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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칼럼-박미현 강원도민일보 논설실장] 1인 영도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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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05회 작성일 2022-05-1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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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 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입법·행정·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1961년 5월 16일 정치적 야심을 품은 군부세력 방송이 새벽 5시 무렵 공기를 뚫었다. 장도영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명의로 혁명 6대 공약이 발표됐다. 오전 7시 장면 정권의 모든 권한을 일제히 인수했고, 오전 8시에는 입법기관을 해산시켰다. 박정희와 개인 친분있는 만주그룹과 병력을 이끌었던 육사 5기생, 실행 실무진이었던 육사 8기생 인맥 그룹이 합동군사작전하듯 일사천리로 거머쥐었다.

쿠데타 직후 재빠르게 착수한 작업은 국내외 홍보였다. 군사쿠데타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획득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쿠데타 두 달쯤 지나 ‘혁명정부업적보고서’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배포했다. 신문과 방송 역시 효과적으로 그 일을 분담했다. 해외 각국에는 쿠데타 이해와 지지를 얻어내는 외교사업에 전력투구했다. 민간을 이용하는 ‘국민혼성사절단’이 등장했다. 종교계와 학계 유명 인사까지 동참해 무려 84개국에 보내졌다. 로마교황청까지 찾아가는 순회 로비에 인맥이 닿은 엘리트들은 열성을 보였다.

그다음 착수한 것이 유명한 ‘근대화 인간개조론’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인은 못난 민족성을 가진 사람으로 비하하고 매도했다. 인간 개조가 답이라며 획일적인 통제시책이 난무했다. 민간인에게 권력을 넘기고 군 본연으로 돌아가겠다던 혁명공약 제6항이 있었다. 1961년 8월 12일에는 박정희가 민정 이양 구상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1979년 10월 26일 타의에 의해 멈출 때까지 ‘1인 영도자’시대는 계속됐다. 더구나 5·16에 가담한 육사 8기생 그룹 인맥에 의한 제2의 군사정권까지 불러들인 시대적 후퇴까지 가져왔다. 항쟁 끝에 1987년 인권의 가치에 집중하는 민주화시대 첫발을 디딜 수 있었다.

1961년과 2022년 정치적 환경은 달라졌으나 ‘인맥’이라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이전과 달리 미디어를 통한 팬덤 문화에 익숙할 뿐 ‘탈가치시대’라는 지적이 있다. 여전히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그건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것이어서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원문보기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126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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