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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진영의 리더를 대통령으로 뽑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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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19회 작성일 2022-02-0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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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숨쉬고 사는 한반도는 강대국 세력 경쟁의 지정학적 충돌선이 통과하는 곳이다. 인구·경제력·군사력이라는 경성(硬性) 국력이 가장 센 미국·중국·일본·러시아의 이해관계가 걸린 화약고다.

강대국들은 400여 년 전부터 한반도 분할 점령을 시도했다.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 한양과 평양성을 점령했던 일본군의 선봉장은 세례명 아우구스티누스인 가톨릭 신자 고니시 유키나가였다. 상인 가문 출신이었고, 대동강을 경계로 조선을 나누자고 제안했다. 동아시아를 뒤흔든 7년의 국제전쟁을 기획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8도 중 남부 4도(道)를 넘겨 달라고 요구했다. 영국 킴벌리 외상은 1894년 청일전쟁 직전 서울을 통과하는 남북 분할을 제안했다. 1896년에는 일본이 북위 38도선 분할을 러시아에, 1903년에는 러시아가 39도선 이북 중립지대 안을 일본에 제안했다. 조선과 명(明), 일본과 러시아의 반대로 모두 무산됐다.

400년간 강대국 분할 점령 시도
북한 미사일 도발 거칠어지는데
여야 대선후보 대응책 합의 못해
이러고도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결국 일제 식민지가 된 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에 의해 분할 점령됐다. 남과 북은 아직도 지구 최후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에서 중국도 지역 패권국가에서 점차 세계적 패권국가로 일어섰던 미국의 전략을 추종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미·중의 패권 경쟁과 흥정에 따라 가혹한 운명과 조우할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의 처참한 역사이고, 두려운 현실이다.

하지만 선진국이 된 한국이라는 배는 뛰어난 선장과 정교한 나침반이 있으면 전복되지 않는다. 강대국에 시달리는 나라들은 대부분 공통의 경험과 정치적 합의를 통해 지속가능한 대외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위기에 처할수록 내부 결속력이 높아진다. 그런데 불행히도 한국은 거꾸로다. 남남갈등 때문이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 와중에 열린 지난주 대선후보 4자 토론은 이런 고질(痼疾)을 드러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사드 추가 배치와 선제타격을 주장했다. “평화는 압도적 힘의 결과”라는 것이 윤 후보의 입장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사드 추가 배치 필요 없다”는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미국 측도 필요 없다는데 중국 보복을 감수하면서 추가 배치하겠다는 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후보는 “브룩스 전 사령관은 사드 추가 배치가 필요 없다는 얘기를 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선제타격론에 대해 “국민은 불안해 한다”고 비판했다. 윤 후보는 “적극적인 의지를 천명하는 것 자체가 전쟁을 막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위기가 고조되는데 대응책을 놓고 어떤 합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고도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조선은 명·청(明·淸) 교체기의 오판(誤判)으로 병자호란을 자초했다. 임금은 삼전도의 치욕을 겪었고, 수만 명의 백성은 노예가 돼 청으로 끌려갔다. 당시 명나라 고위 관료인 황손무와 심세괴는 뜻밖에도 “숭명(崇明)의 명분 때문에 청나라에 강경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왜 그랬을까. 조선이 청나라와 충돌해 무너지면 배후가 정리된 청이 명을 더 강하게 압박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조선이 시대착오를 일으킨 것은 외교를 국내 정치의 연장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중립외교를 표방한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는 반정(反正)의 명분을 세우고, 명의 승인을 얻기 위해 강한 친명 정책으로 기울었다(『동북아 지정학과 한국 외교전략』 전봉근).

지금의 대북 안보 대응도 대선의 유불리에 따라 휘둘리고 있다.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윤석열 후보의 발언을 문제 삼아 “꼭 귀신 들린 사람 같다. 외교에 포퓰리즘이 덧씌워지면 국가 이익이 훼손된다”고 비난했다. 윤 후보의 발언은 안보 태세를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는데 악마화했다. 북한이 올 들어 일곱 차례나 미사일 도발에 나서자 미국·일본·영국 등 9개국이 4일 공동으로 규탄성명을 냈는데, 정작 타깃인 한국은 빠졌다. 이러니 야당은 “문 정권의 굴욕적 대북 정책”이라며 강경해질 수밖에 없다. 여권은 상대를 공격하기보다는 단단히 잘못된 대북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국익을 위해 정파를 초월한 합의를 시도하는 것이 우선이다.

대선후보들은 냉철해져야 한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안보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면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의 입장을 끈기있게 경청해 단호한 대응 전략에 합의해야 한다. 유권자들도 국익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대통령다운(presidential) 인물이 누구인지 분별해야 한다.

마거릿 맥밀란 옥스퍼드대 교수는 2013년 ‘역사의 운율(The Rhyme of History)’이라는 논문에서 “강대국들이 세계 평화를 위해 협력하지 않는다면 다시 (100년 전) 세계대전의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류문명을 위협하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강대국은 여전히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했고, 세계는 리더십 부재의 상황을 맞고 있다. 그래서 백척간두에 선 한국을 책임질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진영의 리더를 대통령으로 뽑을 수는 없다.

원문보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45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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