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윤석열 당선인이 직면한 정치적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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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67회 작성일 2022-03-21 10:41본문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윤석열 수사팀장이 국정감사장에서 수사 외압을 폭로하면서 던진 말이다. 그는 이 한마디로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꿨다.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인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갈등과 모순이 탄생시킨 산물이다. 검사로서 정의와 공정을 지켰을 뿐인데 박근혜 정권을 겨냥한 문재인 정권의 칼잡이가 됐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확실한 상징 자본이 필요했던 불임(不妊) 야당의 선택을 받아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살부(殺父)’라는 가혹한 운명의 힘으로 오이디푸스 서사(敍事)의 주인공이 됐다.
이 혼란스러운 집권사(執權史)의 정당성을 결과로 입증하고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민심을 두 조각 낸 분열의 정치를 끝내는 기적을 보여줘야 한다. 전복적 발상이 필요하다. 먼저 자신이 선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상대를 악마화하는 증오의 도구가 됐음을 통회(痛悔)해야 한다. 승자가 아량을 베풀어야 패자를 선택한 국민도 마음을 열 것이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이분법을 접어야 한다. 그래야 다짐대로 통합을 이루고 “정직한 머슴”이 될 수 있다. 신탁(信託)에 따라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저주를 풀고 테베의 왕이 돼서 선정(善政)을 펼칠 수 있다.
내가 분열 도구였음을 통회해야
청와대 이전, 제왕적 대통령 탈피…
야당과 대연정 수준 협치가 갈 길
그는 청와대를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고 선언했다. 통념을 부순 파천황(破天荒)의 경로로 자신을 불러낸 역사의 소명에 응답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시대착오적 위계의 정점에서 스스로 내려와 ‘제1 시민’이 되려는 것이다. 이전지를 발표할 때 참모 뒤에 숨지 않고 기자들의 질문에 즉답했다. 저 광장의 환희와 통곡을 추상적 풍경이 아닌 살아 있는 몸의 구체성으로 감각하겠다는 리얼리스트의 각오가 보인다.
청와대는 미국 백악관의 3.4배인 25만㎡의 궁궐 같은 시설이다. 경복궁 근정전과 흡사한 8476㎡의 본관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다. 집무실 입구에서 대통령 책상까지의 거리가 15m다. 비서동과는 500m, 걸어서 10분 거리다. 대통령을 고립시켜 불통의 제왕으로 만들고, 공화국의 주인을 왕조의 신민(臣民)으로 격하시킨 모욕적인 상징물이다. 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은 지근거리에 참모들의 방이 있어 최순실 같은 비선 실세가 ‘보안 손님’으로 드나들 수 없는 구조다. 이전 장소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21세기의 새 대통령이 말도 안 되는 불통의 감옥에서 탈출하겠다는 취지에 그 누가 반대할 것인가.
대통령 과잉 경호도 혁파해야 한다. 지금은 군인과 경찰까지 포함하면 3000여 명이 청와대를 에워싸고 있다. 시민의 출입이 허용되는 미국 백악관과는 너무도 다르다. 문 대통령은 경호처를 폐지한다고 했지만 거꾸로 정원을 532명에서 693명으로 30%나 늘렸다. 윤 당선인은 “지금처럼 과하게 할 것 없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바란다.
윤 당선인의 최대 무기는 정치적 채무가 없어 여야를 넘나들면서 광폭정치를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초의 서울 토박이 대통령이어서 지역감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아직 민주주의라는 말도 존재하지 않을 때 아테네 민주주의의 초석을 깐 솔론의 개혁은 상상력을 제공할 것이다. 솔론은 기원전 6세기 말에 빈부격차가 극심해져 내전의 조짐이 있을 때 조정자가 됐다. “공평한 사회에서는 내전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었고, 귀족과 평민 사이에서 균형을 지켰다. 정의의 원칙으로 치밀하게 개혁을 이뤄냈다.
빈자(貧者)를 부자의 탐욕으로부터 보호했고, 지나친 균등분배 요구로부터 귀족의 권리를 보호했다. 가벼운 범죄도 사형(死刑)으로 다스린 “피로 쓴 법전”을 “인간의 얼굴을 한 법전”으로 바꿨다. 성공한 개혁이었다. 그럼에도 겸손하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고 토로했고,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다.
윤 당선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를 보고 두 시간 동안 울었다고 한다. 노무현은 지지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1 야당인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하자고 제안했다. 나라를 살릴 방도라고 믿었다. 지금은 권력을 독식하지 않겠다는 ‘바보 노무현’ 방식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가 172석을 가진 민주당과 대연정 수준의 협치를 한다면 이 지독한 증오의 정치가 통합의 정치로 전환될 것이다. 독일은 나치 당원 출신인 키징거의 기민당과 반(反)나치 투쟁을 했던 브란트의 사민당이 1966년 최초의 대연정을 했다. ‘적과의 동침’이었지만 성공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윤 당선인은 ‘살부’라는 가혹한 오이디푸스적 운명의 다음 행선지를 향해 가고 있다. 두려울 것이다. 보수와 진보 정권을 향해 칼을 휘두르던 ‘검사의 추억’부터 잊어야 한다. 포용과 통합으로 분열과 대립의 앙샹 레짐(구체제)을 깨야 한다. 그의 집권은 진영 정치의 산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나를 버리는 순교(殉敎)의 자세로 정치적 내전을 끝낸다면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폭군이 죽으면 그의 지배가 끝나지만, 순교자가 죽으면 그의 지배가 시작된다”고 했다.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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