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백기철 한겨레 편집인] 외교안보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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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81회 작성일 2022-02-14 10:10본문
대선에서 누가 되든 제대로 된 외교 대통령이 나오기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다.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외교가 제대로 서지 못하면 G10, G5 운운하는 건 연목구어다. 탄탄한 외교로 남북 상생의 경제공동체를 구축하지 못하면 민족적 도약은 어렵다.
백기철 ㅣ 편집인
일방적 공약과 네거티브가 넘쳐나던 선거판에서 지난주 4자 텔레비전 토론은 대선 후보들의 국가 운영 능력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는 기회였다.토론 뒤 아전인수식 총평들이 이어졌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대목은 외교안보 분야였다.
30분에 걸친 외교안보 토론은 시간과 형식, 내용 모두 턱없이 부족했다. 네 분야 중 후보들 수준이 가장 빈약하지 않았나 싶다. 외교의 백년대계도, 수미일관한 디테일도 좀체 엿볼 수 없었다. 누가 되든 다음 대통령의 리스크 중 하나는 외교안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토론 내용은 여러모로 걱정스러웠다. 이게 본인 이야기인지 남이 써준 것인지 헷갈리는데다, 그 내용은 공허한 구호성에 가까웠다. 지지율 1위를 다투는 제1야당 후보의 구상치곤 너무 거칠어 보였다.윤 후보의 주장은 쉽게 말해 사드 추가 배치로 중국과 척지고, 선제타격론으로 북한과 척져놓고 미국과 잘 지내겠다는 것인데,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미국과의 동맹을 우선시하는 건 뭐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나서서 중국, 북한과 얼굴 붉히고 삿대질해가며 그럴 일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사드 배치 등 페이스북 단문 공약의 뿌리가 어디냐는 것이다. 윤 후보의 외교안보 내공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이준석 대표류의 얄팍한 안보 포퓰리즘인지 따져봐야 한다. 윤 후보가 국민의힘 강경파에게 둘러싸여 ‘안보 팔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토론에서 공부한 흔적을 보인 것과, 대통령으로서 외교안보 자질을 갖춘 건 별개다. 김종인씨가 예전에 말한 대로 윤 후보가 남이 써준 구호로 ‘연기’ 좀 해서 재미 보는지 모르지만 결국은 소탐대실할 수 있다. 한차례 토론으로도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생기는 극우 안보 공약으로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긴 어렵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집권하면 미·중·일·북한 정상을 어떻게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 이 후보가 실용외교를 강조하면서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고 한 건 다소 미흡했다. “현실적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먼저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사족처럼 붙였다면 원론과 현실론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이 후보가 한-미 동맹의 규정성에 대해 얼마나 숙고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미 동맹은 우리에게 경제와 안보의 기본축인 동시에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라는 가치의 동반자 관계이기도 하다. 고리타분한 미국 추수주의가 아니라 현실에 밀착해 한-미 동맹의 미래지향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후보는 다른 분야와 달리 실용외교, 균형외교라는 원론을 반복했는데, 경제와 민생에 비해 외교안보에선 상대적으로 준비가 덜 돼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대체로 우클릭하면서도 자기 색깔을 내놓진 못한 것 같다. ‘3불’ 정책 폐기, 한-미 핵 공유 협정 등으로 보수 색채를 보였지만 차세대 전투기 사업 등에 치중하면서 외교안보의 전체상을 보여주진 못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소신이 뚜렷하고 디테일에도 비교적 강했다. 이 분야에선 심 후보가 외려 돋보인 측면도 있었다. 사드 추가 배치의 불합리성 등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다만, 독자적 평화외교의 구체상을 제시하지는 못했다.다음 대통령 임기 중에는 북핵 문제의 파고가 가팔라지면서 대결과 타협의 큰 갈림길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지도자의 역량이 중요한 시기다.
주변국 정상들 면면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외교로 잔뼈가 굵은 바이든 대통령, 9년에 이어 장기집권 태세인 시진핑 중국 주석, 외무상 출신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11년째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까지 모두 노회하다. 이들에게 다음 대통령은 설익은 초짜 대통령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외교 대통령이 없는 건 민족적 불운이다. 대선에서 누가 되든 제대로 된 외교 대통령이 나오기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다.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외교가 제대로 서지 못하면 G10, G5 운운하는 건 연목구어다. 탄탄한 외교로 남북 상생의 경제공동체를 구축하지 못하면 민족적 도약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어떻게든 외교 역량을 모아야 한다. 대선 후보들은 이제라도 책임감과 자제력, 긴 호흡의 외교 비전을 내보여야 한다. 외교안보 끝장토론을 추가로 열어 차이를 분명히 하고 접점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초당적 외교의 길을 조금씩 쌓아나가야 한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300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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