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 自害로 무너진 이준석, 그를 짓밟는 보수의 自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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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25회 작성일 2022-07-14 09:26본문
1년 전 보수의 희망이던 李
대선 때 이적 행위로 미운털
창창했던 장래 스스로 망쳐
대표에 대한 私感으로 징계
도로 구태 당 이미지 회귀
2030 내치는 자충수 되나
작년 이맘때 이준석은 한국 보수의 빛나는 보석이었다. 낡고 퀴퀴했던 보수 정당에 청량한 바람을 몰고 온 풍운아였다. 성격 급한 사람들은 그를 차기 주자로 꼽았다. 다음 대선 피선거권이 있는지 나이를 헤아려 보기도 했다.
1년 새 이준석은 보수의 미운털이 됐다. 전통 지지층은 그를 대놓고 혐오한다. “민주당보다 이준석이 더 밉상”이라고 한다. 대선 때 이준석의 이적 행위 때문이다. 두 차례 당무 보이콧에다 아군을 겨냥한 내부 총질을 했다. 윤석열 후보 지지율이 널뛸 때면 늘 이준석 변수가 화근이었다. 정권 교체에 몸 달았던 보수 지지층은 이준석에게 이를 갈았다.
이준석에겐 큰 정치적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편이 갈린 한국 정치판에서 성공하는 길은 한 가지다. 보수 또는 진보 정당에 몸담아 고정표를 확보하고 개인기로 ‘플러스 알파’를 보태는 것이다. 이준석의 ‘플러스 알파’는 20·30대 남성 지지다. 한국 보수의 취약 지대를 맞춤형으로 보완해 준다. 정치 고속도로를 내달릴 수 있는 스펙이다. 이준석은 이 쉽고 단순한 성공 방정식을 스스로 걷어찼다. 줄잡아 30%가 넘는 보수 고정 지지층을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대남 표를 끌어모아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1년 전 이준석은 호남을 제외한 전국 어디서도 당선될 수 있는 초우량주였다. 지금 이준석은 당선을 자신할 지역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준석 자해극의 결과다. 과학고에 하버드대 나온 비상한 머리로 왜 더하기 빼기 산수를 그르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납득이 안 되기는 이준석 징계 파동도 마찬가지다. 사법적 판단도 내려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 같은 집안 식구들이 먼저 징계에 나선 것부터 괴이하다. 미워서 찍어내려는 사감(私感)이 느껴진다. 그래서 징계 자체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은데도, 징계를 추진한 국민의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더구나 이 시점에서 이준석 징계는 별 실효성도 없다. 대선, 지방선거가 끝난 마당에 당대표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이준석이라면 지지층이 넌더리를 치는데, 내년 전당대회에 다시 출마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이준석은 내년 6월 대표 임기가 끝날 때까지 서서히 무대 뒤로 사라져가는 일만 남아 있다. 그러니 당원권 정지는 외국 나갈 계획 없는 사람을 출국 정지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징계 효과를 굳이 따지자면 이준석에게 굴욕감, 이준석이 못마땅한 사람들에게 쾌감을 안겨준다는 점 정도다.
이런 감정적 보복을 소비하기 위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은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난 한 주 20대 유권자의 윤석열 정권 지지 하락 폭이 두 자릿수로 가장 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국민의힘에 몰려들었던 이대남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들이 떠나는 이유를 짐작하려면 당초 그들이 오게 된 배경부터 알아야 한다. 이준석 개인의 팬인 경우도 있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국민의힘이 금배지를 달아 본 적도 없는 30대 당대표를 뽑는 것을 보면서, “나 같은 젋은 사람도 저 당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고 희망을 걸었다. 얼마 전 국민의힘 20대 대변인은 “민주당처럼 하지 말라고 윤석열 대통령을 뽑아준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인사 실패에 대해 “전 정권과 비교해 보라”고 변명한 윤석열 대통령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예전 보수 정당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이준석 체제에서 달라진 당 체질의 한 단면이다.
그랬던 국민의힘이 이준석을 징계하고 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모습에서 도로 구태 당의 회귀를 예감한다. 이 대표가 비운 자리를 윤핵관 직무대행이 메웠다. 대통령을 향한 쓴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각하께 받들어 총” 충성 구호가 들려올 것이다.
이준석이 판단 착오로 당에 피해를 주고 스스로도 상처를 입었지만 그가 주장한 세대 포위론은 보수 회생의 처방전이었다. 수십 년 한국 정치를 규정해온 지역 구도는 조금씩 이완되고 있는 반면, 세대 대결은 갈수록 강고해지고 있다. 보수 진보가 팽팽하게 맞서는 세대 균형점은 당초 40대였는데, 어느덧 50대 중반까지 치고 올라갔다. 보수가 이런 흐름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20·30대 신(新)보수를 끌어들여 상하로 둘러싸야 한다. 지난해 이준석이 일으킨 2030 돌풍이 세대 포위를 현실로 만들었다. 그래서 보수 르네상스를 꿈꾸게 했다. 그런데도 보수는 이준석이 못마땅하다고 이준석 현상까지 내칠 셈인가. 이준석 욕하면서 이준석의 어리석은 자해까지 따라 하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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