오는 젊은 직장인 가운데 백신 접종 완료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자영업자의 숨통이 트이려면 백신 인센티브가 1차 접종자까지로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이래저래 “코로나에 걸려서 죽는 사람보다 빚에 치여서 죽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꼬였을까. K방역 초기 성공의 여세로 지난해 4·15 총선에서 압승한 문재인 정권은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0월 송도 셀트리온 공장 연구소를 찾았다. 서정진 회장과 만났고, “셀트리온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강력한 치료제를 조기에 대량 생산하면 우리는 세계 최초의 코로나19 청정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서 회장은 한 달 뒤 “내년 봄에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 청정국’이 될 것”이라며 “코로나 퇴치를 위해서는 먼저 치료제가 필요하고, 백신이 뒤따라와야 한다”고 했다. 정세균 당시 총리는 지난해 12월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 중인 인천 셀트리온을 방문해 서 회장과 만난 뒤 “국민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지난해 5월 15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신 개발을 위한 ‘초고속 작전(Operation Wrap Special)’을 선언했다. 유럽 국가들도 “백신이 게임 체인저”라고 판단해 미리 돈을 내고 선구매에 나섰다. 하지만 K방역에 취한 정권 수뇌부는 연말까지도 “치료제”에 목소리를 높였다. 유승민 전 의원이 “내년 세계 경제는 백신 디바이드(divide)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무시됐다.
이낙연·정세균 두 사람의 역주행(逆走行)은 문 대통령이 발신한 메시지를 충실히 따른 결과일 것이다. 대통령이 지난해 1월 ‘기업인과의 대화’를 위해 대기업·중견기업 대표들을 초청해 청와대 경내를 산책할 때 서 회장은 스타였다. 대통령 오른편에 이재용 삼성 부회장, 왼편에 서 회장이 섰다. 바로 뒤에는 노영민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자리 잡았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청주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 선포식’에서 “서 회장이 한 10년 전에 5000만원으로 창업했는데, 어느덧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석권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고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서 회장이 참석한 5월 ‘선포식’과 11월 바이오산업 현장 방문에는 노 실장이 이례적으로 동행했다. 노영민과 서정진은 청주 동향(同鄕)이고 동갑이다. ‘치료제’ 신화(神話)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국산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의 회장이 자사 제품의 가치를 강조한 것은 이상하지 않다. 개발하고 수출까지 성공했기에 광범위한 코로나 진단 검사가 이뤄지고, 확진자를 찾아내 조기에 치료했다면 ‘세계 최초의 코로나 청정국’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정부가 서 회장의 의욕적인 계획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토대로 적기(適期)에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치료제보다 백신이 우선”이라고 했지만 무시했다. 백신 도입이 늦어지면서 한국의 완전접종률(34.6%)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최하위권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올 4월에 신설된 방역기획관직에 “백신이 급하지 않다”고 했던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를 발탁했다. 납득하기 어렵다.
영국·덴마크·싱가포르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코로나19와의 공존)’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백신 후진국 신세다. K방역 유일의 무기인 사회적 거리두기는 가혹하고, 죄 없는 국민은 고통을 겪고 있다.
만일 취업자 2700만 명의 네 사람 중 한 명꼴인 650만 자영업자가 못 버티고 무너지면 대책이 없다. 돈을 꿔준 금융기관이 충격을 받고, 임대 부동산 시장도 가격 폭락을 겪게 될 것이다. 민란(民亂)이 일어날 판이다. 국민 생존에 무한책임을 져야 할 정권이 “세계 최초 코로나 청정국가” 환상에 취했던 결과는 이렇게 참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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