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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노태우 전 대통령과 미토콘드리아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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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52회 작성일 2021-11-0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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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20세기에 두 번씩이나 아마겟돈의 세계대전을 일으켜 유럽 문명을 살해하려 한 불온한 전범국가였다. 프랑스 작가 모리아크의 “독일을 너무 사랑하기에 하나의 독일보다는 두 개의 독일이 있어서 기쁘다”는 발설(發說)은 유럽인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다.

그런 독일이 악몽의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재통일된 것은 19세기 통일의 주역 비스마르크도 놀랄 현대사의 기적이다. 비결은 서독의 내부 통합에 있었다. 진보인 사민당의 슈미트, 보수인 기민당의 콜 총리가 제3당인 자유민주당의 겐셔를 16년간 외교장관으로 세워 일관된 초정파적 실리외교로 기적을 이뤄냈다. 겐셔는 통독 이후에도 2년간 외교장관이었다. 강대국의 흥정으로 두 동강 난 지 76년이 된 한반도와는 너무도 다르다. 분단된 남쪽에선 내부 총질이 일상이 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와 대북 정책이 급변침을 반복한다. 동맹국도, 북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군사반란·광주진압 원죄 있지만
북방정책은 경제·외교 영토 넓혀
과와 함께 공도 제대로 평가해야
통합·남북화해의 상징 자격 있어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30년 넘도록 계승된 유일한 장전(章典)이 있다. 1989년 9월 11일 발표된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이다. 자주·평화·민주가 기본 원칙이다. 대통령이 앞장섰고, 야당의 김대중·김영삼·김종필 총재가 훗날 총리가 된 이홍구 통일원 장관과 함께 만들었다.

국회는 두 달 동안 공청회를 열었고, 정부는 258회의 세미나·간담회를 개최해 진보·보수의 의견을 들었다. 여론조사를 통해 해외 교민의 의견까지 수렴했다. 여야가 합의한 뒤 대통령이 발표하기 전에 박철언 정무제1장관을 평양에 특사로 보내 사전 설명했다. 완벽한 남남 통합, 남북 합의였다.

지휘자는 위대한 철인(哲人)도, 탁월한 정치가도 아닌 군인 출신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최전방을 지키는 9사단장이었지만 병력을 이끌고 중앙청 앞에 나타난 12·12 군사반란의 주역이었다.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 국무부가 애도하면서도 “복잡한 유산(complicated legacy)을 남겼다”고 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북방정책은 탈냉전의 흐름을 제대로 읽은 전환기 외교의 전범(典範)이다.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7·7선언),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 소련·중국 등 공산권 국가를 포함한 39개국과의 수교,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지구의 반쪽에 갇혀 있던 외교와 경제의 영토를 한국 스스로의 힘으로 전 세계로 넓혔다.

놀라운 것은 한국이 공산권과 손 잡는 과정에서 미국이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한·소 수교 3개월 전인 1990년 6월 노태우와 고르바초프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회담을 갖도록 주선했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매우 정교한 외교를 펼쳤다”고 노태우를 평가했다. 미·중 대결의 전환기에 북한에 끌려다니느라 주도적 외교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과는 달랐다.

생명체의 진화 역사에서 가장 경이로운 사건은 세포에 미토콘드리아라는 세균이 침입했을 때 죽이지 않고 공존을 선택한 일이다. ‘에너지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 덕분에 단세포는 다세포를 거쳐 고등 생명체로 진화했고, 인류가 탄생했다. 노태우가 비우호적 경쟁자인 야당, 적대 세력인 공산권과 손 잡은 것은 미토콘드리아의 기적을 환기시킨다. 적대적 모순을 비적대적 공존의 에너지로 전환시킨 유연하고 냉철한 결단이 없었다면 북방정책은 생명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상대를 오직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오늘의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점이다.

굴신(屈伸)이 자유로운 모든 부드러운 존재는 살아 있다. 죽어 있는 것은 경직돼 있다. 나무도, 물고기도, 사람도, 조직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물태우’였던 노태우는 장자(莊子)의 “오상아(吾喪我)!”,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경지를 꿈꿨던 것일까. 그래서 적대적 타자(他者)와도 경계를 허물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제물(齊物)의 상태에 이르려고 했던 것일까. 정파와 이념의 차이를 초월한 노태우 리더십은 분열된 이 나라 통합의 교훈이 돼야 한다.

이탈리아의 역사철학자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했다. 한 세대 전 대통령 노태우는 그의 과(過)와 함께 공(功)까지도 통합이라는 현재적 프리즘을 통과했을 때 엄정한 포폄(褒貶)이 가능하다. 12·12 군사반란,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2000억원대의 비자금 조성, 호남 고립을 초래한 3당 합당이라는 과(過)는 한없이 무겁다.

그렇다고 그의 공(功)이 역사의 여신(女神) 클리오의 신전(神殿)에 입장할 자격을 불허하는 것은 가혹하다. 북방정책과 함께 대통령 직선제 수용, 권위주의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이행, 88 서울 올림픽의 성공,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 토지공개념 도입, 분당·일산신도시를 포함한 주택 200만 호 건설, KTX와 영종도 국제공항 건설은 시간이 흐를수록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균형을 잃은 모욕과 폄훼는 역사를 분열의 도구로 만들 뿐이다. 자신의 무거운 원죄에 용서를 구하고 통합과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부활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원문보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19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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