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백기철 한겨레 편집인] 박지현은 민주당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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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67회 작성일 2022-04-28 10:26본문
백기철 ㅣ편집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준석’은 누구일까?’지난해 대선 국면 내내 맴돌던 생각이다. 민주당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같은 인물을 찾아내지 못하면 정권 재창출은 어렵다고 봤다. 예상대로였다. 대선 막판 민주당은 박지현 현 비대위원장을 영입해 추격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돌아보면 이 대표는 국민의힘 정권교체의 발화점이자 엔진이었다.
이준석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서 보듯 그의 혐오 정치는 ‘공정’과 ‘능력주의’의 탈을 쓴 야만에 가깝다. 남녀를 가르고, 사회적 최약자인 장애인을 몰아붙여 반대급부를 얻는 정치는 결국엔 패퇴한다.
이준석의 세련된 혐오 정치와 별개로 그의 정치적 효능에 대해선 냉정히 봐야 한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움튼 이른바 ‘이대남’ 현상은 이준석이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승리하면서 비로소 현실정치에 둥지를 틀었다. 30대 리더 이준석의 반란이 없었다면 국민의힘의 대선 승리는 기약하기 어려웠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몹쓸 공약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도 사실이다. 당내에선 이준석이 당을 말아먹을 거라고들 했지만 나는 윤 당선자가 이준석을 내치는 순간 대선 승리를 걷어차는 것이라 생각했다. 국민의힘의 숨막히는 기득권 구조에 균열을 내고, 비록 퇴행적이지만 젊은 흐름을 세력화한 게 이준석이다.
이준석 등장 이후 ‘민주당도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계속됐지만 어디에도 답은 없었다. 586으로 상징되는 진보개혁 진영의 촘촘한 네트워크, ‘문파’로 불리는 팬덤정치 문화, 15년간 정권을 잡으며 짜인 민주당 내 강고한 먹이사슬 등을 깰 힘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나마 이재명 전 대통령 후보가 ‘엔(n)번방 사건’의 주역인 박지현 위원장을 지난 1월 영입한 건 ‘신의 한수’였다. 박지현은 엔번방을 세상에 드러낸 ‘추적단 불꽃’의 ‘단’과 ‘불’, 두 20대 여성 중 ‘불’이었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2020년 이들이 익명으로 쓴 추적기에 추천사를 통해 “이 시대 두 명의 찐영웅, 전혀 새로운 여성 정치리더의 탄생 기록”이라 상찬했다.
엔번방 보도 이후 정치권과 언론이 무관심 속에 방향조차 잡지 못할 즈음 여성들이 들고일어나 이들의 무지와 무신경을 깨부쉈던 것처럼 이번에도 박지현 가세 이후 누구도 예상 못한 2030 여성의 대폭발이 있었다. 크게 지는 선거를 그나마 좁힌 건 이들 몫이 컸다.
박지현은 과연 민주당의 이준석이 될 수 있을까? 이준석류의 퇴행이 아니라 미래 가치에 기반한 젊은 반란을 박지현이 이끌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민주당엔 매우 중요하다. 민주당은 지금 ‘손님 실수 정치’, 즉 혁신 없이 상대방 잘못에 기대어 굴러가다 연전연패하는 ‘미래통합당식 야당 정치’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대선 패배 이후 행태가 꼭 그렇다. 말로는 반성한다고, 혁신한다고 하는데 국민들 보기엔 달라진 게 없다. 윤석열 당선자의 기대 이하 초기 행보는 이를 더욱 부추긴다.
민주당이 지금처럼 ‘손님 실수 정치’에 매달리면 선거에서 내리 지면서 아주 오래 야당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무엇 하나라도 변화의 실마리를 잡아야 한다. 26살 박지현의 당찬 행보에서 조금이나마 그 가능성을 엿본다.
“5일 전 선거 결과가 아니라 5년간 누적된 내로남불을 기억해야” “조국은 팩트가 있어 70곳을 압수수색했나” “(민형배 의원 탈당은) 편법을 관행으로 만든 것” “검찰개혁, 분명 해야 하지만 방법과 시기는 충분히 논의해야” “비리 후보자를 정리하려면 비슷한 문제를 일으킨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고 성찰해야 한다.”
박지현의 말은 20대답게 얽매이지 않지만 묵직하다. 이른바 ‘졌잘싸’에 대한 철퇴, 검찰개혁 속도조절론, 민형배 탈당 비판 등은 외부자 시선에서 쏟아낸 돌직구들이다. 서울시장 후보 공천 문제는 오락가락했는데, 가치와 현실이 충돌하는 민감한 공천에선 미숙함을 보였다. 조국·정경심 부부에게 사과를 요구한 건 비판 동력을 얻기 위한 것이겠지만 다소 많이 나갔다.
이런 행보는 기성 정치인들에겐 좌충우돌로, 강성 지지자들에겐 철부지 행태로 비칠 수 있다. 이준석이 당 밖에 표적을 만들어 혐오 몰이를 한다면, 박지현은 외부자 시선으로 당내에서 정면승부를 벌인다. 그의 뒤에는 젠더와 노동, 복지, 기후위기 등으로 관심을 넓혀가는 청년 여성들이 있다.
박지현이 민주당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그 답은 오롯이 박지현 자신, 또 곧 등장할 또다른 ‘박지현들’에게 달려 있다. 시대의 비전으로 기성 정치의 오랜 문법을 허물어뜨릴 동력은 바로 젊은 세대, 젊은 리더들 스스로에게 있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406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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