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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백기철 한겨레 편집인] 전두환과 함께 저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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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54회 작성일 2021-12-0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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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가고 우리는 남았지만 어쩌면 남은 이들의 시대도 끝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오월 광주에서 비롯된 질풍노도의 시대, 민주화운동의 시대, 586의 시대도 저물고 있다.

11월27일 오전 전두환씨의 운구차량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1월27일 오전 전두환씨의 운구차량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백기철 | 편집인

아마도 할리우드식 멜로 드라마였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도중 언제부턴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슬픔, 미안함, 부끄러움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 밀려왔다. 지금 여기서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너무 슬프고 미안했다. 극장에 편히 앉아 로맨스 영화를 즐기고 있다는 게 괴롭기 짝이 없었다. 1980년 가을쯤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40년도 넘었지만 80년 광주 직후라면 누구든 한번쯤 겪었을 법한 얘기다. 돌이켜보면 그 영화관에서의 미안함, 부끄러움이 평생을 살아갈 동력이었지 싶다. 거리에서, 도청에서 스러져간 이들을 뒤로하고 번지르르하게 살아남은 것에, 때만 되면 아파했다.

지난주 전두환의 죽음을 접하며 문득 이제는 편린처럼 남은 그 슬픔이 어떤 종착점에 다다른 것 아닌가 싶었다. 오월 광주로부터 이어져온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느낌이랄까. 생전의 전두환은 볼품없고 하찮아서 눈여겨볼 가치도 없었지만 그가 사라지니 돌연 조준점이 흐트러지는 듯했다.

전두환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불충분했지만 단죄는 이뤄졌고, 역사의 단죄는 영원히 지속된다. 다만 전두환이 오월 영령 앞에 무릎 꿇고 5·18은 북한군 소행이 아니라며 머리를 조아리도록 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죽기 전 전두환은 노태우의 국가장을 보며 심신이 무너졌을 것이다. 몸은 편해도 마음은 노태우보다 훨씬 불편했을 것이다. 이순자의 맥락 없는 ‘15초 사과’까지 더해 그들은 마지막까지 추한 꼴로 일관했다. 유골조차 묻힐 곳을 찾지 못하고 생전에 살던 집에 숨어든 현실이 망자 전두환의 현주소다.

전두환은 가고 우리는 남았지만 어쩌면 남은 이들의 시대도 끝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오월 광주에서 비롯된 질풍노도의 시대, 민주화운동의 시대, 586의 시대도 저물고 있다.

그렇다 해도 먼저 간 이들의 원통함과 남은 이들의 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5·18은 빼고 사과한다”는 망발을 일삼는 이들을 단죄하고 부정한 재산을 환수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5·18에 대한 터무니없는 악담을 바로잡고, 희생자들의 상처를 달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는 식의 천진난만한 몰역사적 접근을 용인할 수 없다.

한 시대의 끝은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법이다. 광주 이후 이어진 민주화의 시대는 더 멀리, 더 넓게 나아가야 한다. 광주는 젊고 새로워져야 한다.

최근 <한겨레>에 소개된 정태인과 김부겸의 소신 발언은 그래서 울림이 있다. 정태인은 “민주화 세대는 실패했다. 청년에게 자리라도 내주자”고 했고, 김부겸은 “우리 세대는 뒤로 빠지는 게 맞다”고 했다. 민주화 세대의 한 축을 담당했던 두 사람의 일갈을 그냥 넘기기 어렵다.

국민의힘에서 30대의 이준석이 등장했듯 진보진영에서도 새로운 인물, 새로운 세대가 나와야 한다. 광주 세대, 586 세대가 언제까지 정치의 중심일 순 없다.

5·18 피해자 한분이 고문 트라우마로 세탁기 소리에도 벌벌 떤다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무척 아팠다. 하지만 기사 댓글을 보고선 절망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악담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포털 공론장의 황폐화, 가짜뉴스 탓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광주에 무언가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광주가 그들에게 무등의 너른 품을 보이지 못한 건 아닌가 싶었다.

지난 주말 광주를 찾은 두 정치인은 사뭇 대조적이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5·18 등에 대한 역사 왜곡 단죄법을 만들겠다”고 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전두환 이름 석자에 분노만 하며 살 수는 없다”며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넣자고 했다. 이 후보가 이순자 발언으로 촉발된 광주의 분노를 대변한다면, 안 후보는 대승적 통합에 방점이 있다.

개인적으론 안 후보 말이 좀 더 다가왔다. 광주를 왜곡하고 모욕하는 이들을 관용으로만 대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단죄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이재명 후보의 정면돌파식 5·18 접근법은 통합과 포용의 관점에서 보완돼야 한다. 광주의 정수를 붙잡고 가야 한다.

전두환이 살았든 죽었든 시대는 이미 변하고 있다. 이제는 ‘광주 이후의 광주’를 준비할 때다. 광주에서 발원한 40년 세월이 밀알이 되어 더 나은 민주주의, 새로운 통합과 자유, 정의의 시대로 한발짝 나아가야 한다. 김준태 시인이 썼듯 그렇게 해서 광주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로 남아야 한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1550.html#csidx3d0eba209799f5e84cad8c63f5242c6 onebyone.gif?action_id=3d0eba209799f5e84cad8c63f5242c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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