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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이중근 경향신문 논설주간] 전진의 시대, 후진(後進)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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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64회 작성일 2022-07-1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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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어도 국정을 잘 모르는 만큼 윤석열 정부가 조심은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사회 전 분야에서,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역진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첫 조각에서 장관급 인사가 4명이나 탈락한 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청문회도 거치지 않은 인물을 임명함으로써 최소한의 절차까지 허물어뜨렸다. 시민들이 어떻게 만들고 강화시켜온 인사청문회인데…. 그러니 김건희 여사의 사적 동행이나 8촌의 청와대 선임행정관 기용이 거리낄 리 없다. 경찰의 중립화도 책임총리제 약속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빨리 후진할 수 있는지뿐이다.

이중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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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하지 못하는 독자를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이미 정권의 입맛대로 돌아가는 입법부나 행정부 소속 기관까지 일일이 살피기는 시간이 아깝다. 사법부도 논외로 치자. 그렇다면 남은 곳은 헌법기관이다. 그중에서도 감사원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감사원은 완벽히 조자룡의 헌칼로 전락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이어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가 찍어주는 기관마다 감사원이 등장한다. 두 기관의 장 모두 새 정부의 사퇴 압박을 거부했다는 것 이외에 딱히 감사받을 이유가 없었다. 이번주에는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때 군이 정보망에서 정보를 삭제한 의혹에 감사원이 덤벼들었다. 뒤이어 공직자들, 특히 고위급들에 대한 첩보 수집을 지시했다는 등 감사원을 둘러싼 속보가 매일 뜬다. 이 모든 일은 최재형 전 감사원장(현 국민의힘 의원) 밑에서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감사를 이끌던 중 좌천됐다 화려하게 복귀한 유병호 사무총장이 지휘하고 있다. 유 사무총장은 인수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파견된 데 이어 지난달 사무총장이 되었다. 2급에서 차관급으로 파격 승진했는데, 그 여파로 단 한 명을 제외한 1급 이상 고위 직책자 전원이 옷을 벗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감사원이 등장한 적은 많지만, 이처럼 안팎으로 나선 감사원은 없었다. 절제가 필요한 순간에 칼춤을, 그것도 정권에 맞춰 제대로 추고 있다. 대통령 직속이지만,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원칙이 허물어지고 있다. 정부의 살림살이를 짚는 회계 감사와 정책 감사를 통한 대안 제시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중앙선관위는 창설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투·개표에서 드러난 부실에 대해 감사원이 강도 높은 직무감찰을 선언해서다. 헌법은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을‘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선관위는 행정기관이 아닌 헌법상 독립기관이기 때문에 감사원의 감찰을 받지 않는 게 옳다. 문제는 감사원법이다. 법은 ‘행정기관의 사무와 그에 소속된 공무원의 직무’로 규정하면서 직무감찰의 제외 대상으로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 소속 공무원’을 명시했는데, 선관위는 제외 대상에 적시돼 있지 않다. 일종의 입법 미비인데, 그 틈을 비집고 직무감찰을 한다는 것이다. 선관위의 실책에 대한 조사는 필요하지만, 감사원이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 정당이 돈을 어떻게 쓰는지 등을 감시하는 기관을 감사원이 감사하는 것은 중대한 독립성 침해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껏 여러 차례 감사가 시도됐지만, 성사된 적이 없는 이유이다. 하물며 노골적으로 정부의 입맛에 따라 움직이는 윤석열 정부 감사원이라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선관위를 넘어 야당을 옥죄는 수단이 될 게 분명하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후퇴로 직행하는 길이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헌법기관들은 독립성·중립성을 향해 조금씩 전진해왔다. 시민이 지켜온 흐름이다. 그 흐름을 윤석열 정부가 깨고 있다. 공정과 법치를 앞세워 집권해놓고 도리어 거꾸로 가고 있다. 법률 지식을 안다는 것과 법치를 실행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두 달 새에 뼈저리게 확인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 후진의 관성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처벌 위주의 사고방식과 사정 정국으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생각, 검찰보다 깨끗한 조직이 어디 있느냐는 식의 왜곡된 자부심 등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어제도 감사원은 선관위를 상대로 예비감사를 진행했다. 감사원이 지난달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대해 특정감사를 진행 중인 사실도 새로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 때 디지털 뉴딜 정책 등을 판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인내심 테스트는 이쯤에서 끝나야 한다. 

원문보기 :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713030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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